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인 수녀님이 쓴 시...
- 행복하다고 말하는 동안은
나도 정말 행복한 사람이 되어
마음에 맑은 샘이 흐르고
고맙다고 말하는 동안은
고마운 마음 새로이 솟아올라
내 마음도 더욱 순해지고
아름답다고 말하는 동안은
나도 잠시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
마음 한 자락 환해지고
좋은 말이 나를 키우는 걸
나는 말하면서 다시 알지
<이해인 수녀의 ‘나를 키우는 말’>
영혼이 시키는 일로 시를 쓰는 이해인 수녀
마음이 시키는 일을 하지 않으면 몸이 시키는 일을 해야 됩니다. 보다 맑은 마음으로 살고 싶으면 혜안으로 살면 더 맑은 바람을 만날 수 있고, 더 순수한 세상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영혼이 시키는 일을 하며 살아야 진정 아름다운 삶을 사는 것이지요. 세상을 웃게 만드는 방법은 나 자신이 웃음을 인생에 담으면 걸어가는 인생길이 내내 웃음으로 넘치겠지요. 내가 먼저 하면 되는 일이 대부분이지요. 누군가와 불화를 내가 먼저 찾아가 손을 내밀면 반 이상은 화해가 되지요.
세상에 대해 할 말이 많은 것이 개개인이 가진 운명이겠지요. 하지만 세상은 마음으로 빚어낸 세상이거든요. 내가 슬플 때 세상이 우울해 보이지요. 내가 벅찬 기쁨으로 축제라고 마음열고 싶은 날은 세상도 덩달아 흥에 겨워 흥청거리는 것을 보게 되지요. 오늘은 순수한 영혼을 만나 천국을 만나보시지요. 시가 우선 순해서 좋습니다. 들판에 피는 꽃이나 어느 누구의 뜰 안에 피는 꽃처럼 고운 단어와 맑은 시어들로 조합된 시를 만나 반갑습니다.
이해인 수녀의 시는 우선 쉽지요. 소녀 소년들이 일기장에 적어놓은 글처럼 아직도 동심이 남아있음을 보게 됩니다. 영혼이 맑아서 그렇겠지요. 동심으로 일군 시에 이해인 수녀의 종교인 가톨릭의 천명이 있고, 살아온 삶의 혜안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행복하다고 말하는 동안은
나도 정말 행복한 사람이 되어
마음에 맑은 샘이 흐르고
설명이 필요합니까?
다 이해되시지요. 읽으면서 행복해지는 시지요. 삶의 배려를 배우지 않은 사람에게서 나오기는 어려운 말이지요. 자신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가만히 바라본 사람이 아니고서는 쓸 수 없는 시지요. 읽으면서 흐뭇해지고 무언가 아, 이렇게 살아야 하는데 하는 마음이 들게 하지요. 5월산에 올라 만난 맑은 바람 같은 시지요. 기쁨이 퐁퐁 솟는 시지요.
격정이 숨죽인 시를 쓰려면 삶의 관조와 성찰이 필요하지요. 고요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삶을 돌아보는 반성의 삶을 일과마다 하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어렵지요. 이러한 시는 단순해야 하거든요. 울림을 주려면, 특히 종교적 울림을 주려면 형용사나 부사가 배제되어야 맑은 느낌을 주지요.
법정스님의 글이 수사가 붙지 않아 자연스럽지요. 마찬가지일 듯합니다. 간결하고 투명한 언어의 배열이 받아들이는 독자의 입장에서 더 시적 분위기를 느끼게 되는 것은 아닌가 조심스럽게 이야기 해 봅니다.
분명 이렇게 평이한 단어구성으로 된 것도 좋은 시가 되는가에 의문을 제기 히는 분이 계실 겁니다. 한두 번이 아니고 여러 번 들을 이야기이기도 하니 더욱 그렇습니다. 정호승 시인과 나태주 시인의 시에 대해 했던 이야기를 다시 해야 하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산문과 시를 구분하면서 어떤 경계가 있음은 확실하겠지요. <행복하다고 말하는 동안은 나도 정말 행복한 사람이 되어 마음에 맑은 샘이 흐르고>라고 풀어놓으면 그냥 산문이 되거든요. 나머지 두 연도 마찬가지지요. 그래서 일부 시인이나 평론가는 이해인의 시에 대해 시로서의 자질이 부족하다고 하는 분들이 있지요. 저는 다릅니다. 이 세상의 언어가 시가 되게 하는 특질을 조금 더 확장해보자고 주장하고 싶어지는 사람입니다.
