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society

체 게바라

인서비1 2017. 10. 10. 10:19

50년간 이어진 게바라 신화는 과연 허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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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 게바라 50주기에 되돌아보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의 신화
 

베레모, 카키색 군복, 구레나룻, 깊은 눈동자
게바라는 과연 ‘이미지의 혁명가’에 불과할까

의대생 시절 모터사이클 미주 일주, 현실 목격
자신만의 신념 키운 다음 혁명의 길에 뛰어들어

쿠바에 핵미사일 배치하려한 소련도 과감히 비판
눈 밖에 나서 쿠바 떠났지만 이상 실현하려 노력

권력 즐기지도, 아부하지도 않고 신념대로 행동
샤르트르 ‘우리 시대 가장 이상적인 인간’ 칭송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쿠바정부 공식 사진작가 알베르토 코르다가 1960년 3월5일 촬영한 게바라의 모습. '혁명가의 초상'이란 이름의 이 사진은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복제된 작품으로 통한다.

쿠바정부 공식 사진작가 알베르토 코르다가 1960년 3월5일 촬영한 게바라의 모습. '혁명가의 초상'이란 이름의 이 사진은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복제된 작품으로 통한다.

 
10월 9일은 ‘남미의 혁명가’ 체 게바라(1928~1967)가 세상을 떠난 날이다. 올해로 50년이 됐다. 당시 남미 볼리비아의 산중에서 게릴라전을 벌이던 게바라는 10월 8일 산골 마을 라이게라에서 볼리비아군에 포로로 잡혔는데 재판도 없이 다음날 학교 건물에서 곧바로 총살당했다. 39세였다. 볼리비아 정부는 수염과 머리카락이 덥수룩한 그의 시신 사진을 이튿날 곧바로 공개했다. 게바라를 제거했다는 증거를 신속하게 제시한 셈이다. 그만큼 그의 존재가 위협적이라고 생각했다는 증거일 것이다.  
 
1928년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난 게바라는 1956년 피델 카스트로 등과 함께 쿠바에서 게릴라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결국 1958년 12월 친미 풀헨시오 바티스타 정권을 넘어뜨리고 이듬해 아메리카 대륙의 첫 공산 정권을 수립하는 데 기여했다. 하지만 게바라는 여러 가지 이유로 1966년 아프리카 콩고를 거쳐 남미 볼리비아로 옮겼다. 게바라는 쿠데타로 집권한 볼리비아의 레네 바리엔토스 군사정권을 무너뜨리려고 47명으로 이뤄진 게릴라 부대를 만들었다. 하지만 불리한 상황 속에서 포로로 잡혀 처형당했다.  
 
그의 시신은 비밀리에 볼리비아에 묻혔지만 1997년 발견돼 쿠바의 산타클라라로 옮겨졌다. 외신에 따르면 쿠바 수도 아바나에서 300㎞ 떨어진 산타클라라에 있는 게바라의 무덤에는 최근 그의 얼굴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거나 생전 모습이 담긴 사진 등을 든 참배객들이 몰리고 있다.  
게바라를 찍은 '혁명가의 초상' 오리지널 버전.

게바라를 찍은 '혁명가의 초상' 오리지널 버전.

 
<게바라는 좌우를 떠나 저항과 가치전복의 아이콘이다>
게바라는 독특한 인물이다. 같은 세대 인물은 물론 전 세계의 수많은 젊은이가 세상을 떠난 지 반세기가 된 인물을, 그것도 대중문화 스타가 아닌 ‘혁명가’인 그에게 열광하기 때문이다. 게바라는 스타 혁명가다. 극좌파는 물론 심지어 극우파들도 시위 현장에 게바라의 모습이 티셔츠를 단체로 맞춰 입거나 그의 형상이 그려진 깃발을 들고 나오기도 한다. 좌우나 보수-진보를 넘어 세상의 모든 기존 체제와 권위에 저항하면서 사회모순 해결을 외쳤다는 인상 때문일 것이다. 그는 기존질서에 저항하고 새로운 부르짖는 거의 대부분의 대안문화나 저항문화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게바라는 0세기 이미지 정치의 상징으로도 평가된다. 다양한 행사와 시위에서 그의 이미지를 빌려 쓰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지도자를 맡은 적이 없는데도 ‘혁명의 아이콘’이 됐다>
게바라는 국가 지도자를 맡은 적이 없다. 그런데도 남미 혁명의 아이콘이다. 특히 중남미에서는 쿠바혁명가 피델 카스트로(1926~2016) 총리, 칠레의 좌파정치인 살바도르아옌데(1908~1973) 대통령과 더불어 가장 주목받는 남미 좌파 정치인 중 한 명이다. 카스트로는 게릴라전을 통해 1959년 쿠바에 공산주의 정권을 세워 국가지도자가 됐다. 아옌데는 1970년 라틴아메리카 사회주의 정당 최초로 민주선거를 통해 집권했다. 아옌데는 칠레사회민주당과 칠레 공산당이 연합한 인민연합 후보로 출마해 당선했다. 1971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시인 파블로 네루다(1904~1973)이 애초에 칠레 공산당 대선후보였지만 아옌데로 단일화했다


[출처: 중앙일보] 50년간 이어진 게바라 신화는 과연 허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