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로 액자는 가로 액자 중 고래가 집중된 왼쪽 사분의 일 부분을 따로 확대해서 만든 것이었다. 폭 2미터 길이 5미터쯤 되는 크기였다.
그 액자 속 고래들은 모두 위쪽을 향해 머리를 두고 있었는데 아마도 무리지어 헤엄치는 광경을 그린 듯했다. 큰 고래 안에 작은 고래가 그려진 그림은 새끼 밴 어미고래를 묘사한 듯했다.
몸 안에 작살이 그려진 고래는 작살을 맞은 듯했고, 고래 몸통 위로 무수히 작은 선이 그려진 고래는 물뿜기를 하는 모양이었다.
“포경조합에서 저기 가끔 놀러갔었다. 니은이 할아버지도 함께 갔지. 그때 니 애비는 지금 너보다 어렸고.”
내가 액자 그림을 오래 올려다보고 있은 모양이었다. 장포수 할아버지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나는 계속 궁금해하고 있던 것을 물어보았다.
“그런데 이 바위그림이 왜 중요해요?”
“기억하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할아버지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 또 가만히 있었다. 기억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할아버지한테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지난 일은 깨끗이 잊어버리는 게 나은지, 기억하는 게 좋은지.
“기억하는 일은 왜 중요해요?”
“그것을 잘 떠나보내기 위해서지. 잘 떠나보낸 뒤 마음속에 살게 하기 위해서다.”
나는 여전히 할아버지 말을 잘 이해할 수 없어 다시, 다른 방식으로 물어보았다. 기억하는 일이 힘들고 따가워도 기억해야 하는지. 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천천히 오래 고개를 끄덕이면서 할아버지가 기증한 물건들이 전시된 방을 바라보았다.
“나도 기억하는 방법을 몰라서 저 물건들을 오래 붙잡고 있었다. 내 인생을 낡은 물건들을 쌓아두는 창고로 만든 셈이지. 잘 떠나보내고서 기억하고 있으면 되는걸.”
잘 떠나보낸 뒤 기억하기. 나는 그 말을 잊지 않기 위해 입 안에서 반복했다.
아주 어릴 때 시간이 어디로 가는지 궁금하던 적이 있었다. 쓰레기폐기장처럼 어딘가에 우리가 사용하고 버린 시간, 미처 사용하지 못한 시간 들이 흘러가 쌓이는 곳이 있을 것 같았다.
눈앞의 고래그림들을 보고 있으면 시간이 흘러가 쌓이는 곳이 어디인지 짐작할 것 같았다. 기억도 시간도 바위그림처럼 하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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