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자본

[카를 마르크스](1914) / 레닌(1870~1924)지음.

인서비1 2022. 1. 8. 12:38
[카를 마르크스](1914) / 레닌(1870~1924)지음. 
 
이 책을 읽는 분에게,카를 마르크스:약전略傳과 마르크스주의의 해설,마르크스의 학설:철학적 유물론/변증법/유물사관/계급투쟁,마르크스의 경제학설:가치/잉여가치/사회주의,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투쟁 전술,부록:마르크스주의의 세 가지 원천과 세 구성 부분,연보 로 구성.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안내서로서 가장 중요한 고전 문헌의 하나가 된 이 레닌의 논문은 1914년 7월부터 11월까지 사이에 쓰여졌다. 처음에는 《그라나다》 백과사전 제7판에 실리기 위해 쓰여졌으나, 후에는 《레닌전집》에 수록되었다.이 책의 끝에 붙인 <마르크스주의의 세 가지 원천과 세 구성 부분>은 레닌의 다른 저작으로부터 인용하여 쓴 것이다. 
 
마르크스주의라는 것은 마르크스의 모든 견해 및 모든 학설의 체계를 말한다. 마르크스는 인류가 만들어 낸 세 개의 가장 선진적인 나라에서 태어났던 19세기 3대 사상 조류의 계승자였고, 천재적인 완성자였다. 그 사상 조류라고 하는 것은 독일의 고전철학, 영국의 고전경제학, 그리고 일반적인 프랑스의 혁명적 제 학설과 연결된 프랑스 사회주의이다. 
 
‘나에게 있어서는 이것과는 반대로 관념적인 것은 인간의 두뇌 속에서 변화하여 번역된 물질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마르크스는 관념론 ― 그것은 어떤 형식인가라는 것에 대한 답변 방법은 항상 종교와 연결되어 있다 ― 을 명확하게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 특히 널리 퍼져 있는 흄이나 칸트의 견해, 즉 다양한 형태를 취한 불가지론不可知論,비판주의, 실증주의를 명확히 거부하였고, 이러한 철학들은 관념론에 대한 ‘반동적인’ 양보이고, 한껏 좋다고 하는 경우에도 “유물론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면서도 세상을 향해서는 부인하는 임시로 지은 집과 같은 방식”이라고 간주하였다. 
 
마르크스에 의하면 변증법이라고 하는 것은 “외계外界와 병행해서 인간의 사고운동의 일반적 제 법칙에 대한 과학이다”라고 했던 것이다.변증법적 유물론은 “다른 제 과학의 위에 서서 어떤 철학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인간의 의식이 그들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그들의 사회적 존재가 그들의 의식을 규정한다. 유물사관이 발견됨으로서,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유물론이 사회현상 분야에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이어져 확대된 것에 의해서 그때까지의 역사 제 이론이 가지고 있던 두 개의 중요한 결함이 제거되었다. 첫째는 그때까지의 역사 제 이론은 인간들의 역사적 활동의 관념적인 동기를 고찰한 것뿐이어서, 그러한 동기가 어떤 것에 의해서 불러일으키게 됐었는가를 연구하는 것도, 사회적 제 관계의 체계적 발전을 지배하는 객관적인 합법칙성을 파악하지도 않아 이들 사회적 제 관계의 근원이 물질적 생산의 발전 정도에 있다는 것을 파악하는 것조차도 하지를 못했다. 둘째로는 틀림없이 이때까지의 모든 이론은 주민 대중의 활동을 생각에 넣지도 않았을 것인데, 이에 대해서 사적유물론은 대중의 사회적 생활조건과 이들 조건의 변화와를 자연사적인 정확함에서 연구하는 것을 비로소 가능케 했다. 
 
물질적 생산력의 상태야말로 예외없이 모든 사상, 모든 종종의 다양한 경향의 근원이라는 것을 밝히고자 하는 견해에 따라서, 경제적 사회구성체의 발생, 발전, 쇠퇴의 과정을 포괄적으로 전면적으로 연구하는 길을 제시했던 것이다. 
 
어떤 사회라도 몇 갠가의 계급으로 분리되어 있게 마련인데, 서로 반하는 지향을 만들어 내는 원천은 그들 계급의 지위나 생활조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이처럼 일련의 역사적 저작을 통해 유물론적인 역사서술이 빛을 발하게 했고, 심원深遠한 모범을 보여주었으며, 무엇 때문에, 또한 어떻게 해서 ‘모든 계급투쟁은 정치투쟁’인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상품 생산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마르크스의 분석은 상품 분석에서부터 시작된다.상품생산은 개개의 생산자가 다종 다양한 생산물을 만들어(사회적 분업),그리고 이들 모든 생산물이 교환될 때 서로에게 동등한 것이라고 여기는, 그런 사회적 제 관계의 체제이다. 
 
