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음악

[문화내시경]음악사에 남을 넥스트의 <홈>

인서비1 2018. 1. 6. 17:36
[문화내시경]음악사에 남을 넥스트의 <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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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5월 신해철은 넥스트로 나서며 새로운 활동에 착수했다. 솔로가 아닌 그룹이었지만 다수에게 이들의 데뷔 앨범 <홈>(Home)은 ‘신해철 3집’ 정도로 여겨졌다. 그가 거의 모든 노래를 작사, 작곡하고 제작 전반을 진두지휘했으니 당연한 결과다. 두 장의 솔로 앨범에서 보여 줬던 낭만주의와 소년의 감성이 재차 출현했으며, 솔로 시절 ‘인생이란 이름의 꿈’, ‘나에게 쓰는 편지’ 등으로 표현한 인생에 대한 고찰도 계속됐다. 그의 특기인 전자악기를 활용한 작법도 여전했다. 넥스트는 신해철의 연장선 같았다. 

/ 경향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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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솔로 시절과 다른 모습도 존재한다. 외관상으로는 기타리스트 정기송, 드러머 이동규와 동행함으로써 밴드로의 변화를 나타냈다. 전체적인 사운드는 솔로 음반들보다 한층 예리해지고 강해진 상태였다. ‘도시인’, ‘외로움의 거리’, ‘아버지와 나 Part I’, ‘영원히’ 같은 노래들은 넥스트가 록에 주력한다는 것을 말했다. 신시사이저와 북이 긴장감 있게 곡을 이끄는 ‘증조할머니의 무덤가에서’는 신해철이 향후 지속적으로 펼칠 한국 전통음악과의 접목에 대한 귀띔이었다. 이처럼 넥스트는 솔로 신해철을 넘어서는 걸음이기도 했다.

넥스트의 앨범이 신해철의 솔로 음반들과 가장 큰 차이를 보인 사항은 일관된 스토리를 지향했다는 점이다. 신해철은 ‘가정’이라는 공동체를 설정하고 이 조직의 일원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겪는 일들과 예사롭게 느끼는 감정을 엮어 냈다. 다시 말하면 누구나 다 경험할 우리의 생활인 것이다. 

신해철은 앨범 속 가상의 주인공을 통해 유년 시절의 풋풋한 사랑(‘인형의 기사 Part II’), 연애로는 해갈되지 않는 인간의 근원적 고독(‘외로움의 거리’), 이상의 실현과 주체성의 확립(‘영원히’) 등을 논한다. 또한 증조모를 향한 추모(‘증조할머니의 무덤가에서’), 장성한 뒤 아버지의 처지를 이해하려는 모습(‘아버지와 나 Part I’)을 담으며 다른 구성원과의 관계 확인, 사람의 생각이 성숙해져 가는 과정을 직·간접적으로 밝힌다. 정기송이 작곡한 ‘집으로 가는 길’은 나의 꿈도 중요하지만 가정, 가족이 무엇보다 소중하다고 에둘러 얘기한다.

타이틀곡 ‘도시인’은 신해철과 넥스트를 잇는 음악적 가교를 맡았다. 신해철은 1991년에 낸 2집 중 ‘나에게 쓰는 편지’로 당시 팝 음악계에서 인기를 끌던 힙 하우스(힙합과 일렉트로닉 댄스음악의 하위 장르 중 하나인 하우스 음악의 혼합)를 선보였다. ‘도시인’ 역시 힙 하우스를 바탕으로 삼아 이전 활동을 계승했다. 여기에 날카로운 전기기타 연주를 곳곳에 배치해 록으로의 변화를 강조했다. 


노래는 앨범의 콘셉트를 압축하는 것이기도 하다. 3절 중 “집이란 잠자는 곳, 직장이란 전쟁터”라는 가사는 가정과 사회를 이루는 필수 구성원이지만 때로는 주변인에 머물고, 어떤 때에는 도구로 전락하는 개인의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개인주의가 보편적 미덕이 되고 속도를 제일의 가치로 여기는 현대사회의 피폐함을 전시한 전반적인 내용은 앨범의 압권이다.
 
신해철은 <홈>에서 연속성과 변화를 모두 충실히 이뤘다. 연주와 편곡의 견고함, 사운드의 풍성함까지 겸비해 내면서 역량의 성장도 증명했다. 앨범이 나온 지 사반세기가 지난 현재에도, 이후 세월이 더 흐른 뒤에도 적용될 사회상과 사람들의 삶을 다룬 노랫말은 앨범을 더욱 위대하게 보이도록 한다. <홈>은 한국 대중음악사에 길이 기억될 작품일 수밖에 없다.

<한동윤 대중음악 평론가>



원문보기: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704251101391&code=116#csidx2da501f18cd722da888655fcb1720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