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edu

“경쟁과 효율의 교육, 강남·시골 어디든 서열화”

인서비1 2011. 5. 28. 08:01

“경쟁과 효율의 교육, 강남·시골 어디든 서열화”

‘사교육’ 기획 토론

학부모-학생-교사의 솔직 대화

 

5월4일치 ‘왜냐면’에 윤현희 독자의 ‘나의 학원교육 분패기’가 실린 뒤 교육문제로 고민하는 독자들의 의견이 쇄도했다. 이를 모아 14일치 ‘왜냐면’을 학원교육 특집으로 다룬 뒤에도 교육현실에 관한 다양한 고민을 담은 글이 끊이지 않았다. 이에 <한겨레>는 23일 ‘사교육 문제, 머리 맞대 봅시다’라는 주제로 학부모, 학생, 교사, 교육단체 관계자가 참여하는 토론을 열었다. 선행학습 문제, 사교육의 효과, 공교육 개선 방향, 학부모의 역할 등에 관한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누고 각자의 자리에서 나름의 대안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사회·정리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토론

윤현희 중2 학부모
이미혜 고1·3 학부모
전상민 서울 등촌고 3학년
이경은 서울 한울중 교사
김승현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실장

● 주제 1 사교육을 할 수밖에 없나

사교육 효과는 ‘반짝’ 착시

 

사회 오늘 토론의 단초를 마련해준 윤현희씨의 이야기부터 들어보죠. 자녀를 학원에 보내지 않으려다 결국 보낼 수밖에 없었던 사연이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는데요.

윤현희 제 아이가 올해 중학교 2학년이 되면서 서울 강남 도곡동으로 이사했어요. 수학의 경우 이전 학교에서는 한 학년 위 수준의 문제가 시험에 나왔어요. 그것도 잘못이지만, 뭐 그럴 수 있겠다 생각하고 넘어갔어요. 근데 이곳에서는 고2 수준 문제가 나왔더라고요. 그걸 또 100점 맞는 학생이 있어요. 아이도 “내가 여기서 공부 못하는 학생으로 보이긴 싫어. 더 이상은 혼자 못하겠으니 학원 보내줘”라고 하더군요. 처음엔 애가 열심히 안 했다고 생각했는데, 문제를 보니까 학원에서 선행학습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어서 화가 났어요.

이미혜 저는 고1·3 자녀를 두고 있는데 그동안 학원 보낸 적이 거의 없어요. 중학교까지는 그런대로 괜찮았는데 큰애가 고등학교에 올라가니 교과과정 자체가 어려워져 따라가기 힘들어했어요. 특히 수학이 문제였어요. 결국 학원 보내고 과외를 시켰죠. 전상민 저는 중학교 때까지 혼자 공부하고 선행학습도 안 했어요. 그러면 선생님이 “늦지 않니?” 그러세요. 아버지도 제가 학원 안 다니는 걸 걱정하셨고요. 주변에서 그러니까 저도 확신이 없어져서 고등학교부터는 수학 학원을 다니고 있어요.

사회 사교육 효과가 어느 정도 있었나요?

전상민 선행학습에만 매달린 친구들 중 잘된 애들 별로 없더라고요. 저도 당시에 분위기 따라 어려운 교재를 공부하기도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후회돼요. 조급해하지 않고 그때 이해할 수 있는 수준만 충실히 했다면 지금보다 공부를 더 잘할 수 있었을 것 같아요. 단계적으로 과정을 밟아가면 되는데 분위기가 다 엉망으로 만드는 것 같아요. 또 사교육에 한번 길들여지면 끊을 수가 없어요. 고민해서 문제를 푸는 게 아니라 학원에서 시키는 대로 하면 되니까 편하잖아요. 그래서 학원을 계속 다니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자기 스스로 공부가 안 돼요.

이미혜 제가 예전에 학원 강사를 해봤어요. 그 경험을 토대로 말씀드리면, 중학교까진 사교육이 큰 힘을 발휘할 수밖에 없어요. 학원에서는 단순 암기, 반복학습을 시켜요. 그걸로 충분히 학교 시험에 대비할 수 있어요. 그런데 중학교 때 선행학습을 통해서 지식을 습득한 학생들이 고등학교에 가면 밀려나게 돼 있어요. 다른 방식으로 착실하게 닦아왔던 애들이 잘해요. 부모들이 그런 사실을 모르는 상황에서 학원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요.

