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레모, 카키색 군복, 구레나룻, 깊은 눈동자
게바라는 과연 ‘이미지의 혁명가’에 불과할까
의대생 시절 모터사이클 미주 일주, 현실 목격
자신만의 신념 키운 다음 혁명의 길에 뛰어들어
쿠바에 핵미사일 배치하려한 소련도 과감히 비판
눈 밖에 나서 쿠바 떠났지만 이상 실현하려 노력
권력 즐기지도, 아부하지도 않고 신념대로 행동
샤르트르 ‘우리 시대 가장 이상적인 인간’ 칭송

쿠바정부 공식 사진작가 알베르토 코르다가 1960년 3월5일 촬영한 게바라의 모습. '혁명가의 초상'이란 이름의 이 사진은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복제된 작품으로 통한다.
10월 9일은 ‘남미의 혁명가’ 체 게바라(1928~1967)가 세상을 떠난 날이다. 올해로 50년이 됐다. 당시 남미 볼리비아의 산중에서 게릴라전을 벌이던 게바라는 10월 8일 산골 마을 라이게라에서 볼리비아군에 포로로 잡혔는데 재판도 없이 다음날 학교 건물에서 곧바로 총살당했다. 39세였다. 볼리비아 정부는 수염과 머리카락이 덥수룩한 그의 시신 사진을 이튿날 곧바로 공개했다. 게바라를 제거했다는 증거를 신속하게 제시한 셈이다. 그만큼 그의 존재가 위협적이라고 생각했다는 증거일 것이다.
1928년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난 게바라는 1956년 피델 카스트로 등과 함께 쿠바에서 게릴라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결국 1958년 12월 친미 풀헨시오 바티스타 정권을 넘어뜨리고 이듬해 아메리카 대륙의 첫 공산 정권을 수립하는 데 기여했다. 하지만 게바라는 여러 가지 이유로 1966년 아프리카 콩고를 거쳐 남미 볼리비아로 옮겼다. 게바라는 쿠데타로 집권한 볼리비아의 레네 바리엔토스 군사정권을 무너뜨리려고 47명으로 이뤄진 게릴라 부대를 만들었다. 하지만 불리한 상황 속에서 포로로 잡혀 처형당했다.
그의 시신은 비밀리에 볼리비아에 묻혔지만 1997년 발견돼 쿠바의 산타클라라로 옮겨졌다. 외신에 따르면 쿠바 수도 아바나에서 300㎞ 떨어진 산타클라라에 있는 게바라의 무덤에는 최근 그의 얼굴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거나 생전 모습이 담긴 사진 등을 든 참배객들이 몰리고 있다.

게바라를 찍은 '혁명가의 초상' 오리지널 버전.
<게바라는 좌우를 떠나 저항과 가치전복의 아이콘이다>
<국가지도자를 맡은 적이 없는데도 ‘혁명의 아이콘’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