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좋은글

터널 공사장 / 배두순

인서비1 2010. 1. 7. 12:07

터널 공사장

배두순

드르륵,
산의 앞가슴이 포크레인에 열리고
인공의 방문자 앞에 붉은 내력부터 꺼내어주며
나무가 있던 위치 메아리의 모퉁이들을
힘없이 거래하고 있다
현장소장의 이맛살이 몇 번 모습을 비쳤고
점심 한 때의 정적
산과 포크레인 한 대는 오랜만에
알아들을 수 없는 침묵을 부비며
서로 붉은 정을 주고받는다
커다란 너럭바위가 산을 움켜쥐고 있던
육중한 몸을 뒤틀기 시작한건
오후의 첫 번째 사건이다
그러나 한번 제 뿌리를 빼앗긴 사건은
힘 한번 쓰지 못한 채
이리저리 굴려지기 시작하고
사내 몇이 달려들어 구멍을 뚫고
화약을 찔러 넣은 바위는 또 다른 바위였다
그들에게도 생명이 있었음일까
예수를 세 번 부인한 베드로처럼
응달로 바뀌는 저녁의 산비탈에 곧추 놓여진 채
제 안, 한낮을 갈라놓은 사건의
반지름을 조용히 응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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