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음악

[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알렉시예비치의 소설을 기억하기 위하여

인서비1 2018. 1. 6. 18:02
[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알렉시예비치의 소설을 기억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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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렬한 속도로 질주하는 이 녹음에서 콘드라신은, 비록 남성 베이스와 합창단들이지만, 전쟁의 비열함과 그것을 결정하고 주도한 자들의 광기를 머리칼이 곤두서도록 연주한다.

무서운, 아주 무서운 소설을 읽었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진실로 무서운, 무서운 진실을 담고 있는, 한 문장 안에 불과 얼음이 뒤섞여 있고, 한 문단 안에 극단의 치욕과 실낱같은 웃음이 배어 있고, 한 편의 이야기마다 삶과 죽음이 뒤섞여 있는, 무서운 소설이다. 

모든 사물과 인간과 가치를 초토화시켜 버리는 전쟁. 그 잔인한 세계를 여성 서사로 힘겹게 재현해낸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1948년 5월 31일 우크라이나 서부지역 스타니슬라브에서 태어났다. 어머니가 우크라이나 사람이고 아버지가 벨라루스의 군인이었다. 알렉시예비치는 아버지가 퇴역을 하면서 벨라루스의 작은 마을로 귀향하여 살게 되면서 벨라루스 사람이 되었다. 벨라루스국립대학교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하였고, 그 정규 학과를 공부하기 전이나 후에나, 그녀는 전공이라는 측면에서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사실을 채집’하여 그 사실 안에 묻혀 있는 진실을 캐내는 일에 몰두했다. 

1973년, 벨라루스의 수도 민스크의 한 지역신문에서 본격적인 기자생활을 시작한 알렉시예비치는 단지 성실하게 사실보도를 하는 기자를 넘어서 단편, 에세이, 르포 등을 다양하게 구사했다. 문학의 서사 양식, 즉 인간의 이야기를 재현해내는 가능한 모든 양식을 시도한 그녀는 마침내 ‘개인들의 한숨 섞인 목소리가 처절한 역사적 재구성의 합창’에 이르는 작품에 도달했다. 그것이 1983년에 탈고한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벨라루스는 언론과 예술가들이 폭압적인 검열에 짓눌려 있었기 때문에 2년 동안이나 출판이 유예되다가 1985년에야 모스크바와 민스크에서 동시 출판되어 러시아 내에서만 200만부가 넘게 팔렸다. 이렇게 된 결정적인 외적 상황은 바로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개방) 정책 때문이었다.

키릴 콘드라신이 지휘한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전집’ 앨범 표지 사진

키릴 콘드라신이 지휘한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전집’ 앨범 표지 사진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알렉시예비치는 참담한 전쟁을 겪은 소년들과 여성들 수백 명을 만나서 오랜 시간 동안 인터뷰를 하고 막대한 양의 녹음 테이프를 듣고 또 들으면서, 스스로 여러 번이나 소스라치게 놀라고 몸부림치면서 피에 젖은 작품들을 하나씩 발표했다. 1989년 작, <아연 소년들-아프간 전쟁으로부터 울리는 소비에트 목소리>는 10년 가까이 전개된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전했다가 비참하게 전사하여 아연으로 된 관에 실려 돌아온 소년군과 그 가족, 특히 어머니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다. 러시아 군대의 영웅적 승리라는 국가의 선전과는 정반대되는 목소리, 희미한 목소리, 피에 물든 목소리, 겨우겨우 한마디씩 내뱉는 목소리로 이뤄진 이 책은 결국 1992년부터 여러 차례 민스크 법정에 서야 했지만, 유죄 평결은 받지 않았다. 

20여년 동안 장기 집권하고 있는 벨라루스의 현 대통령 알렉산드르 루카센코 시대가 개막한 1994년 이후 그녀의 책은 벨라루스에서 사실상 출판금지 상태가 되었고, 교과서에서도 삭제되었으며, 전화 도청과 비밀감시에 사로잡혔다. 하는 수 없이 파리와 베를린의 망명객으로 전전한 알렉시예비치는 2011년, 벨라루스 정부의 예상되는 감시와 억압에도 불구하고 전격적으로 귀국을 단행하여 민스크로 돌아갔다. 