시의 형식에 매달리지 말고 시가 주는 감흥에 대해서 말하고자 합니다. 많은 문제점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도 한 번 해보지요. 시의 형태를 가지고 있으면서 감동을 주는 글은 좋은 시로 보자는 것이지요. 이 문제는 반론이 많을 듯합니다. 이런 이야기 그만하고 재미있는 시평이란 본래의 취지대로 돌아가렵니다.
이해인 수녀의 시를 조사하면서 놀랐습니다. 두 가지 점에서 놀랐습니다. 여태까지 <재미있는 시평>을 쓰면서 이렇게 많은 시 카페와 홈페이지에 올려진 시는 처음이었고, 많은 시가 올라와 있음에도 시에 대한 평은 거의 찾을 길이 없었던 것도 특별한 점이었지요. 문학성이나 역사성을 고려하거나 시의 변천에 한 획을 긋는 시여서가 아니라 시가 그냥 좋아 시를 올린 글들이 상당부분이었지요. 이는 일반독자들이 이해인 수녀의 시를 좋아해서 순수한 마음으로 올리고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쉬우면서도 감동과 위안을 주는 이해인 수녀가 가진 빼어난 특성 때문에 상당히 넓은 독자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쉬운 시를 쓰는 시인은 제법 있지요. 김용택 시인, 나태주 시인, 안도현 시인 같은 분들이지요. 이 시인들은 저마다의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만의 독특한 시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시인들이지요. 이해인 수녀의 시도 그러한 평을 듣고 있습니다. 우선 쉬우면서 종교적인 순수함을 바탕에 두고 가슴에 맑은 바람을 불게 하는 시를 쓰지요. 철학적이거나 명상의 느낌보다는 생활의 지혜, 살아감의 각성에 중심이 맞추어져 있음을 보게 됩니다.
아름답다고 말하는 동안은
나도 잠시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
마음 한 자락 환해지고
좋은 말이 나를 키우는 걸
나는 말하면서 다시 알지
읽으면서 또 행복해지지 않으세요. 마음결이 고운 바람결 같아 초록빛 세포가 퐁퐁 터지는 느낌을 주지요. 사람이 고우면 시도 고와진다는 말은 맞는 듯합니다. 세상이 한 순간 멈춘 듯 부드러워지게 하는 능력을 가졌지요. 풀꽃 같은 시인이지요.
이해인 수녀를 본 것은 이철수 판화가의 전시회에서였지요. 초대를 받아서 간 것도 아니고 인사동에 편한 마음으로 나갔다가 들렀는데 마침 이철수 판화가와 이해인 수녀가 마주앉아 이철수 판화집에 사인을 해주는 것이었지요. 아내와 함께 판화집을 사가지고 나오면서 두 사람을 바라보았습니다. 두 분이 마주 앉은 모습이 내 눈에는 마음 착한 누이와 남동생의 만남처럼 느꼈거든요.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워즈워드의 <서정 민요집>의 서문은 '낭만주의의 선언문'으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그는 기존 시의 가치 개념을 부정하면서 '감정을 지닌 시', 즉 '서정'의 기초를 수립하였지요. 이 시집의 서문에서 훌륭한 시는 ‘참을 수 없는 감정의 범람’이라고 했습니다. 힘찬 감정의 자연스런 발로임을 말한 것이지요. 낭만주의 시와 서정시의 정의를 단적으로 제시한 명구로 꼽힙니다. 시가 정형의 틀을 벗어나 자유시의 형태를 찾아 나섰음에도 어떤 형식을 갖추어야 하는 것이라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시의 품격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굳이 품격이라고 했지만 좋은 시를 이야기할 때에 시가 가져야 하는 몇 가지 덕목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좋은 시’라는 말이 가지는 추상성 때문에 흔들리지만 요즘에 와서 가장 논의의 핵심을 가지는 것이 형상미지요. 형상미는 오래 되지 않는 현대시들에서 많이 이야기 되는 것들이거든요. 시를 하나의 그림으로 봐서 시를 읽는 순간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게 하는 기법이지요. 러시아의 루카치란 사람이 주장한 사물화라고도 하지요. 형체가 없는 단어에 모습을 갖춘 영상적 느낌을 가지게 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경향이 바로 하나의 언어가 시인의 독차지가 아니라 독자의 품으로도 끌어안을 수 있는 영역이 발생하게 되지요. 시인이 만든 시가 시인의 전유물로서가 아니라 해석의 여지가 있는 틈을 만들어주는 게지요.
