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좋은글

비 개인 오후, 길을 잃다 / 장진숙

인서비1 2010. 1. 4. 12:25

비 개인 오후, 길을 잃다
                          -장진숙-


집을 나섰다 무작정
물방개 소금쟁이도 없이
어질러지는 의식의 못자리
여릿여릿 흔들리다 욱신거리는 날
풍경이 물구나무선
빗물 고인 웅덩이 여럿 건너뛰며
어지러운 잔상들 마음 바깥으로
쓸어내는 산책길 진저리치며
나무들 젖은 이파리 털어 내느라 부산하고
깃털 한 올 젖지 않은 얄미운 휘파람새
뭐 그리 즐거워 솟구치는지
올려다 보다 문득
길을 잃었다 검은 커튼이
내린 듯 눈앞이 순식간에 캄캄해지는,
나는 누구이고 어디로 가는 중이었는지
씻은 오이처럼 풋풋한 바람에게 묻는다
들쭉나무 어린줄기 슬며시 감고 오른
메꽃에게 물어 본다
그들이 손짓하는 방향으로 석양이
새털구름 앞세우고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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