김승현 사교육의 효과가 실은 반짝·단기·착시인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최근 한국개발연구원의 연구자료를 보면, 수능에서 사교육 효과는 전체 61만명 중 4등 오르는 것으로 나타났어요. 반면 자기주도학습이 하루 3~6시간 되면 6만등 올랐어요. 물론 사교육이 필요한 순간이 있죠. 그것까지 부정하는 건 아닙니다.

사회 학생들이 선행학습을 해오니 수업시간에 선생님들이 “너희들 이거 다 알지?” 하고 그냥 넘어간다고 하는데요. 실제로 학교에서 그런 상황인가요?

이경은 만약 그런 선생님이 있다면 반성해야 할 문제라고 봐요. 물론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고충이 있겠죠. 아이들의 수준이 다 다르니까요. 저도 수학을 가르치는데, 선행학습을 해온 학생들을 보면 개념 오류가 많이 있어요. 한 달 동안 배워야 하는 개념을 선행학습에선 30분 만에 끝내요. 그걸 아무도 오류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학생 본인은 배웠으니 안다고 생각하고, 학부모도 자녀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수업시간엔 한 귀로 듣고 흘리게 되죠. 결국 어느 곳에서도 배움이 일어나지 않아요.

김승현 선생님이 개념 설명을 건너뛰고 진도를 나가는 경우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건 아닌 것 같고, 특정 지역이나 특정 학년, 특정 상위반에서 일어나는 일인 것 같아요. 선생님들이 그렇게 말씀하실 때 배경도 다양한 것 같고요.
 

● 주제 2 공교육의 역할은 무엇인가

가정환경 따른 불평등 바로잡아야

 

사회 많은 학생이 학원을 다니는 현실에서 공교육의 역할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윤현희 모든 부모들이 자녀 교육 뒷바라지를 충분히 하기가 어려워요. 부모 잘 만나는 것 때문에 많은 게 결정된다는 사실이 불공평해요. 그걸 바로잡는 게 공교육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공교육이 오히려 조장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아요. 저는 학생들을 상·중·하반으로 나눠 가르치는 것도 평등권에 위배된다고 봐요.

이경은 예전에는 수준별 수업을 얼마나 잘하는지가 학교나 교장 평가의 기준이었어요. 그 실적으로 교사들 성과급도 차등을 뒀죠. 이번에 교육감이 바뀌면서 많이 완화됐죠. 지금은 방과후 수업에서 선행학습을 하지 말라는 공문도 내려오고 있어요. 많은 교사들도 수준별로 나누는 게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제가 있는 학교가 올해부터 혁신학교로 바뀐 뒤부터 수준별 수업을 안 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어요. 문제는 이런 흐름을 지지하는 학부모들이 많지 않다는 거예요.

전상민 사교육 영향을 받아 교실 분위기가 어떤지 부모님들이 아셔야 돼요. 선행학습을 하니 학생들은 수업시간에 다른 문제집 풀고 선생님을 무시해요. 그런 상황에서 선생님들은 가르칠 마음 안 생기죠.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노력을 많이 하시는데 부모들과 학생들이 안 믿어줘요. 학생들도 학원 선생님이 혼내면 한마디도 못하는데 학교 선생님이 잘못된 행동을 지적하면 반항기를 표출해요. 심지어 학교 선생님들한테 반항하는 걸 멋있게 여기는 경향도 있는 것 같아요.

이미혜 사교육의 선생님은 소비자 욕구를 만족시킨다는 마인드가 있어요. 그런 부분 때문에 학생들이 사교육 선생님의 말을 더 잘 듣는 측면이 있는 것 같아요. 거기에 비하면 공교육 선생님들은 다소 권위적인 측면이 없지 않죠. 선생님들의 변화도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봐요.

김승현 선행학습이란 게 국가가 정한 교육과정과 무관하게 학부모와 학원이 교육과정을 따로 짠 거잖아요. 공교육이 그런 움직임을 막아줬어야 하는데, 특목고 시험이나 수능 변별력을 명목으로 오히려 조장했죠. 흔히 변별력이라는 말을 쉽게 하는데, 그건 상위권 1% 학생의 변별력을 얘기하는 거예요. 문제를 어렵게 내면 그 아래 수준의 학생들은 변별이 안 돼요. 쉽게 내야 중상-중-중하-하위 학생들의 변별력이 생겨요. 학생들이 자기 수준에서 열심히 공부했을 때 그만큼의 결과가 반영돼 성취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공부 하나도 안 하는 애나 열심히 해보려는 애나 실패 경험만 쌓고 있어요.

