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좋은글

둥근 사각형 그리기 / 김학산

인서비1 2010. 1. 4. 12:01

둥근 사각형 그리기

 

                                               김학산


호남고속도로 위 창밖을 무심히 응시한다
논가 두루미 외발로 서 쓰러지지 않는
저 빛나는 균형감각의 완숙 미
삶이
동그라미 그리기 사각형 그리기라면
얼마나 시시하고 재미없을까를 생각한다
지하터널 벗어나자 구름의 낮은 기침소리
전에 본적이 없는 황토 빛 산 하나를
아예 삼각형으로 꾀를 벗겼다
벌거벗은 남정네처럼 남세스럽다
왜 인간들은 무언가를 모양으로
그리지 않으면 살아 갈 수 없는 것일까
저 모양의 잔인함이여,
냇가에 아지랑이 수런거리고
옹기종기 모여 고만고만한 삶의 실밥을
팽팽히 잡아당기는 골목길마다엔 사람이 성글다
스스로를 포획하는 거미처럼 농부의 집엔
농부가 없다
어차피 인간은 역설의 황야에 피는 외로운 꽃인가
문제는 역설이 모든 종류의 삶을 허용한다는 것
우리의 생존전략은 말의 뼈를 송두리째 뽑아
둥근 사각형을 그려야 하는 일
행간의 긴 그림자들이 까치발로 서서
초록빛 손을 흔들고
돌들은 냇가에서 하얗게 불타오르고 있다




'감성 > 좋은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한도 / 김학산  (0) 2010.01.04
을왕리 해수욕장에서 / 김학산  (0) 2010.01.04
푸르른 것들에게 / 김학산  (0) 2010.01.04
줄기세포 그대는 / 김학산  (0) 2010.01.04
그 해 겨울 / 석기진  (0) 2010.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