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노래]아도이의 ‘Grace’-동시대 청년들의 지지 받는 ‘지금의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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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내게 ‘인생의 노래’란, 새삼 ‘지금의 음악’일 수밖에 없다. 직업적으로도 태생적으로도 내게 중요한 건 ‘지금’이라서, 또한 미래의 내가 떠올릴 음악들은 결국 ‘지금의 음악’일 것이므로 그렇다. 한편 ‘인생의 노래’라고 할 때 떠올리는 것이 보통 청춘시절의 사연들이란 것도 연관이 있다. 10대 혹은 20대의 기억은 삶에서 가장 강렬하게 들러붙는다. 어쩔 수 없다. 태어나 거의 처음으로 세상과 나를 마주하는 시간이라서 더욱 그렇다. 누군가에게 그건 열병이기도, 어떤 이에겐 고통이기도 할 텐데 나로서는 조금 심심하고 무난한 쪽에 가까웠다. 그때 듣던 음악들이 특별했던 것도 아니다. 다만 그 시절의 나와 그 시절의 음악이 긴밀하게 접촉할 때 터지던 스파크 같은 게 추억으로 남는다.
그런 점에서 지금 내가 듣는 음악은 동시대의 한국 청년들과 접촉하는 음악이다. 아도이의
어느 시대에나 청춘은 짧고 강렬해서 신화가 될 수밖에 없다. 돌아가는 길을 선택할 수 없어서 차라리 그립고 아름다운 채로 남겨놓기로 결심한 것. 이 시간의 계약은 너무나 강력해서 우리는 죽을 때까지 그때 그 시절을 막연히 그리워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계약을 파기할 수 있어야 우리는 간신히 한 발을 더 뻗을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다시 내게 집중할 수밖에 없는 것. 그러니까, 다시, 결국, 바로 지금. 나이가 많든 적든, 우리는 지금이 너무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지금을 사랑할 수밖에 없어서 사랑한다.
아도이의 음악은 이 모든 감정들, 요컨대 그리움과 질투와 후회와 덧없음과 충만함과 안도감을 모두 자극한다. 그런 음악이 드물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이 음악이 동시대 청년들로부터 꽤 단단한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마음을 비우고 듣게 된다. 오케이. 이것은 매우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위치에 놓인 청춘의 음악이다.
내게 ‘인생의 노래’란,
새삼 ‘지금의 음악’일 수밖에 없다.
내게 중요한 건 ‘지금’이라서,
또한 미래의 내가 떠올릴 음악들은
결국 ‘지금의 음악’일 것이므로 그렇다.
새삼 ‘지금의 음악’일 수밖에 없다.
내게 중요한 건 ‘지금’이라서,
또한 미래의 내가 떠올릴 음악들은
결국 ‘지금의 음악’일 것이므로 그렇다.
<차우진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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