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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경제 / 이안

인서비1 2010. 1. 7. 20:19

 

시인의 경제 / 이안

 

 

 

 

 시인이라고 꼭 가난하게 살란 법은 없고

 살림 팽개치고 시 씁네 써서

 반드시 좋은 시가 써지는 법도 아니지만

 말하지면 그 반면의

 어떤 경제적 상한선 같은 것도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지난겨울 아내가 반백만 원짜리 가죽잠바를 나 입어라고 사왔을 때 아내의 그 분에 넘치는 사랑에 대고, 이게 시인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해! 호사에 겨운 분노를 뱉은 적이 있다 입든지 갈라서든지 맘대로 해! 아내는 아내대로 쥐뿔도 없는 시인의 쥐뿔을 두 손으로 꺾으려 들었던 것이고, 결혼해서 단 한 번도 변변한 경제를 일군 적 없는 나로서는 다음 날 군말 없이 그 반백만 원짜리 가죽잠바를 걸치고 출근을 하였다

 

 인구 이십만의 중소 도시이기는 하지만 시가(市價) 팔천만 원 하는 서른두 평 아파트에, 배기랼 이천 시시 자가용을 끌면서, 거기다 시골에 작은 작업실까지 갖추고 산다는 것은 아무래도 영혼의 언어를 만지는 직업과는 거리가 먼 것 아닌가 싶고 또,

 

 몇 해 전까지 연봉 몇 십만 원짜리 원고료 생활자로서 누리던 은은한 쥐뿔의 당당함을 등지고 논술이다 책 읽기다가로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불안을 뜯어먹으면서 이렇게 가외의 경제를 쌓아 올리다가는, 영영 사태의 핵심을 내 이득을 제외한 자리에서만 말하게 될 것 같아, 적이 두려웠던 것이다

 

 가난하다고 해서 꼭 반듯하다는 법은 없고 

 배부르다고 해서 반드시 어긋나는 것은 아니지만

 시가 써지지 않을 때는

 과분한 경제가 내리누르는 영혼의 가위눌림

 한도초과의 경제를부른 배 쓸어내리며

역겹게 시비하여 보는 것이다

 

 

 

 

시집 <치워라, 꽃!> 실천문학사.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