독자의 인생관과 감성이 시어와 만나 새로운 해석을 가능하게 하거든요. 또한 난해함도 여기에서 발생하게 된다고 할 수 있지요. 다의성이 가져온, 그리고 그 중의의 애매함이 가져온 것이 요즘의 난해시가 양산되는 이유 중의 하나지요. 시보다 시평이 더 어려우면 안 되는데 위태위태합니다.
다시 돌아가지요.
세상의 단어들이 이해인 수녀를 만나면 정담을 나누기 시작한다
이해인 수녀는 강원도 양구에서 1945년 6월7일에 태어났답니다. 난 지 3일 만에 가톨릭 세례를 받았다니 물어보지 않아도 가톨릭 집안에서 나고 자란 게지요. 조용하고 새침한 모습으로 상상 속에 사는 아이였고 공부는 곧잘 했지만 조금은 우울한 편이었다고 회상하고 있습니다. 형편이 어려워져 어머니는 삯바느질을 하셨고 어머니가 만들어 준 꽃골무나 노리개를 친구들에게 자주 갖다 주곤 하였다고 합니다.
초등학교 시절 한번은 ‘학교가는 길’이란 글짓기로 큰 상을 받은 적이 있는데 겨울길의 플라타나스 나무와 내가 주고받는 이야기를 그린 순수하고 아름다운 이야기였다고 하니 문학소녀로부터 지금의 시인이 되기까지가 하나의 문학으로 접어드는 단출한 길로 이루어져 왔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대학을 중퇴하고 어머니 대신 살림을 꾸려가던 언니가 친한 친구들과 함께 가르멜 수녀원에 들어간 것도 이 무렵이었는데 어린 나는 엄마보다 엄격했던 언니가 두려웠기 때문인지 집을 떠나 멀리 간다는 그 사실을 슬픈 줄도 모르고 받아들였던 것 같다.
그 후, 방학 때 수녀원에 놀러 가면 수녀님들이 주는 쵸콜릿이나 예쁜 카드들이 나를 황홀하게 했으며, 숲에서 들려오는 새 소리가 너무도 정답고 사랑스러워 잠을 이루지 못할 지경이었다.
돌이켜 보면 나는 이미 그 때 나를 부르는 어떤 목소리에 매료되었고 수도 생활에 대한 동경을 어렴풋이 지닌 게 아닌가 싶다.
가르멜 수녀님들 소개로 지금 내가 속해 있는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를 알게 되었고, 나는 수녀회에서 처음 운영을 맡은 김천 성의여고에 입학해 몇 명의 소녀와 함께 수녀원 기숙사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시인 유치환 님이 심사위원이었던 전국고등학생 백일장에서 ‘산맥’이라는 시로 장원을 했을 땐 정말 기뻤고 이 시는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에 수록 되어 있다.
일찍 가족의 품을 떠나 살았기에 나의 글에는 유난히 이별의 슬픔과 쓸쓸함을 노래한 것이 많다. 이 무렵 나는 수녀님들의 삶을 가장 가까이 구체적으로 지켜보면서 수도 생활의 어려움도 미리 알고 감지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이 길을 가리라고 결심하는 계기가 되었다.