전상민 사회가 아이들을 목표의식 없이 경쟁에 내몰면서 애들이 끊임없이 패배의식을 느끼게 해요. 그러니 반항심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애들이 버릇없는 것처럼 보여지고요. 공교육이 그런 걸 잘 관리해줬으면 좋겠어요.

이미혜 경쟁과 효율이라는 가치관으로 교육에 접근하면 강남이든 시골이든 서열이 생기는 건 똑같은 것 같아요. 소수의 우수한 학생이 모든 투자를 독점하며 성장하게 되죠. 공교육이 그에 대한 대안을 마련해야 해요. 문제는 학부모들이 사교육을 통해서 ‘이기는’ 학생을 길러내고 싶어서 더 많은 투자를 하게 된다는 거죠. 학교에선 그런 학부모의 요구에 따라 이기는 학생을 만들어야 해요. 학교가 이런 가치관을 전면 거부하고 다른 가치관 교육을 하겠다고 선언하지 않는 한 어려운 것 같아요.

 ● 주제 3 학부모는 어떻게 해야 하나

정보교류부터 운동까지 다양한 연대를

 

사회 부모들은 자녀 교육에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요?

이경은 저도 자식을 키우지만, 아이들 모두가 ‘잘해야’ 할까요? ‘잘한다’는 기준이 뭘까요? 지금 교육체제에서는 잘 ‘학습’하는 아이잖아요. 그게 잘하는 걸까요? 학부모와 국민들의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아이가 무엇을 할 때 행복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게 중요해요. 공부 못하더라도 떳떳할 수 있는 자존감을 키우도록 해야 돼요. 학습 능력만으로 아이를 잘한다 못한다, 성공이다 아니다로 판단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이미혜 아이를 바라보는 태도가 달라져야 해요. 공부 잘하는 아이, 남보다 우수한 성적 올리는 아이가 되기를 기대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무슨 일이든 결정할 때 학부모가 주도하기보다는 아이와 의논하길 바랍니다.

윤현희 처음에 제가 ‘학원교육 분패기’라는 글을 쓰고 나서 생각해 보니, 정말 말도 안 되는 어려운 문제 제기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국에는 대학 서열화 문제더라고요. 명문대 가려다 보니 특목고를 가야 하고, 특목고 가려다 보니 중학교에서 선행학습 해야 하죠. 특목고는 중학교에 학생들 줄 세워달라고 하고, 대학도 고등학교에 일등부터 몇 등까지 끊어달라고 하고. 결론은 서열화를 요구하는 상급학교의 문제라고 볼 수밖에 없어요. 전체 교육과 사회 구조의 문제죠.

사회 부모들이 ‘좋은 대학 가는 것이 성공이다’라는 통념에 의문을 제기하고 그것을 깰 수 있을까요?

이미혜 명문대를 나와야 좋은 직장을 얻을 수 있죠. 그 관문이 좁기 때문에 학벌이라도 있어야 가능하죠. 그런 사고방식이 바뀌어야 해요. 아이가 무엇을 위해서 그 진로를 선택하는지 같이 생각해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요. 물론 대학 떨어지는 걸 받아들이는 게 힘들죠. 왜 대학을 가느냐고 생각하면….

윤현희 필요가 없으면 대학도 안 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결국은 대학 서열화 문제인데…. 그러니 점점 할 말이 없어지는 것 같아요.

전상민 형이 저한테 “나는 대학 가면 정말 행복할 줄 알았다. 그런데 대학 가니 그게 아니더라”며 어른들한테 속았다고 하더라고요. 부모들이 “나중에 대학 가면 행복해진다”고 할 게 아니라 우리들이 지금 행복할 수 있게, 공부를 하더라도 목표를 갖고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줬으면 좋겠어요.

