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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가출했다? 아들 군대, 딸 유학 보내고 세계일주한 오현숙씨의 여행

인서비1 2010. 10. 6. 14:21

엄마가 가출했다? 아들 군대, 딸 유학 보내고 세계일주한 오현숙씨의 여행기

헤럴드경제 | 입력 2010.10.06 10:28  

그녀도 남들과 같았다. 직장여성으로, 두 아이의 엄마로 참 열심히 살았다. 때론 야근도 하고 밤샘도 해야했다. 그게 평범한 삶의 진리였고, 또 최선이기도 했다. 그러다 자녀들이 제법 머리가 커졌을 무렵, 그녀는 거울속 낯선 여자를 본다. 소스라치게 놀랄만큼 무서운 표정의 여자. 그것은 바로 자신이었다. 일과 가정을 우선으로 하며 살아온 평생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얼굴이었지만, 결코 그녀가 원했던 '행복한 얼굴'은 아니었다. 정말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해야겠단 생각을 했다. 지금 이순간 진정 원하는게 무언지 곱씹었다. 그건 바로 세계여행이었다. 3박4일 다녀오는 패키지 투어가 아닌, 온전히 나만을 위해 먹고, 나만을 생각하고, 내 몸만 걱정하면 되는 그런 배낭여행. 그래서 '집 나간 엄마' 오현숙(50)씨의 2년간의 여행은 시작된다. 요즘 대한민국 아줌마들을 흔들어놓고 있는 '평생 꿈만 꿀까 지금 떠날까'(문학세계사)의 저자 오현숙씨로부터 못다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혹시 포기할까봐 집부터 팔았다 

다들 3개월이라고 했다. 내일모레면 오십. 이팔청춘도 아닌 오씨가 홀로 세계여행을 떠난다고 했을 때. 그녀의 친구들은 모두 "3개월이면 돌아온다"고 호언장담 했다.

"그래서 집부터 정리했죠. 돌아와도 갈 곳이 없으면 돌아올 생각을 안할테니까요.또한 2년간 해외서 벌지도 않으면서 생활하려면 상당한 돈이 필요한데, 여행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집은 처분해야 했어요"

대학 1학년인 아들에겐 군대를 권유(?)했다. 만화작가를 꿈꾸는 딸에겐 일본유학을 강요(?)했다. 딸은 대환영했지만 아들은 생각보다 완강하게 버텼다. 그도 그럴것이 이제 갓 대학에 입학해 자유를 만끽하던 차였다.

"사실 몇 년전부터 공표는 해 둔 상태였어요. 엄마는 너 대학가면 여행 갈꺼라고. 한국엔 집도 없고 엄마도 없을테니, 먹여주고 재워주는 곳은 이제 군대 뿐 아니겠냐고 으름장을 놨죠."(웃음)

엄마의 일생일대의 꿈을 막을 수는 없는지라, 아들은 결국 '군바리'가 됐다. 하지만 그녀가 만든 인터넷 여행일기 카페에 제일 많이 찾아와 격려의 글을 올려준 후원자도 결국 아들이었다.





#경치보다 사람이 아름답더라

"제가 좀처럼 한국에선 도움 청하고 그러는 성격 아니거든요. 그런데 막상 해외에 나가니 어린애가 되어버리더라구요. 차표를 하나 끊기도 힘들고 밥을 한번 사먹기도 힘들고..."

장기간의 여행이다 보니, 시시콜콜한 계획을 세우거나 가이드북을 독파하진 않았다. 다만 가능한 육로이동을 원칙으로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움직이다보니 자연히 현지인의 도움이 필요했다.

"재밌는게 우리보다 잘산다고 하는 선진국일수록 주변에 무관심하고, 우리보다 조금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더 친절하다는 거예요. 중국이나 예멘, 파키스탄이 특히 그랬어요. 어떤 멋진 풍경이나 역사적인 유적지보다 따뜻한 사람들을 만나는게 정말 행복했어요"

특히 예멘에서의 기억은 더 특별하다. 오씨가 가본 나라 중 가장 친절한 국가다. 목적지 이름을 적은 메모지 한장으로 길을 물어도 찬찬히 살펴보고, 차편을 알려주고, 기사에게 그녀에 대한 당부까지 덧붙여준다. 게다가 그녀보다 가진 것 없는 예멘의 사람들이 10명중 7명은 차비까지 선뜻 내어줬다고.