단 한번 밖엔 없는 삶을 끝까지 투신해도 아깝지 않은 삶으로 수도 생활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어려서부터 ‘사람은 왜 죽는가?’‘삶의 끝은 어디일까?’‘사랑하는 이들끼리도 왜 이렇듯 헤어져 사는 날들이 많은 걸까?’하는 의문으로 내내 궁리가 많았던 아이에게 그래도 수도 생활은 가장 멋지고 보람있는 삶의 형태로 비쳐졌다.
본명이 명숙이었던 나는 수녀원에 입회하여 혼자서 해인이라는 필명을 만들어 간혹 가톨릭에서 발간하는 <소년>지에 작품을 투고할 적마다 이 이름을 쓰곤 하였다. 언니(이인숙)도, 오빠(이인구)도 이름에 '어질 인(仁)'자가 들어있다는 게 부러웠고 늘 바다를 바라보며 기도했기에 자연스레 '바다 해(海)'자를 넣어 필명을 만들었으나 훗날까지 이 이름을 많이 쓰게 될 줄은 몰랐다. 지원기, 청원기, 수련기를 나는 비교적 밝고 명랑하고 씩씩하게 보냈다.
개인의 인생이야기를 이해인 수녀의 경우에는 많이 하게 되는군요.
이해인 수녀의 글은 참회와 바램과 기도의 말들로 가득 하지요. 이해인 수녀의 삶밭에는 흐뭇한 단어들이 만나서 오순도순 정담이라도 나누는 듯 어깨를 걸고 소곤거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좋은 시라고 하는 것들이 주는 감동보다 더 감동을 주며 다가오는 것은 이러한 생활 속의 단어들을 꾸미지 않고 만들지 않은 그대로 따뜻함이 묻어나는 마음으로 엮어서 그러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사람이 어느 날 수녀복을 입는다고 해서 이러한 기질이 배어나오는 것이 아니지요. 파계를 하고 수녀복을 벗는다고 해서 이러한 특질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지요. 이것은 수녀이기 때문에 가지게 된 특성이기보다 이해인이라는 개인의 사고와 우선 밀접한 관련이 있지요. 그 위에 수녀라는 신분이 다시 한 꺼풀 덧씌워지게 된 것이지요.
이러한 것을 입증하는 글을 하나 소개할까 합니다. 중학교시절 지었다는 시지요. 중학생답지 않은 성숙이 보이는 시입니다.
꿈을 잃고 숨져간
어느 소녀의 넋이 다시 피어난 것일까
흙냄새 피어오는
외로운 들길에
웃음 잃고 피어난 연보랏빛 꽃
하늘만 믿고 사는 푸른 마음 속에
바람이 실어다 주는
꿈과 같은 얘기
멀고 먼 하늘 나라의 얘기
구름 따라 날던
작은 새 한 마리 찾아주면
타오르는 마음으로
노래를 엮어
사랑의 기쁨에 젖어보는
자꾸 하늘을 닮고 싶은 꽃
오늘은 어느 누구의 새하얀 마음을 울려주었나
또 다시 바람이 일면
조그만 소망에
스스로 몸부림치는 꽃…
<이해인 수녀가 중학교 시절 쓴 시 ‘들국화’>
참 맛깔스러운 시지요.
중학생이 지었다고는 믿어지지 않지요. 이해인 시인의 감성은 이미 어린 시절 완성되어있음을 보게 됩니다. 들풀도 잘 익으면 가을이면 고운 빛깔로 아름다워지는데, 중학생의 감성이 이처럼 잘 익어서 사람을 감동하게 하는 경우는 드물지요. 지금의 시와 별다르지 않은 감성의 빛깔을 만나게 되지요. 시인은 만들어지기보다 하늘이 만드는 것이라는 것에 한발 가까이 가게 하는 예이지요.
