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음악

[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인서비1 2018. 1. 6. 18:21
[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 페이스북
이른바 ‘황금 연휴’를 일부러 남도의 끝 목포까지 내려와서 추모하러 온 수많은 얼굴들은 아직 돌아오지 않은 미수습자와 어느덧 꽃이 되고 바람이 되고 별이 된 수많은 얼굴들을 기억하고 추모하며, 누구도 예외없이 울고 있었다.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내 마음 따라 피어나던 하얀 그때 꿈을
풀잎에 연 이슬처럼 빛나던 눈동자 
동그랗게 동그랗게 맴돌다 가는 얼굴

‘얼굴’이란 노래의 가사다. 윤연선이 1975년에 부른 노래다. 이 노래를, 4월에 들었고 또 5월에 들었는데, 그때마다 조금 울었다. 왜? 먼 옛날 얼굴이 동그란 애인이라도 있었고 그리하여 이 봄날에 ‘얼굴’을 듣고는, 그 동그랗던 얼굴이 떠올랐는가. 그렇지는 않다. 더러 한두 사람의 얼굴이 그러하였는지는 몰라도, 이제는 이름도 얼굴도 다 잊었다. 그렇다면 왜? 그저 봄기운이라고 할까. 한 번은 그랬고, 또 한 번은 꼭 그런 것은 아니다. 

4월 초, 남양주 어딘가로 MT를 간 일이 있다. 재직하는 학교의 프로그램 중에 신영복 선생님의 흔적이 짙게 밴 ‘인문학습원’이라는 공부모임이 있는데, 이 모임의 MT에 갔다가 그야말로 모닥불 피워놓고, 7080 옛노래를 다들 제법 봄기운에 취하여 부르는 중에, 이 학교의 교수들로 구성된 ‘더숲 트리오’가 ‘얼굴’을 불렀는데, 모닥불 바라보며 따라부르다가 문득 마음이 심란해졌던 것이다. 

세월호가 거치된 목포 신항 부둣가에 추모객들이 희생자를 기리며 매어놓은 노란 리본이 흩날리고 있다. / 정윤수

세월호가 거치된 목포 신항 부둣가에 추모객들이 희생자를 기리며 매어놓은 노란 리본이 흩날리고 있다. / 정윤수


윤연선·양희은·임재범이 부른 노래 

‘풀잎에 연 이슬처럼 빛나던 눈동자’, 그건 아마도 옛시절의 어떤 사람이 아니라, 이제는 만질 수도 기억할 수도 없는, 흘러가버린 옛시절 전체에 대한 애틋함을 갑자기 환기시키는 가사였을 것이다. 그랬는데, 그때는 그랬는데, 이슬처럼 눈동자가 빛나서, 세상의 모든 선의를 받아들이고 익히고 공부하고 그랬는데, 이제는 그 어떤 선의도 믿지 않는, 냉소의 눈동자, 오직 그것밖에 남지 않은, 내 마음 속의 충격적이고도 냉혹한 풍경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날의 눈물 한 점은.

1972년, 대학에 입학하면서 윤연선은 그 시절 대학문화를 선도하던 명동에 우연히 나갔다가 대학연합음악 동아리에 가입하면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종환, 이수만, 김의철, 이정선, 백순진 등과 함께 한 시절을 음악으로 충만하게 지냈다. 윤연선이 1972년에 발표한 앨범 <평화의 날개>는 인터넷 가요음반 경매사상 최고가인 170만원에 낙찰되었다.

그러던 중 1974년에 작곡자이자 동도중학교 교사로 있던 신귀복을 만나게 되었고, 거기서 노래 ‘얼굴’을 얻게 된다. 이 곡은 교사 신귀복이 1967년 3월 2일, 신학기 첫 교무회의 중에 공식 회의의 무료함을 달래려고 동료 교사 심봉석에게 ‘얼굴’이라는 제목은 우선 정했으니 가사를 지어달라, 거기에 맞춰 곡을 짓겠다, 해서 불과 5분 만에 완성된 곡이다. 이렇게 작곡된 곡이 사회교육 방송을 통해 널리 알려지고 소프라노에 의해 성악곡으로 앨범 취입까지 하게 되지만 이것이 4년 후, 즉 1974년에 윤연선의 목소리로 포크 발라드 형식으로 완성됨으로써 반세기 가까운 문화사적 시간 위에 오르게 된다. 이상의 내용은 대중음악평론가이자 한국 현대문화사에 관한 한 수준급의 컬렉터인 최규성의 기록에 따른 것이다. 

