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좋은글

잘 풀리는 세상 / 서영숙

인서비1 2010. 1. 4. 11:26

잘 풀리는 세상 
 
                                    서 영 숙

  술술 잘 풀리는 실타래가 있다
  술술 잘 풀리는 수수께끼도 있다
  술술 잘 풀리는 시험지?
  술
  술
  술
  슬퍼서 한 잔, 좋아서 한 잔 억울해서 한 잔
  푸념 안주 한 접시, 하루의 짐 한 냄비
  주거니 받거니 엉키고 섞이고 물구나무서고
  그래, 잘 익어 실눈 게슴츠레 발효되면
  슬픈 별도 되고, 어린 왕자도 되어
  향그런 내음 이슬 머금은 아침
  장미꽃 전설의 홀씨 되어 우주를 떠돌겠지
  술 술 술
  우리네 인생사 이리도 잘 풀렸음
  빚 독촉에 다섯 식구 황천 행 티켓
  끊지 않았으련만
  부지런한 왕거미 잠 설치고 집 짓는 밤,
  미치도록 너를
  사랑하고 싶다
  꿀꺽꿀꺽 꾸르르르 긴 목울대 울며 넘어가다
  어디 메쯤 황홀하게 식어
  공룡 화석 남기고 가도 좋을
  입맞춤 하고싶다
  널브러진 독 그 깊은 골짜기, 노란  바가지
  동, 동, 동 고래고래 소리치다
  어지러워, 어지러워 피식 스러질 때까지
  거짓 없는 너의 마음을
  실핏줄 속속들이 물들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