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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 경제학자]휘트먼과 로스토-사회발전 고민에 대한 보편성의 차이

인서비1 2018. 1. 6. 17:28
[시인과 경제학자]휘트먼과 로스토-사회발전 고민에 대한 보편성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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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들은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선고를 옛 시대를 청산하고 새 시대가 열리는 시작이라고 평했다. 옛 시대란 개발독재시대를 일컫는 것이리라. 

5·16 군사쿠데타 직후에 균등발전과 자립형 경제모델이 고려되기도 했다. 그러나 생산요소인 자본이 엄청나게 모자랐고, 그를 조달하기 위해 굴욕적으로 조약을 맺거나 원조를 받기도 했고, 해외에 파병하기도 했다. 결국 ‘불균등 발전’으로 돌아섰다. 한쪽에 몰아줬기에 물가가 올랐고 생활필수품도 모자랐다. 재벌이 만들어지는 시작이었고, “케이크가 커지면 나눠줄게”라는 익숙한 약속이 만들어졌다. 지금 느끼는 심각한 불평등의 뿌리가 된 셈이다.

우리나라의 이러한 성장모형은 미국의 경제학자 WW 로스토(1916~2003)에게서 시작됐다. 실제로 그는 행정부에서 일할 때 우리나라에 몇 차례 방문했다. 이러한 모델을 따르도록 권했으며, 한·일 국교정상화를 통해 자본 도입을 촉구했다. 

(왼쪽)휘트먼 / Whitman Archive (오른쪽)로스토 / wikipedia

(왼쪽)휘트먼 / Whitman Archive (오른쪽)로스토 / wikipedia


열다섯 살에 예일대학에 입학해 스물넷의 나이에 박사학위를 마치고 대학에서 교편을 잡았다. 2차 세계대전 중에는 CIA의 전신인 군전략첩보대(OSS)에서 폭격 대상을 골라내는 일을 했다. 냉전이 시작되면서 유럽동맹을 지원하겠다는 마셜플랜을 설계하는 일을 맡기도 했다. 존 F 케네디와 린든 존슨 대통령 행정부에서 일하며, 자본을 늘려서 경제가 성장하면 민주주의가 더 나아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유명한 그의 책 <경제성장의 여러 단계: 반공산주의 선언>은 이런 생각을 반영하고 있다. 모든 사회는 ‘전통-과도-도약-산업화를 통한 성숙-대량소비’의 다섯 단계를 지나 발전한다고 설파했다. 곧 후진국도 선진국이 수백 년에 걸쳐 구축해 온 경제성장에 재빨리 도달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여기에는 자본의 원조와 집중투자가 전제됐다. 그의 모형을 따라 지표상으로 경제는 발전했다. 그러나 불균형한 지원은 불평등을 심화시켰고, ‘원조’는 후진국들이 선진국에 종속되는 결과를 낳았다. 또한 수출주도형 발전은 한 나라의 경제체제의 완결성을 깎았다. 나아가 경제개발이 이념과 연결되는 문제를 만들어버렸다. 

학술적으로 그의 이론은 ‘개발론’으로 불리며 성장을 이해하는 중요한 도구가 돼 왔다. 하지만 정책의 입안이라는 측면에서 자국의 이익과 헤게모니만을 우선했다. 이를 쫓은 개발도상국들의 독재·부패·불평등과 같은 여러 문제를 외면했고, 이 점에서 ‘보편성’을 획득하지는 못했다. 경제학자 로스토의 이름은 ‘월트 휘트먼’이다. <풀잎>이라는 시집으로 잘 알려진 시인 월트 휘트먼(1819~92)과 같다. 그와 시를 사랑한 사회주의 이민자인 로스토의 부모가 지어줬다. 미국 ‘자유시’의 아버지로 불리는 휘트먼은 인종을 넘나들며 보편성을 얻었다. 청교도 윤리가 강했던 미국 사회에서 ‘성’을 노래했다. 가난한 삶을 돌아 신문을 발행했던 그는 사회적인 시도 썼다.


“오 캡틴! 마이 캡틴!”-교실을 떠나는 키팅 선생을 향해 학생들이 일어서며 외쳤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마지막의 이 울음이 바로 그의 시인데, 본래 링컨에게 바치는 추모시였다. “마이 캡틴”을 부르며 “당신을 위해 깃발이 휘날리”고 “당신을 위해 꽃다발이 준비돼”있다고 시인은 울었다. 종종 사회 헌신을 노래했고, ‘애국하는’ 마음을 중요하게 여겼다. 퀘이커교도인 그는 모든 이들의 평화와 평등을 사랑했다. 노예제가 폐지되길 바랐고, 계급과 성에 대해서도 열린 시각을 가졌다. “나의 모든 원자 당신 것이나 마찬가지니/ 내가 취하는 것 당신도 취하리라”며 “계속 용기 내어/ 한군데서 놓치면 다른 곳 찾아보기를/ 당신 기다리며 어디엔가 멈춰서 있”으면서 서로 기댈 수 있다고 믿었다(‘나의 노래’). 또 “영혼을 모독하는 것을 멀리하고/ 당신이 장엄한 시가 되게 하라”고 일갈했다(<풀잎> 서문).

두 월트 휘트먼은 자신들이 속한 사회를 사랑했다. 그런데 그 사랑이 한 나라를 넘어 어디까지 두루 바라보았는가는 아주 달라 보인다. 마치 ‘현실경제학자’와 ‘시인’의 차이인 것처럼.

<김연 (시인·경제학자)>



원문보기: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703211631031&code=114#csidx33cca2a280408079833736998bc740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