각각의 상품은 사회적 필요노동시간의 일정한 부분을 나타내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가치의 크기는 사회적 필요노동의 양, 즉 그 상품, 그 사용가치의 생산을 위해서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에 의해서 결정된다. 
 
“가치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모든 상품의 일정량의 응결된 노동시간에 지나지 않는다” 
 
교환과 상품생산 발전의 최고 산물인 화폐는 사적 노동의 사회적 성격을 시장에 의해서 결합된 개개의 생산자 사이에서의 사회적 관계를 애매하게 덮어버림으로서 숨겨버렸다. 
 
상품생산의 어떤 발전단계에서 화폐는 자본으로 전화轉化한다. 상품유통의 공식은 W(상품) - G(화폐) - W(상품)이다. 즉 다른 한 상품을 사기 위해서 어떤 한 상품을 파는 것이다. 자본의 일반적 공식은 이에 반해서 G - W - G, 즉 팔기 위해서(이윤을 얻기 위해서) 산다는 것이다. 
 
잉여가치가 상품유통으로부터 생겨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상품유통에서는 등가물等價物의 교환밖에는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 가격에 첨부되어져 생겨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 서로가 손해를 보고 또한 이득을 얻는다고 해도 그것은 상쇄되는 것이고, 거기에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대량적인, 평균적인, 사회적인 현상인 것이지, 개별적인 현상은 아니기 때문이다. 
 
노동력의 소비는 노동이고, 그리고 노동은 가치를 창조한다. 화폐소유자는 노동력을 그 가치대로 사지만, 그 가치는 다른 모든 상품의 가치와 같고, 그것의 생산에 필요한 사회적 필요노동시간에 의해서(즉, 노동자와 그 가족과의 생활비에 의해서) 결정된다. 노동력을 샀다고 하는 것에는, 화폐소유자는 그 노동력을 소비할 권리, 즉 그것을 하루 종일 내내, 예를 들면 12시간 노동시킬 권리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노동자는 6시간 내에도(‘필요’ 노동시간), 자신의 생활비를 보상하는 정도의 생산물을 만들어 내며, 나머지 6시간은(‘잉여’ 노동시간) 자본가로부터 지불되지 않는 ‘잉여’생산물, 즉 잉여가치를 만들어 내게 되는 것이다. 
 
가변자본의 가치는 불변인 채로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 과정에서 잉여가치를 만들어 내는 것에 의해서 증대한다. 따라서 자본에 의한 노동력 착취의 상황을 표현하는 데는 잉여가치를 총자본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가변자본하고만 비교해야 된다.  
 
마르크스는 자본으로 전화된 잉여가치가 전부 가변자본으로 지향하는 것으로 생각하던 이전의 고전경제학 전체의 잘못(아담 스미드 이래의)을 지적했다.실제로 그것은 생산수단 및 가변자본으로 나누어진다. 불변자본의 부분(자본 총액 중의)이 가변자본 부분보다도 급속하게 증대하는 것은 자본주의의 발전과 그것의 사회주의로 전화하는 과정에 있어서 중대한 의의를 갖는 것이다. 
 
과잉생산공황은 처음에는 평균적으로 10년마다 주기적으로 자본주의제국을 기습했는데 후에는 더욱 길어지고, 그리고 더욱 불확정한 간격으로 다가오게 되었다. 
 
‘본원적 축적’(농민추방,식민지,국채,보호관세,...)은 한편으로는 극도로 ‘자유로운’ 프롤레타리아를, 다른 한편으로는 극도의 화폐소유자 즉 자본가를 만들어 낸다. 
 
생산수단의 집중과 노동의 사회화라는 것은 그 자신의 자본주의적 외피畏被와 서로 용인하지 않게 되는 점에 도달하게 된다. 그리고 이 외피는 곧 폭파된다. 그리하여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의 조종弔鍾이 울리게 된다. 수탈자가 수탈되는 것이다. 
 
마르크스에 의해서 펼쳐진 경제과학의 커다란 전진은 속류 경제학이나 현대의 ‘한계효용설’을, 서서히 멈춰지고 있는 듯한 개개의 사례나 경쟁의 피상적인 외견상의 관점에서 분석을 행한 것이 아니라, 대량의 경제현상, 사회경제의 총체적 관점에서 분석을 행하였다고 하는 점이다. 
 
‘유기적 구성이 높은 자본’(즉 불변자본이 가변자본을 상회하는 정도가 사회적 평균보다도 높은 것)은 평균보다도 낮은 이윤율을 가져온다. 모든 자본 사이에는 경쟁이 있고, 그리고 한 부문에서 다른 부문으로 자본의 이동이 자유롭기 때문에 어느쪽의 경우에도 이윤율은 평균적인 비율로 안정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