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음악

[내 인생의 노래]아도이의 ‘Grace’-동시대 청년들의 지지 받는 ‘지금의 음악’

인서비1 2018. 1. 7. 22:11
[내 인생의 노래]아도이의 ‘Grace’-동시대 청년들의 지지 받는 ‘지금의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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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노래’라는 말에 반사적으로 숨을 좀 가다듬었던 것 같다. 순식간에 몇 곡이 떠올랐다. 그 중에 한 곡을 골랐더니 다른 곡들도 떠올랐다. 내가 처음에 산 테이프가 뭐였더라? 자주 들었던 노래가 뭐였더라? 단골 바에서 사장님이 알아서 틀어주시는 곡은 뭐였더라? 떠오르는 사연만큼 노래들이 차곡차곡 쌓였다. 음악이 너무 많았다. 그러다 문득, ‘내 인생의 노래’라는 말이 겨냥하는 게 ‘음악’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보통 음악을 음악 자체로 기억하지 않는다. 그 음악을 언제 어디서 누구와 어떻게 들었느냐가 그 음악을 정의한다. 음악이란, 그러니까 우연적 상황에 의해 그 존재가 결정되는 엔터테인먼트다.

그래서 내게 ‘인생의 노래’란, 새삼 ‘지금의 음악’일 수밖에 없다. 직업적으로도 태생적으로도 내게 중요한 건 ‘지금’이라서, 또한 미래의 내가 떠올릴 음악들은 결국 ‘지금의 음악’일 것이므로 그렇다. 한편 ‘인생의 노래’라고 할 때 떠올리는 것이 보통 청춘시절의 사연들이란 것도 연관이 있다. 10대 혹은 20대의 기억은 삶에서 가장 강렬하게 들러붙는다. 어쩔 수 없다. 태어나 거의 처음으로 세상과 나를 마주하는 시간이라서 더욱 그렇다. 누군가에게 그건 열병이기도, 어떤 이에겐 고통이기도 할 텐데 나로서는 조금 심심하고 무난한 쪽에 가까웠다. 그때 듣던 음악들이 특별했던 것도 아니다. 다만 그 시절의 나와 그 시절의 음악이 긴밀하게 접촉할 때 터지던 스파크 같은 게 추억으로 남는다. 

그런 점에서 지금 내가 듣는 음악은 동시대의 한국 청년들과 접촉하는 음악이다. 아도이의 란 곡인데, 이 노래의 가사는 영어로 되어 있고 사운드는 최근 몇 년 동안 세계적인 트렌드를 형성한 80년대 무드를 품고 있다. 낙천적이면서도 아련한 음악이라고 할까, 반복되는 심플한 멜로디 위로 약간의 전자음과 약간의 잔향이 뒤섞여 아득한 꿈을 꾸는 기분을 만든다. 뒤틀어진 관계를 한 번 더 되돌리려고 떠난 연인에게 한 번만 더 생각해보자고 읊조리는, 그러나 그것이 덧없는 시도라는 것을 본인도 알고 있는 듯 자신 없는 목소리의 노래다. 이 모든 것은 필연적으로 향수를 자극한다. 그러니까 우리에게도 좋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그 시간은 어느 순간 하릴없이 사라지고 어쩌지 못하는 종말의 때와 만난다. 나는 이런 감각이 청춘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시작과 정점이 동시적으로 벌어지는 삶의 한때. 너무나 짧아서 그 기쁨을 감지하는 순간 아득하게 그리워지는 기묘한 경험. 아도이는 그런 노래를 부른다. 

어느 시대에나 청춘은 짧고 강렬해서 신화가 될 수밖에 없다. 돌아가는 길을 선택할 수 없어서 차라리 그립고 아름다운 채로 남겨놓기로 결심한 것. 이 시간의 계약은 너무나 강력해서 우리는 죽을 때까지 그때 그 시절을 막연히 그리워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계약을 파기할 수 있어야 우리는 간신히 한 발을 더 뻗을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다시 내게 집중할 수밖에 없는 것. 그러니까, 다시, 결국, 바로 지금. 나이가 많든 적든, 우리는 지금이 너무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지금을 사랑할 수밖에 없어서 사랑한다. 

아도이의 음악은 이 모든 감정들, 요컨대 그리움과 질투와 후회와 덧없음과 충만함과 안도감을 모두 자극한다. 그런 음악이 드물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이 음악이 동시대 청년들로부터 꽤 단단한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마음을 비우고 듣게 된다. 오케이. 이것은 매우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위치에 놓인 청춘의 음악이다. 

내게 ‘인생의 노래’란, 
새삼 ‘지금의 음악’일 수밖에 없다.
내게 중요한 건 ‘지금’이라서, 

또한 미래의 내가 떠올릴 음악들은
결국 ‘지금의 음악’일 것이므로 그렇다.
 
<차우진 대중음악평론가>



원문보기: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710231717281&code=116#csidx24d0946e88a48ebace1688ceb8bc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