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돕는다는 것은 함께 비를 맞는 것

인서비1 2019. 8. 1. 16:08
돕는다는 것은 함께 비를 맞는 것 -신영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중에서| 세상사는 이야기
좋은열매|조회 32|추천 0|2018.03.05. 16:43

 

 

돕는다는 것은 함께 비를 맞는 것

남을 도울 힘이 없으면서 고정(苦情)을 돕는다는 것은 매우 마음 아픈 일입니다. 그것은 단지 마음 아픔에 그치지 않고 무슨 경우에 어긋난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합니다.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임을 모르지 않습니다만, 빈손으로 앉아 다만 귀를 크게 갖는다는 것이 과연 비를 함께하는 것인지, 그리고 그에게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는지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영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중에서 ◆신영복의 글을 읽으면 매번 다른 세상을 보게 된다.

내가 슬픔을 느낄 때면 슬픔을 다독이는 이웃을 보여주고, 기쁨을 느낄 때면 나누는 마음 열어준다. 슬픔을 나누고 도움을 주는 데는 여러 방법이 있다.

물질의 지원에서부터 눈물을 닦아주며 고민이나 어려움을 들어주는 것까지…. 어려움을 토로하고, 위로받을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은 설사 그 사람이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는 않더라도

큰 힘이 된다.

용기를 내서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는 힘을 주기 때문이다.

 

출소 이후에 신영복 선생이 직접 "함께 맞는 비"에 대해 설명한 것입니다.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이다."
 
이 글은 옥중에서 겪은 매우 침통한 기억을 떠올리게 합니다. 내일 새벽 출소를 앞둔 재소자가 내게 출소 후의 취직을 부탁한 일이 있습니다.

나의 대학동창 친구에게 메모를 적어달라고 하는 조심스러운 부탁이었습니다. 교도소 생활도 매우 성실하고 양심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내게는 출소자의 취직을 부탁할 만한 동창생이나 친구가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국가보안법으로 수형생활을 하고 있는 내가 어떤 형태로든 연락을 취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였습니다.

나는 그가 찾아갈 사람을 소개하지 못한 채 그를 떠나보낸 후 한동안 매우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성실하고 양심적인 출소자 한 사람을 도울 수 없는 자신의 처지가 매우 후회스럽기도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만약 내가 감옥에 있지 않고 동창생들과 같은 지위에 있었더라면 비록 그런 능력이 있었을지는 모르지만 그를 만날 수는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능력은 있되 만남이 없는 경우'와 '만남은 있되 능력이 없는 경우' 중에서 어느 것이 나은지에 대해 한동안 고민한 적이 있습니다.

나는 1년여 동안 그와 함께 수형생활 속에서 나눈 이야기들이 결코 부질없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비록 그에게 작은 우산 하나도 들어주지 못했지만 그와 함께 비를 맞으며 걸었던 수형생활이 그에게 어떤 형태로든 도움이 되었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사람은 스스로를 도울 수 있을 뿐이며, 남을 돕는다는 것은 그 '스스로 돕는 일'을 도울 수 있음에 불과한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가르친다는 것은 다만 희망을 말하는 것이다'라는 아라공의 시구를 좋아합니다.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으며 함께 걸어가는 공감과 연대의 확인이라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