시인의 경제 / 이안 시인의 경제 / 이안 시인이라고 꼭 가난하게 살란 법은 없고 살림 팽개치고 시 씁네 써서 반드시 좋은 시가 써지는 법도 아니지만 말하지면 그 반면의 어떤 경제적 상한선 같은 것도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지난겨울 아내가 반백만 원짜리 가죽잠바를 나 입어라고 사왔을 때 아내의 그 분에.. 감성/좋은글 2010.01.07
사리돈이 필요하다 / 김영희 사리돈이 필요하다 / 김영희 영양제보다 진통제가 더 잘 나간다는 민 약국 골목에 줄줄이 앉아있는 아낙들 절이고 말린 보따리 봉지봉지 펼쳐놓았다. 촌두부 이천 원 청국장 이천 원, 무말랭이 시래기 깻잎장아찌 삼천 원, 어디에선가 본 듯 손대중으로 담은 삶의 무게들이 고만고만하다. 속내 다 꺼내.. 감성/좋은글 2010.01.07
어떤 出土 / 나희덕 어떤 出土 / 나희덕 고추밭을 걷어내다가 그늘에서 늙은 호박 하나를 발견했다 뜻밖의 수확을 들어올리는데 흙 속에 처박힌 달디단 그녀의 젖을 온갖 벌레들이 오글오글 빨고 있는게 아닌가 소신공양을 위해 타닥타닥 타고 있는 불꽃 같기도 했다 그 은밀한 의식을 훔쳐보다가 나는 말라가는 고춧대.. 감성/좋은글 2010.01.07
추운 밥 / 공광규 추운 밥 / 공광규 겨울 아침 인도 위에 비둘기 한 마리가 깃털을 덮고 누워 있다 썩어 먹다 남은 토사물이 주검 옆에 얼어 있다 부러진 고개를 걲고 빨간 발을 오므린 채 신축빌딩 아래서 삶을 멈춘 그의 깃털을 찬바람이 흔들고 있다 오늘 새벽 슬픈 부리로 얼어 있는 토사물을 찍어 먹다 발길에 채었.. 감성/좋은글 2010.01.07
'능가사 벚꽃잎' / 황학주 '능가사 벚꽃잎' 황학주 어둠 속에서 여인을 본 날이었다 놀랍게도 이불을 끌어안은 것처럼 빗소리를 바짝 붙잡고 있는 모양이었다 낮술에 취해 비스듬히 베어진 남자가 물 묻은 가지를 짚은 채 여인 옆에 기대앉아 있었다 여인과 잠깐 눈이 마주친 동안 산벚꽃 잎이 날아왔다 빗소리 깔린 길 멀리 데.. 감성/좋은글 2010.01.07
'어느 목수의 집 짓는 이야기' / 황학주 '어느 목수의 집 짓는 이야기' 황학주 기적처럼 바다 가까운 데 있는 집을 생각하며 살았다 순서가 없는 일이었다 집터가 없을 때에 내 주머니에 있는 집 설계도를 본 사람 없어도 집 한 채가 통째로 뜨는 창은 미리 완성되어 수면에 반짝였다 나무 야생화 돌들을 먼저 심어 밤바다 소금별들과 무선 전.. 감성/좋은글 2010.01.07
장 담그기 / 배두순 장 담그기 배두순 정월달, 장을 담근다 항아리 깊숙이 메주를 쟁여넣고 소금을 푼다 소금물의 농도를 가늠하기위해 계란 하나까지 넣어본다 혹시 빠진 것이 없는지 둘러보는 사이 항아리 속 낮은 궁리에 젖어있던 계란이 겨우 솟구쳐 오른다 저 맹물들, 한동안은 짠맛 보다 더 깊은 단맛을 찾기 위해 .. 감성/좋은글 2010.01.07
터널 공사장 / 배두순 터널 공사장 배두순 드르륵, 산의 앞가슴이 포크레인에 열리고 인공의 방문자 앞에 붉은 내력부터 꺼내어주며 나무가 있던 위치 메아리의 모퉁이들을 힘없이 거래하고 있다 현장소장의 이맛살이 몇 번 모습을 비쳤고 점심 한 때의 정적 산과 포크레인 한 대는 오랜만에 알아들을 수 없는 침묵을 부비.. 감성/좋은글 2010.01.07
나는 누구인가 / 강정식 나는 누구인가 강정식 지난 세월을 훈장처럼 가슴에 달고 쏜살같이 살아가던 시간의 무게가 그에게도 있었거늘 이제는, 아무 곳으로도 돌아갈 수 없는 자유를 가졌어도 포효는 울림으로 남고 시간은 바람이 되어 깃털처럼 가볍게 떠서 허공을 장식한다 그는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그 안에는 해가 뜨.. 감성/좋은글 2010.01.07
몽촌토성 / 강정식 몽촌토성 강정식 높은 흙담 오늘도 시린 강바람 막고 섰는데 들일 끝낸 남정네들 곰다리께서 다리 쉼 하느라 해가 짧고 아낙들 웃음소리 넘쳤던 냇가 빨래터 천년 넘은 세월이 무명처럼 바래 있다 성 안의 백성들 무슨 큰 꿈을 키웠기에 곰말*이라 했을까 아니면, 모두가 허망한 꿈이던가 늙은 은행나.. 감성/좋은글 2010.0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