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자네 -장진숙-
길자네는 울 아버지 소학교적 동창생 갸름하고 흰 얼굴에 얇은 입술 눈썹 위 까만 사마귀점과 뾰족하게 솟은 콧날이 왠지 차갑게 느껴지던, 키가 훤칠하니 크고 가늘고 긴 허리가 버드나무 같았던 여자 딸 둘에 홀로된 손끝 야문 젊은 과부를 사내들 그냥 놓아둘 리 없지 울 아버지 친구인 몰락한 김가 팔난봉 백수 첩실이 되어 남매를 낳고 학교 앞 구멍가게 열어 근근히 살았다 김가는 식솔 따라 서울 가고, 날밤 새는 삯바느질로 딸년들 키워 시집 보낸 길자네 푼푼이 모은 몫돈도 믿었던 이웃에게 허망하게 떼이고 우렁이 껍질 되어 어린 아들과 학교 앞 조씨네 허름한 문간방 세 들어 산다더니, 나 고향 떠난 후 어쩌다 연줄처럼 팽팽하던 정신 그만 놓아버렸다는 소식 간간이 들리더니 오늘처럼 왼 종일 꽃비 내리던 십여 년 전 어느 봄날 아들 따라 서울에 산다며 나를 찾는 전화가 왔었다 "악아!" 정이 뚝뚝 떨어지는 간드러진 목소리로 가끔씩 내게 고향 소식을 묻기도 하고 추적추적 비오는 가을날 고향엘 갔다가 우리 집에 들러 묵어왔다며 "악아! " "악아!" 반가운 소식들 정겹게 전해주던 길자네 두어 달 전 세상 떴다는 소식 오늘에야 들었네. 우리 큰 올케 자꾸만 아무래도 아버지를 그 여자가 마음에 두고 있는 것 같다며 의심의 눈초리 오래도록 거두지 않더니 뜻밖의 소식에 뭉클, 가슴이 저리다 "악아!" "악아!" 다시는 들을 수 없는 정이 뚝뚝 떨어지던 애틋한 목소리 진달래 빛 고운 그 여자 치맛자락이 성황산 너머 가물가물 사라지는 꿈을 꾸었다
[이 게시물은 가을님에 의해 2007-07-02 12:32:42 시등록(없는 시 올리기)(으)로 부터 이동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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