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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 경제학자]베르톨트 브레히트와 프리츠 슈테른베르크-제국주의 위기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다

인서비1 2018. 1. 6. 16:56
[시인과 경제학자]베르톨트 브레히트와 프리츠 슈테른베르크-제국주의 위기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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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베르톨트 브레히트(1898~1956)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김광규 역). 이 시를 우리는 국회에서 들은 적이 있다. 바로 한 해 전에 테러방지법의 통과를 반대하는 필리버스터에서였다. 192시간을 넘어서야 마무리된 이 연설들 중 이학영 의원의 입을 통해서였다.

이 시가 주는 울림은 시인의 삶에서 비롯된다. 나치 하에서 아무 도리 없이 망명해서 생활했고, 그동안 주변의 친구들(철학자 발터 벤야민, 영화감독 콕흐 등)은 죽어나갔다. 평화를 위해 희생된 사람들 위에 겹쳐지는 자신의 삶에서 부끄러움을 읽었던 것이다.

프리츠 슈테른베르크, 베르톨트 브레히트 / 위키피디아

프리츠 슈테른베르크, 베르톨트 브레히트 / 위키피디아


브레히트는 10대 유년시절부터 시를 써 1000여편이 넘는 작품을 남겼다. 초기 작품 중 하나이고, 전통극의 규범을 깨뜨린 것으로 평가받는 희곡 <서푼짜리 오페라>는 산업화의 진행, 시민사회의 형성, 그리고 그것들이 불러오는 인간 소외를 풍자했다. 윤리로 포장된 시민사회의 질서가 사실은 약탈적으로 세상을 굴린다고 비판한다. 돈으로 인간을 소유하는 현실과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먹어치우는 낭떠러지의 시대를 이야기하며, 제국주의 경제에 예리한 칼날을 댄다.

그는 당시의 여러 철학자와 사회주의자, 경제학자들과 함께 활동했다. 최초의 여류 경제학자로 꼽히는 로자 룩셈부르크도 그 중 한 명이었다. 그러나 브레히트가 ‘나의 첫 번째 선생님’이라고 칭한 사람이 있었다. 

프리츠 슈테른베르크(1886~1959)가 바로 그 경제학자다. ‘위대한’ 경제학자 슘페터는 한계효용(지난번에 소개된)의 개념을 완성하고, ‘창조적 파괴’를 주창하며 케인즈와 어깨를 겨루는 학자다. 그는 슈테른베르크를 ‘과학적’인 입장을 견지한 마르크스학파의 젊은 경제학자로 분류했다.

슈테른베르크는 <제국주의>를 통해 마르크스가 예견한 산업화와 자본주의가 향한 곳이 어디인지를 밝혔다. <왜 히틀러는 이길 수 없는가?>를 써서 제국주의 경제의 끝을 예견하기도 했다. 제국주의의 붕괴문제, 축적과 빈곤, 그리고 위기를 천착했다. 보호주의와 전쟁 기반 경제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론의 맞고 틀림을 떠나 그의 연구들은 모리시마 같은 현대 수리경제학자의 마르크스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는 중요한 계기가 돼 왔다. 

20대 시절 브레히트는 돈의 역할과 의미를 알고자 했다. 이런 관심 덕에 슈테른베르크에게 이끌렸고, 둘은 거의 매주 만났다. 슈테른베르크는 시인에게 경제학과 마르크스주의를 가르쳤고, 시인은 노동가치와 생산가치의 관계에 대해 눈을 떴다. 슈테른베르크는 그가 시인답게 폭넓게 상상하고 대개의 학자들이 생각지 못했던 여러 가설들을 떠올렸다고 평했다.

둘은 ‘위기’에 관해서 짧은 글을 같이 써서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사회주의와 관련한 현실의 활동도 함께했다. 경제학자는 시인이 희곡을 쓸 때에 당시까지 유행해 왔던 희곡의 전형을 타파하기를 바랐고, 그에 응한 브레히트는 완전히 다른 경향의 글을 써낼 수 있었다. 후대 학자들은 그 경향을 해석코자 ‘마르크스적 심미주의’라는 말을 만들기도 했다. 

둘은 나치를 피해 따로 망명했고, 문학과 경제학이라는 다른 갈래의 길을 걸었다. 1940년대 후반 시인은 현실 속 사람들 한 명 한 명의 아픔을 보려 했고, 경제학자는 사회주의 운영에 조금 더 참여했다. 하지만 그들이 같이 논의했던 산업화와 제국주의의 위기에 대한 생각들은 오늘 ‘트럼프의 미국’이 보이는 문제들을 잘 비추고 있다.

<김연 (시인·경제학자)>



원문보기: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702211354051&code=114#csidx1c2a95ddd98ee4486e01c24e82e87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