김승현 사교육·공교육을 나누는 것보다 중요한 건 근본적으로 어떤 학습 경험을 하는가예요. 최근 정부가 수능 영역별 만점자가 1% 나오도록 하겠다고 발표했어요. 쉽게 내겠다는 거죠. 이 정책 꼭 제대로 됐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되면 상위권 학생 변별을 어떻게 하느냐고 반발이 생길 텐데, 여기에 따라가지 말아야 해요. 수능의 전체 변별력을 높이려면 만점자가 좀 나와야 해요. 경쟁이 완화돼야 하는 측면이 분명 있는 거죠. 그래야 사교육이 근본적으로 줄어들 수 있을 것 같아요. 같은 사교육 안에서도 거품이 많아요. 겁주면서 자녀를 불안하게 만드는 학원은 보내지 마세요. 잘 가르치는 학원을 골라서 가야 해요. 실은 과도한 사교육을 조장하는 건 동네의 작은 보습 학원이 아니라 대형 학원들이에요.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고도 자녀 교육을 잘해낸 경험을 나눌 수 있는 커뮤니티가 활성화돼야 겠죠. 저희가 최근 온라인 상담소를 개설한 것도 그런 이유예요. 동네 엄마들끼리 정보 교류 모임을 만드는 것에서부터 정책을 바꾸는 운동까지 다양한 연대가 필요해요.

 
기타 독자 의견    

    자녀에게 능동적인 배움을 알려줘야
 고액과외를 받고 비싼 학원을 다니면서 이른바 명문대에 들어간 학생들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고액과외를 받고 비싼 학원을 다녔어도 명문대에 발도 못 들여놓는 친구들도 수두룩하다는 사실을 아는가? 오히려 인터넷도 잘 안되고 주위에 학원도 몇 없는 시골에서 학교수업과 자습만으로 명문대에 들어간 학생들도 있다. 성공한 그들의 공통점은 스스로 해냈다는 것에 있다. 학생들에게 필요한 건 수동적인 느낌의 ‘교육’이 아니라 능동적인 느낌의 ‘배움’과 ‘학습’이 아닐까? ‘교육’이란 자녀가 ‘능동적인 배움과 학습’의 참된 의미를 알고 실천하는 길을 알려주는, 마치 가이드와 같은 역할에서 그쳐야 하는 것 아닐까? (이수용/서울 강서구 등촌3동)
  
 교육 구조 개선에 힘 모을 때
 이 땅의 교육에 대한 믿음을 가능한 한 버리지 않되 교육 구조의 개선에 힘을 합칠 수밖에 없다. 이미 대안교육, 혁신학교 등이 뜻있는 이들의 노력으로 이루어짐에 관심을 갖고 있다. 어떤 제도이든 깊이있게 성찰하는 과정을 거쳐 아이들에게 맞게 적용할 수 있도록 인내심을 갖고 노력해야 한다. 또한 이미 주어진 교육제도에서 열심히 분투하느라 고달픈 아이들을 마음으로 지지하고 격려해주는 것, 그것이 부모됨이고 나아가 생명을 양육하는 인간의 도리라고 생각한다. (이선옥/독서지도사·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호매실동)

 공교육에 대한 애정과 정확한 현실인식이 필요
 서울 강남구 도곡동의 중학교 수학과목이 전체 중학교의 모습은 아니다. 아주 특수한 지역에서 특수한 과목에 고가의 사교육이 집중되는 지엽적인 일이다. 이는 최상위권 특목고의 피말리는 내신경쟁 상황과 흡사하다.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감정적인 공교육 성토와 정확한 현실파악 없는 섣부른 공교육 붕괴 우려는 건전한 상식을 가진 교사들을 위축시키고, 다수 학부모들과 학생들의 교사와 학교에 대한 불신을 부추긴다. 평범하게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공교육에 대한 애정과 정확한 현실인식에 기초한 치밀한 비판, 새로운 방향 모색이다. (홍명희/부산 반안중 교사)

 사교육 시장 주체는 학원 아니라 학부모
 경쟁으로 서열화를 부추기는 사회에서 아이들은 치열하게 공부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 놓여 있다. 물론 사교육이 지나친 부분도 분명 있을 터이다. 그러나 사교육 시장을 주도하고 재편하는 주체는 학원이 아니라 학부모다. 정부의 경쟁 위주 정책이 사교육을 부추긴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다. 일제고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공개하도록 했다. 이는 초등학교 때부터 경쟁이 심화되는 결과를 낳아 사교육을 조장한다. 경쟁 위주의 교육, 즉 구조적 모순의 변화 없이 사교육을 질타하는 것은 옳지 않다. (문정인/전라남도학원연합회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