또, 세계적인 장수 마을인 파키스탄의 훈자에는 집집마다 오디, 살구, 체리나무 등이 심어져 있는데, 길을 지나는 여행객들에게 열매를 따 한 보따리씩 그냥 나눠주곤 한단다. '후한 인심이 장수 비결인가보다' 했다.

반면 노르웨이나 스웨덴 같이 세계 최고의 선진복지국가라고 일컬어지는 북유럽은 쌀쌀하게 남아있다. 웅장한 피요르드, 산타크루즈의 고향인 핀란드에서의 캠핑 등 경이롭고 순수한 자연에 그녀도 감탄했었지만 차갑고 냉정한 그들 나라 사람들에 대한 기억으로 북유럽에서의 여행 전체가 조금은 흐리게 남아있다.

#무려 101번, 내 생애 최다(?) 프러포즈

"아랍권 국가에 가면 한국여자들이 인기 많다고 하잖아요. 저도 다행히(?)예외는 아닌지라 수도없이 '결혼하자' 프러포즈를 받았죠. 터키에서도 그랬고, 파키스탄에서도...예멘에서는 더 기가막힌 일도 겪었어요"

지부티로 들어가는 화물선이 언제 있는지 출입국 직원에게 물었더니 며칠 걸린다며 자기네 집에 묵으라고 했다. 예멘의 보통 가정접이 궁금하기도 해서 용기를 내서 따라갔다. 그런데 이 화물선 대체 언제 오는지 일주일이 지나도 소식이 없다. 그 직원의 아내는 당시 투병중인 듯 보였는데 처음엔 자기 아내를 한국가서 좀 고쳐달라고 하더니 나중엔 오씨에게 아내가 되어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화물선은 거짓말 같았어요. 날 좀 좋아했던 것 같은데(웃음)...'한국여자 만나 결혼하면 식당 하나 생긴다'는 말이 있을만큼 우리나라 여자들을 굉장히 좋아하더라구요."

안타깝지만 그의 간절한 프로포즈를 뒤로한 채 그녀는 그 가족수대로 치약과 치솔을 선물하고 집을 나섰다. 쓰는 방법을 몰라 어리둥절해 하길래 직접 시범을 보였더니 너무 좋아 웃으며 고마워 했다고.

"이슬람은 우리에게 조금 먼 문화지만 의외로 사람들이 너무 순진하고 따뜻해서 놀라게 돼요.그래서 전 종종 아랍권, 이슬람권 국가를 추천하죠. 참, 성추행은 조심하셔야 해요. 자국 여성들이 꽁공 싸매고 다녀서 그런지, 외국 여자들에겐 성추행이 자주 일어납니다."

#주부라 더 쉬웠다. 외국친구 사귀기


오씨는 대한민국 아줌마다. 그것도 두 아이를 낳아 키운 베테랑 주부. 무서울게 뭐가 있겠냐만은 손짓 발짓 다하며 고군분투해도 풀리지 않는 영어. 짧은 영어가 창피한 건 아니지만 조금 불편했다. 유스호스텔이나 민박에서 대부분 숙박을 해결했던 그녀는 자주 외국 여행자들과 한방을 썼는데 그럴 때마다 유창한 영어대신 그들의 호감을 한번에 사는 방법이 있었으니, 바로 주부 본능 발휘한 능숙한 요리솜씨.

"간단하면서도 한국적인 음식이 뭐가 있을까 생각해보니 김밥이 딱이더라구요. 화려한 색의 재료들을 가지런히 밥 위에 얹어 놓자마자 호기심 가득한 외국애들이 모여들더라구요. 그러더니 둘둘말아 뚝뚝 써니까 탄성을 지르며 사진을 찍어대는 거예요."

말은 안 통해도 맛은 통했다. 프랑스, 캐나다, 이스라엘 등 세계 곳곳에서 온 젊은 여행자들이 김밥을 먹으며 연신 '베리 굿'을 외쳐댔다. 이왕 발휘한 요리솜씨 여기서 멈추랴. 좀 더 나이 지긋한 사람들과 친해질 때는 또다른 우리 요리로 공략했다.

