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좋은글

나는 누구인가 / 강정식

인서비1 2010. 1. 7. 12:01

나는 누구인가 

                             

                                            강정식

 

지난 세월을 훈장처럼 가슴에 달고
쏜살같이 살아가던
시간의 무게가 그에게도 있었거늘
이제는, 아무 곳으로도 돌아갈 수 없는
자유를 가졌어도
포효는 울림으로 남고
시간은 바람이 되어
깃털처럼 가볍게 떠서 허공을 장식한다

 그는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그 안에는 해가 뜨지도 않아, 지체된
시간 속에서 달이 가고 또 달이 지나간다. 예식처럼 반복되는 일상,
햇빛도 공기도 희박한 무채색의 외진 빈터에서 매일처럼 서성인다.

긴 바람이 불고 지나간 그때쯤
유리벽 밖으로 차츰 세상이 보이고
어둠 속에서 회색의 안개도 조금씩 걷혀 가서
때로는 눈 덮인 히말라야의
엷은 산소 냄새가 나고
“나를 울게 하소서.”* 하는 리날도의
청음이 하늘에서처럼 끊어질 듯 이어져
엄숙한 수사의 얼굴로
하늘을 본다

아…  나는 누구인가   

*나를 울게 하소서(Lascia mi piangere)-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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