이러한 이력 사항은 그녀의 소설을 읽는 데 부가적인 요소가 아니라 핵심적인 사안이다. 2015년 노벨문학상 수상의 이유도 그녀의 잔혹하면서도 비범한 작품 그 자체에 대한 평가가 우선이지만, 방대한 사실을 채집하여 그 안에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진실한 작가라면 응당 겪어내야 하는 핍박과 시련에 대한 위엄 있는 존중과 격려 또한 전제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알렉시예비치는 좁은 의미의 소설가는 아니다. 그의 작품은 굳이 따지자면 르포르타주다. 스웨덴 한림원은 고전적인 문학 형식의 준수 또는 그 형식의 실험적인 타파와 같은 문학 내부의 이유가 아니라 ‘문학이 기본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 무엇을 하는 데 있어 기존의 형식이란 무엇인가, 어떤 이야기들이 기존 형식을 깨트리면서 울부짖을 때 그것을 기존의 형식과 다르다 하여 문학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라는 엄준한 판단 아래 그녀와 그녀의 소설을 인류의 필독서로 지정했다. 

자, 다시 무서운 소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를 보자. 그녀의 여러 작품들이 그렇듯이 이 작품 또한 ‘목소리 소설(Novels of Voices)’, 즉 끔찍한 체험을 한 사람들의 생생한 목소리가 압도한다. 한편 그녀의 소설은 ‘소설-코러스’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수많은 사람들의 인터뷰가 강렬한 절규이자 합창으로 울려퍼지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무려 100만 이상의 여성이 참전했다고 하는 2차 대전(러시아의 공식 용어로는 ‘대조국 전쟁’)의 비참함을 바로 그 여성의 ‘목소리-합창’으로 들려준다. 전쟁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남자들의 싸움터다. 남성적인 힘이 넘쳐 흐르는 곳이다. 그들에 의하여 전쟁은 영웅적인 승리이거나 응어리진 패배로 기억된다. 누가 그렇게 기억하는가? 전쟁의 기억은 국가가 독점한다. 그것이 승리든 패배든, 국가-남성이 전쟁을 기록하고 기억한다. 그밖의 기억은 배제하고 그밖의 기록은 삭제한다. 오직 파괴와 죽음의 남성적 희열만이 남는다. 이 소설은 그 지옥도에 휩쓸려 들어간 여성들의 목소리다. 

자세한 얘기는 생략한다. 이 짧은 지면에 옮길 수도 없고, 또 옮겨서도 안 된다. 그 ‘목소리-합창’은 꼭 반드시 읽고 들어야 한다. 짐작컨대 최소한의 양심과 한 줌의 선의와 최소한의 상식만 갖고 있다면 틀림없이 첫 장을 펴자마자 울컥해질 것이고, 수많은 여성들의 전쟁 잔혹사 앞에서 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다. 

쇼스타코비치 13번 교향곡 <바비 야르> 

이 소설을 읽으면서, 음악을 들었다. 공교롭게도 지휘자 키릴 콘드라신의 여러 녹음들을 듣던 중이었다. 병환 중인 클라우스 텐슈테트를 대신하여 지휘한 곡들이다. 말러 교향곡을 비롯하여 여러 음반들을 들었다. 쇼스타코비치의 대표작들을 듣던 중이었다. 결국, 이 소설에 의하여, 13번 교향곡 <바비 야르>를 들었다. 이 곡에 대해서는 지난 2015년 12월 8일자(1154호)의 이 지면에서 자세히 썼으므로 따로 부기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알렉시예비치의 관점에서 보면 이 교향곡 역시 ‘남성 서사’일 것이다. 그럼에도, 알렉시예비치의 소설을 오래 기억하기 위하여 소피아 구바이둘라나의 여러 곡들, 특히 깊고 깊은 <요한수난곡>까지 찾아들었으나 전쟁이 전면에 등장한 것이 아니라서, 결국 키릴 콘드라신을 다시 들었다. 


맹렬한 속도로 질주하는 이 녹음에서 콘드라신은, 비록 남성 베이스와 합창단들이지만, 전쟁의 비열함과 그것을 결정하고 주도한 자들의 광기를 머리칼이 곤두서도록 연주한다. 어떤 연주도 이 곡에 관한 한 콘드라신을 넘지 못한다. 모두가 파괴의 정념에 휩싸인 듯하다. 4악장은 이렇게 노래한다. “러시아에서는 두려움이 옛 유령처럼 죽어간다. 노파처럼 교회 문 앞에서 어슬렁거리며 여전히 여기저기 빵을 구걸한다.” 

알렉시예비치는 소설의 서두에서 이렇게 쓴다. “악(惡)은 분명 매혹적이다. 그리고 선(善)보다 솜씨가 뛰어나다. 마음을 더 잡아끈다. 거대하고 무자비한 세계다.” 전쟁에 대하여, 파괴에 대하여, 무자비함에 대하여, 아무런 두려움도 없어지는 그런 세계, 결코 되풀이될 수 없는 세계의 먹구름 아래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나라 안팎의 전쟁 광신자들과 함께. 그 점이 실로 무섭다.

<성공회대 문화대학원 교수>



원문보기: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705081634501&code=116#csidxbe33a3ffa1b0aa48e699fbe9f8867d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