이 노래를 윤연선이 불렀지만, 그 이전에나 이후에나 많은 사람들이 불렀다. 대중음악에 한정하여 인상 깊었던 것은 역시 양희은 그리고 임재범이다. 윤연선의 목소리는 안개 속에서 들려오는 듯하다. 물기에 젖어 있어서 그 노래를 부르는 바로 그 사람, 윤연선이 동그란 얼굴을 한 옛 애인처럼 들린다. 한편 양희은의 목소리는 노랫말 속에 나오는 이슬처럼 동그랗고 영롱하다. 발음도 분명하고 음표들이 지시하는 바를 정확하게 재현한다. 물론 예전의 목소리, 적어도 ‘한계령’을 부르기 전의 저 70년대 목소리다. 임재범은, 가요 경연 프로그램에서 이 노래를 불렀다. 일회적인 이벤트지만, 옛날의 분위기 그대로 부르는 ‘7080 콘서트’ 방식이 아니라 임재범 특유의 록 발라드로 재해석한 것이라서, 이 노래의 연대기 속에 뚜렷하게 포함될 만하다. 2011년, MBC의 음악 다큐 프로그램 <바람에 실려>의 오프닝으로 불렀다. 작곡가 하광훈과 임재범이 미국을 횡단하면서 원없이 음악 한 번 만들어보자는 약속을 오래 전에 했었는데, 이를 MBC가 <일요일 일요일 밤에>라는 프로그램의 한 코너로 진행한 것이다. 이 장도에 오르기 전, 임재범과 음악 친구들이 ‘얼굴’을 편곡하여 불렀다. 하광훈이 신시사이저를 맡았고 고중원(드럼)과 이준현(베이스), 그리고 박주원이 기타를 쳤다. 

1975년 발매된 윤연선 2집 「얼굴」의 앨범 표지사진.

1975년 발매된 윤연선 2집 「얼굴」의 앨범 표지사진.

세월호 추모문화제에 울려 퍼진 ‘얼굴’

이 연주에서 단연 돋보이는 사람은 피아노의 이호준이다.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초대 멤버로 조용필의 수많은 대표작들의 건반을 쳤고 히트작인 ‘친구여’는 직접 작곡하기도 했다. 70·80년대의 독특한 스타일리스트인 <사랑과평화>의 최이철도 건반의 이호준을 사랑하고 존경하여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에 합류하기도 했다. 이 시절 이호준의 실력은 손무현이 작곡한 김완선의 노래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 같은 펑키한 곡에서 두드러진다. 그랬던 이호준은 임재범의 ‘얼굴’에서, 62세라는 나이의 아름다운 관록과 중후한 힘을 보여줬는데, 아뿔싸, 다만 그것으로 그뿐이었다. 이호준은 이듬해 4월, 폐암으로 별세했다. 

임재범은 몸 속에 깊이 배어 있는 모든 슬픔의 정한을 끌어내서 열창이라는 진부한 말로는 부족할 만큼 ‘얼굴’을 부르는데, 이호준의 건반이 지극히 슬픈 힘으로 동반한다. 이윽고 임재범의 거친 노래가 끝나면, 이호준은 건반에서 손을 떼고, 무덤덤한 표정을 짓는다. 고수의 마지막 착점!

그리고 5월. 나는 다시 그 노래를 들었다. 실은 이제 할 이야기를 이 지면에서, 더 많이 하고 싶었으나, 마음은 점점 무거워져서 이제껏 ‘얼굴’을 그저 어루만지기만 했다.

기나긴 연휴의 틈을 내서 목포에 갔었다. 목포 신항에 갔었다. 그곳의 세월호를 보러 갔었다. 수많은 애도의 행렬, 수많은 추모의 글들, 수많은 얼굴들, 얼굴들, 얼굴들. 신항만에 옆으로 누운 세월호는 흡사 바다에서 잡혀온 거대한 리바이어던 같았고, 동시에 무거운 슬픔에 사로잡힌 죽음의 집이었으며, 우리 모두의 마음에 깊고 깊은 속죄의식을 남긴 숭고한 이정표처럼 보였다. 이른바 ‘황금 연휴’를 어디 다른 곳으로 관광 가지 않고, 일부러 남도의 끝 목포까지 내려와서 추모하러 온 수많은 얼굴들은 아직 돌아오지 않은 미수습자와 어느덧 꽃이 되고 바람이 되고 별이 된 수많은 얼굴들을 기억하고 추모하며, 누구도 예외없이 울고 있었다.

이 극한의 슬픔의 시간, 이 애틋한 비극의 공간에 음악이 흘러나왔다. 추모문화제를 준비하는 현장의 예술가들이 사전 음향 준비 과정에서 몇 곡의 노래를 틀었는데, 윤연선의 노래 ‘얼굴’이 울려 퍼진 것이다. 나는, 걸음을 멈추었고, 이내 참았던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차마 무슨 말을 덧붙일 수 있을 것인가.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무지개 따라 올라갔던 오색빛 하늘나래

구름 속에 나비처럼 나르던 지난날 
동그랗게 동그랗게 맴돌다 가는 얼굴

<성공회대 문화대학원 교수>



원문보기: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705151838381&code=116#csidx6823f0b0a4c87d78f0c08da99e96c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