언어들이 가진 결이 현재의 이해인 수녀의 시들이 가지는 결과 비슷한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소망도 익고, 세월도 익고, 글도 잘 익어서 빚어낸 시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위안과 기쁨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시의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평자들의 말은 못 들은 채 그대로 두고, 시가 주는 평온과 평화를 만나는 기쁨은 분명 대단합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사랑이어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소망이어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믿음이어서 이해인 수녀의 시는 위문편지와도 같습니다. 어떤 이에게는 언니가 써 보내온 편지이기도 하고, 어떤 이에게는 어머니가 보내온 편지이기도 합니다. 어떤 이에게는 친구가 써 보낸 편지를 받은 기분이 되게 합니다. 이렇게 온기 가득한 시는 일찍이 드물었습니다. 이해인 수녀의 시가 어른아이 할 것 없이 국민적인 사랑을 받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편지 같은 그리고 일기장의 한 부분 같은 속내를 잘 집어내어서 감성어린 시로 빚어내는 것이지요. 다른 시에서는 드문 덕목이지요. 이러한 면은 어디에서 기인하는가를 찾아보았습니다.
이해인 수녀의 시를 보면 기독교적인 요소만이 들어있지 않은 것을 보게 됩니다. 세상의 삶을 아우른 그리하여 포근한 자궁 같은 감쌈의 이미지가 충족되어 있지요. 따뜻함은 여기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종교적인, 특히 기독교적인 시에서 보여지는 것과는 다른 느낌을 주지요. 포용이 보이거든요. 포용을 내재한 수련덕분인 듯합니다.
서울 동자동 분원에 거주하며 서강대 대학원에서 종교학을 공부하면서 타종교도 좀 더 넓은 시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논어’ ‘도덕경’ ‘시경’등 동양사상의 아름다움에 새롭게 맛들이면서 논문 역시 <시경에 나타난 복福 사상 연구>를 썼다.
그러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타종교에 대한 이해와 동양사상에 대한 관심이 그러한 넉넉함을 만들어내는 요소가 되었습니다. <종교학을 공부하면서 타종교도 좀 더 넓은 시야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 하나이고 동양사상의 깊이를 접하게 된 것이 두 번째 이유지요. 동서가 만나는 징검다리 위에 시의 집을 지은 것이었지요.
사랑 옆엔 사랑만이 갈 수 있다
이해인 수녀는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Olivetan Benedictine Sisters of Busan) 소속 수녀로서 1964년에 수녀원에 입회하여 1968년에 첫 서원, 1976년에 종신서원을 하였습니다. 1976년에 첫시집 <민들레 영토>로 수녀 시인으로 문단에 등단하여 9권의 시집, 5권의 산문집, 3권의 선집, 7권의 번역서를 펴냈습니다. `일상과 자연을 소재로 하는 친근한 시적 주제와 모태 신앙이 낳아준 순결한 동심과 소박한 언어'로 종교적인 감성을 세상과 나누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1980년대 시의 대중화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대중성은 한국문단에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시가 사람들이 외면하고 있는 동안 몇몇의 시인들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독자 없는 시가 과연 필요한 것인가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가 왔습니다. 독자가 없는 시는 결국 일기 역할 외에는 못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지요.
‘사랑 옆엔 사랑만이 갈 수 있다’는 이해인 수녀의 말이 오늘 따라 감성의 훈훈한 울림으로 들립니다. 시 하나를 더 소개하면서 마무리를 하고자 합니다.
은밀히 감겨간 생각의 실타래를
밖으로 풀어내긴 어쩐지 허전해서
차라리 입을 다문 노란 민들레
앉은뱅이 몸으로는 갈 길이 멀어
하얗게 머리 풀고 솜털 날리면
춤추는 나비들도 길 비켜 가네
꽃씨만한 행복을 이마에 얹고
바람한테 준 마음 후회 없어라
혼자서 생각하다 혼자서 별을 헤다
땅에서 하늘에서 다시 피는 민들레
<‘민들레' 전문>
나풀거리는 풀잎이 고운 들판에 시원한 바람이 불고, 그 위를 사뿐히 걷는 피리 한 곡조 같은 이해인 수녀의 시를 만나 삶도 무거운 어깨를 잠시 내려놓게 하는 날입니다. 한 동안 적적했던 사람도 이해인 수녀의 시를 읽으면 그리워지게 되지요. 이해인 수녀의 시를 만나면 세상도 한결 허랑해져서는 웃음을 배시시 머금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을 위로해주고 안아주는 시를 만들어 민들레 홀씨처럼 세상에 날리는 이해인 수녀에게 5월의 따뜻한 햇살이 비치기를 바랍니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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