"이란의 한 민박집에 머물때는 닭 백숙을 했었죠. 닭은 어딜가도 쉽게 구하는 재료니까 쉬웠어요. 같이 머물던 스위스 부부가 내가 해준 백숙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들과 친해진 것도 좋았지만 '아, 우리 음식 경쟁력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감격스러웠어요"


# 배낭 두 개면 되더라

오씨는 이미 여행 전 집을 정리하고 불필요한 옷이나 가구들도 필요한 사람에게 주었다. 하지만 여행하면서 또 다시 "한국 가면 짐을 더 버려야지" 했단다. 2년동안 50개국을 다니면서 그녀에게 필요한건 딱 배낭 두 개. 옷은 바지 한 두벌, 티셔츠 한 두벌, 방한복 하나 정도면 충분했다. 살던 집마저 세를 놓고 나와 비울만큼 비운 그녀지만 여행하는 내내 한국에서 쓸데없는 욕심을 채우며 살아온 것이 후회 됐다.

"하루 두 끼만 먹어도 마음 편안하게 살고 싶어요. 여행 전에도 멋을 많이 내진 않았지만 요즘은 더 해요. 옷도 안사고, 아직 집도 없어서 친정집에 얹혀 살지요, 하하"

어쩔 수 없이 더부살이 하게 된 친정집 냉장고가 고장이 나서 세간살이라도 구해볼까 하는 생각으로 라디오에 여행 다녀온 사연을 보냈다. 그녀의 이야기가 MBC 라디오 '여성시대'에 소개되자, 수많은 대한민국 아줌마들의 마음이 뛰기 시작했다. 반응이 좋아 직접 방송에 출연했다. '평생 꿈만 꿀까, 지금 떠날까'란 책은 이런 연쇄작용으로 나왔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바로 엽서부터 샀죠. 그리고 그 지역을 여행하고 떠나기전 아들에게 매일 작은 편지를 띄웠어요. 그건 결국 제 여정을 고스란히 기록한 것과 같아요, 인터넷에 올려둔 일기와 엽서들을 모으니 그럭저럭 책 한권이 나오더군요"

# 여행의 끝, 또다른 시작

'그건 사랑이었네''한비야의 중국견문록'등 숱한 베스트셀러를 출간하며 국제구호활동가로 일하고 있는 한비야씨도 처음 세계일주를 시작했을 때 지금과 같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 것이라고는, 또는 국제적인 긴급구호 전문가가 될 것이라는 생각은 없었을 것이다. 오씨는 이번 세계일주가 그녀에게도 또 다른 문을 열어 줄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기대를 갖는다.

"처음엔 책까지 낼 꺼라곤 상상 못했어요. 대단한 거라고 생각지도 않구요. 그런데도 자꾸 새로운 도전이 생기는게 가슴 벅차요."

그리고 이런 벅찬 기분을 조금 더 젊을 때, 많은 사람들이 누리기를 간절히 원한다고.

"사실 현실적으로 세계일주란 쉽지 않죠. 시간, 건강, 돈 이 3박자가 잘 맞아 떨어져야 해요. 저 같은 경우엔 마흔 다섯까지 열심히 일해 모아둔 돈이 있었고, 아들, 딸 모두 키워놨으니 시간이 된거고..문제는 건강인데 이것도 조기퇴직 후 6개월간 택배를 하면서 체력테스트를 거쳤어요. 장기간 배낭여행이 가능한지 정확한 판단이 필요했어요"

즉, 꿈만 꾼다고 언젠가 이루어지는 겄도, 용기만 있다고 덜컥 저지를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말. 진정 원한다면 가능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내야 한단다. 억만장자가 아닌 다음에야 2년간 여행하며 호텔같은 호사를 누리긴 힘들다. 아무데서나 잘 잘 수 있는 건강이 필수조건이라고 한다면 하루라도 젊을 때 떠나라는게 그녀의 진심어린 조언이다.

"현실적으론 경제적 여건이 허락치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또 돈이 생겼을 때는 일주일 휴가도 감사할 만큼 일에 쫓기며 살게 되구요...안타깝지만 그게 평범한 우리들 삶의 모습 아니겠어요? 하지만 최소한 50이 되기 전엔 떠나셔야 해요. 제 나이 되면 무릎 아퍼서 걷고 싶어도 걷지 못한답니다."(웃음)

박동미 기자/pdm@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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