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좋은글

푸르른 것들에게 / 김학산

인서비1 2010. 1. 4. 11:52

푸르른 것들에게

 

                                   김학산



황혼이 깃을 내린 창가에서
푸르른 너희들을 손질하며
울컥 뜨거운 마음 하나 있어
너의 심장으로 난 소리를 엿듣는다

인간이란 존재의 이름으로
내 너를 얼마나 난도질 했던가
꽃이라 불러서 너 꽃이 아닌 것을
빛나는 명사로 아름다운 형용사로
팽이처럼 빙빙 돌려 너 얼마나
어지러웠을까

하늘의 뜻이라고 우기며
언어의 칼을 마구 휘둘러댔던

천지는 인자하지도 잔인하지도 않을 뿐
한 잎 낙엽에 눈물 흘리는 사람들이나
낙엽의 가는 길을 너무 잘 아는, 소위
목적론적 가치의 개입주의자들에 의하여
이 세상은 까맣게 망쳐지고 있거늘

우리의 만남은 늘 이토록 푸르러
너희들의 가슴 가슴에 손을 넣어 본다
가지마다 허와 자족이
바람사이를 가르고 있다


'감성 > 좋은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을왕리 해수욕장에서 / 김학산  (0) 2010.01.04
둥근 사각형 그리기 / 김학산  (0) 2010.01.04
줄기세포 그대는 / 김학산  (0) 2010.01.04
그 해 겨울 / 석기진  (0) 2010.01.04
잘 풀리는 세상 / 서영숙  (0) 2010.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