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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도는 어떻습니까?"

인서비1 2011. 4. 21. 19:39

"한국 사람들은 왜 차를 타고 가서 걷지요?"

오마이뉴스 | 입력 2011.04.21 15:17 |


"청산도는 어떻습니까?"

"예? 아직 못 가봤는데요."

"예에? 설마."

"진짜입니다. 청산도는 아직…."

"왜요?"

질문을 한 그도, 답하는 여행자도 당혹스럽긴 마찬가지였다. 당연한 듯 물어 봤으나 당연한 듯 아니라고 했다. 여행을 업으로 하는 여행자가 청산도를 아직 가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그는 믿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외진 섬을 돌다보니 청산도는 늘 순서 밖에 머물렀다. 슬로시티로 지정되면서 청산도는 더욱 여행자에게 다음에 갈 섬으로만 여겨졌다. 시실 무엇보다 청산도에 발길을 들이지 못한 이유는 사람들이 붐벼 섬 특유의 한갓짐이 없을 것이라 지레짐작했기 때문이다.

아마 지난해쯤으로 기억된다. 형과 여행 이야기를 하다 우연히 청산도에 대해 물었다. 청산도를 제 집처럼 드나드는 형이었다. 사람이 많지 않는냐는 여행자의 물음에 많기는 하지만 도청항과 당리 일대만 북적댈 뿐 그곳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사람을 만나기조차 힘들다고 했다. 그의 말에 여행자는 용기를 내었다.

이번 3일 간의 여행은 당초 장흥 일대를 쏘다닐 계획이었다. 차에 문제가 생기지만 않았다면 여정은 예정대로 진행되었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차에 문제가 생겼고 망설임 없이 완도항에서 청산도 가는 배를 탔다.





완도항을 떠나면서 본 주도

ⓒ 김종길

오후 1시 40분경, 청산도행 배는 완도항을 떠났다. 구슬과 같이 생겼다 하여 주도珠島라 불리는 추섬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였다. 짙은 상록수림으로 가득 찬 주도에는 137여 종의 다양한 식물이 있어 천연기념물 제28호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섬 일대가 벌목을 금지하는 봉산이 되었고 섬 중앙에 서낭당이 있었다고 한다.





청산도 가는 뱃길에서

ⓒ 김종길

배는 바다 가운데로 나아갔다. 햇살이 무척 따가운 오후였다. 배가 큰 바다로 나아가자 갑자기 안개가 몰아친다. 해는 어느새 사라졌고 사면이 안개로 뒤덮였다. 한치 앞을 분간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안개가 온 바다를 삼켰다. 안개에 놀란 배는 연신 고동을 울린다.

갈매기가 날아오르지 않았다면 깊은 절망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뭍을 벗어난 지 한참이 되었지만 갈매기는 부지런히 배의 뒤를 쫓았다. 한참을 그렇게 꽁무니를 쫓더니 갈매기는 사라졌다. 어디선가 어선 한 척이 나타났다. 섬이 가까이 다가온 모양이다.





청산도 가는 뱃길에서

ⓒ 김종길





청산도 가는 뱃길에서

ⓒ 김종길

길게 뱃고동이 울린다. 안개가 점점 걷히기 시작했다. 간간히 햇빛이 비추더니 안개 속으로 멀리 청산도가 보였다. 전복으로 유명한 완도답게 바다 곳곳이 전복양식장이다. 배들은 부지런히 오가고 아름다운 청산도가 또렷이, 아주 또렷이 보이기 시작했다.





청산도 도청항

ⓒ 김종길

부두는 복잡했다. 평일인데도 수많은 관광객들로 넘쳐났다. 택시, 관광버스, 마을버스로 북새통이었다. 잘 못 왔나. 슬로시티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도청항 일대는 차량들로 북적댔다.





청산도

ⓒ 김종길





사람들로 북적대는 청산도 도청항

ⓒ 김종길

청산도가 진정 슬로시티가 되려면 먼저 차량 문제를 해결해야 된다는 생각이 든다. 증도처럼 차량의 출입을 아예 막기에는 섬이 커서 문제가 되겠지만 부분적인 통제는 꼭 필요해 보였다. 마을 사람들의 차나 마을버스, 택시를 제외한 모든 차량은 섬에 들이지 않는 게 슬로시티 청산도에 걸맞을 것이다. 이틀 동안 여행자가 섬을 둘러보고 난 후에도 결론은 같았다.

사람들이 가장 몰리는 당리의 < 서편제 > 와 < 봄의 왈츠 > 촬영지도 도청항에서 20여 분이면 충분히 걸어갈 수 있는 거리였다. 그 짧은 거리조차 관광버스로 이동을 한다. 슬로시티가 무색하다. 노약자나 몸이 불편한 사람이 있다면 마을에 있는 택시나 버스로 이동하면 된다. 마을버스는 배시간에 맞추어 항상 출발하기 때문에 이용하는데 불편이 없다. 걷기 열풍은 대단한데 걷기 문화는 아직 서툴다.

"한국 사람들은 왜 차를 타고 가서 걷지요?"

외국 여행자들이 더러 하는 말이다. 그들의 눈에는 차를 타고 멀리까지 가서 걷는다는 게 좀처럼 적응하기 힘든 낯선 풍경인 것이다. 사실 지리산 둘레나 제주 올레를 보며 여행자도 의문이었다. 걷기가 일상화 된 것이 아니라 걷기 열풍이 일상화 된 느낌이다.





청산도 나오는 선상에서

ⓒ 김종길

숙소를 먼저 잡기로 했다. 부두를 따라 걷다가 바닷가에 숙소를 정했다. 짐을 풀고 해안을 따라 걸었다. 맨 처음 들린 마을은 도청리 옆 도학리였다. 나의 청산도 여행은 이곳에서 시작되었다. 지도 한 장에 의존해서 발 가는 대로 걸을 작정이었다. 전체 11코스로 나누어진 '청산도 슬로길'은 적어도 여행자에겐 의미가 없었다.

첫날 도청항에서 도학리, 당리를 걸었다. 이튿날 도청리의 반대편인 중흥리까지 마을버스로 이동을 해서 신흥리, 동촌리, 상서리 원동리, 양지리, 부흥리, 신풍리, 청계리를 지나 읍리까지 걸었다. 읍리 인근에서 마을 주민의 트럭을 얻어 탔고, 마지막에는 배시간에 쫓겨 택시를 탔다.





청산도

ⓒ 김종길





청산도

ⓒ 김종길

여행자는 섬에 가면 늘 차를 두고 간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걷지만은 않는다. 걷다 지치면 마을버스도 타고 차를 얻어 타기도 한다. 다만 마을사람들의 차를 이용한다. 그래야 공정한 여행이고, 좀 더 섬에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걷는 여행이 의미는 있겠으나 너무 거기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 여행자의 생각이다. 걸으면서 본 청산도의 마을 이야기를 앞으로 6~7회에 걸쳐 연재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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