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edu

[한겨레] 독일 이야기 :: 등수 없는 독일 성적표

인서비1 2009. 1. 15. 13:09

“네 친구는 1점을 몇 개 받았데?”

“다섯 개 받았나봐.”

“그럼 2점은?”

“글쎄~ 세 갠가? 네 갠가?

아휴! 잘 모르겠어 엄마, 그게 그렇게 중요해?”

“그래야 네 수준을 정확히 알 수 있을 것 아냐!”

“수준? 나는 잘하고 있으니까 걱정 좀 그만해.”

성적표를 받는 날이면 수 년 째 오가는 큰아이와 나 사이의 뻔 한 대화내용이다. 조금 더 길게 갔다가는 체통을 구길까 이쯤에서 끝내야 한다. 그런데 딱 하나가 더 궁금해서 또 입을 열고 만다.

“그럼 꼴찌는 누구냐? 이번 학기에 낙제하는 친구는 누구야?”

“꼴찌? 잘 모르겠는데!”

“야! 그럼 아는 게 뭐야?

공부하러 학교 간 녀석이 결과가 어떤지 관심 없다면 그게 학생이야?”

“엄마, 거기 대해서는 선생님도 이야기하지 않고 아이들도 관심 없는 데 내가 어떻게 알아!

그리고 그런 것 물어보는 사람은 엄마밖에 없어”

‘에구구…….’ 내가 또 깜박하고 말았다. 잘 나가다가도 성적 이야기만 나오면 본색이 드러나는 엄마를 속물취급 하는 녀석에게 한두 번 당한 것도 아니면서 매번 실수를 하다니.

이놈의 병은 10년을 넘게 등수 없는 독일에 살고 있으면서도 치료되지 못한 고질이다. 성적표를 받으면 으레 아이가 반에서 어느 정도 수준인지 알아보기 위해 조사를 시작한다. 10학년이 되었지만 성적표로는 도대체 학급에서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분명 독일학교는 정확한 성적순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 나도 모르게 반 아이들 34명을 성적대로 줄을 세워 보려 한다. ‘한 번 배운 도둑질이 평생 간다.’더니, 독일에서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바뀌지 않는 나를 보면 딱 맞는 말이다.

스스로 계산을 해서라도 어떻게든 내 아이들이 경쟁에서 우위를 선점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서 일까. 순서를 알 필요도, 기준도 없는 이 좋은 환경에서 내 머릿속의 생각이란 고작 ‘1등,2등,3등…….꼴등’을 되뇌고 있는 것이다.

80년대 초, 내가 다니던 학교는 중간고사와 기말고사가 끝나면 언제나 학교 게시판에 전교 100등까지의 명단을 떡하니 붙여두었다. 아마 아이들에게 경쟁심을 유발하여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는 자존심도 자격지심도 상처라는 말도 철저히 무시 된 채, 성적만이 자신의 존재를 알릴 수 있는 유일한 소통이었다.

여고를 졸업한지 수 십 년이 되었지만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언제나 첫 줄에 올라와 있었던 1등만 했던 친구, 아무리 노력해도 1등을 따라잡을 수 없어 불행했던 영원한 2등, 항상 명단의 끝자락에 피에로가 외줄 타듯 보였다 안보였다 들락날락 했던 아이들, 게시판에 이름 한번 올려보지 못하고 무리 속에 묻혀 관심 밖에서 살았던 대 다수의 평범한 학생들, 1등처럼 유독 주목을 받기는 했지만 언제나 인생의 낙오자딱지와 같은 ‘꼴찌’라는 주홍글씨를 새기고 다녔던 몇몇 친구들.

우리의 학창시절은 성적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왠지 1등을 하는 아이는 인생도 1등일 것 같았고, 생각도 반듯해서 항상 바른 길만 갈 것 같았고, 그의 미래도 당연 700여명의 친구들 중 가장 높은 자리에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얼마나 허무맹랑한 환상이었던가. 신문 1면의 굵직한 기사마다 등장하는 1등만 했던 일그러진 군상들의 대형 범죄와 시퍼렇게 날이 선 오만과 독선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병들게 하고 있다. 혼자만 잘못 된 길을 가는 것도 모자라, 모두를 함께 구렁텅이로 몰고 가는 위험천만한 그들의 행보를 볼 때마다, 그 때 우리는 뭔가 단단히 잘못 판단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렇다면 꼴찌는? 꼴찌는 당연히 미래도 꼴찌일 것 같았다. 그 아이들은 무엇인지 모르지만 문제도 많아 보였고, 하는 짓도 한심했고, 선생님의 미움도 한 몸에 받았던 것 같다. 우리는 꼴찌의 인간적인 내면을 보기 위해 노력해 보지 않았다. 그저 그들은 언제나 학교의 귀찮은 말썽꾸러기였고, 실패한 학생의 표본이었고, 경쟁에 지친 우리들이 자기보다 한참이나 못한 친구를 한심하게 바라보며 안도할 수 있는, 그런 존재일 뿐이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그 환경이 잘못되었다는 비판조차 해볼 겨를도 없이 도태되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며 살아온 사람이 바로 나니, 아무리 성적순을 알 수 없는 독일학교라지만 머릿속에서는 자동적으로 그 때 배운 계산들을 촘촘하게 짜고 있는 것이 당연한지도 모른다.

혹시 독일에 사는 사람에게서 ‘그 집 아이는 학교에서 일등만 한데.’라든가 ‘그 집 아이는 1등으로 졸업 했데.’라는 말을 들었다면 그건 모두 거짓말이다. 독일학교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졸업학년인 13학년까지 단 한 번도 등수를 알 수 있는 성적표를 받지 않는다. 아이가 공부를 잘하느냐 못하느냐는 스스로 점수의 분포를 계산해서 내린 판단이지 학교의 어떤 서류에도 성적이 상위권이라든지 몇 등이라는 흔적을 찾을 수 없다. 그것은 아비투어(수능시험)에서도 마찬가지다.

‘경쟁에서 이긴 자만이 살아남는다.’가 아니라 ‘모두 함께 가자.’는 이들의 교육과정에서 지식의 평가만을 가지고 순서를 정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때문에 성적처리에서도 시험뿐만 아니라 수업태도와 사회성 등을 함께 평가하는 교사의 자율권이 인정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독일에서 바라 본 한국은 지금까지도 지구의 어느 귀퉁이에서 높은 담을 쌓아놓고 귀 막고 눈 막고, 그나마 어렵게라도 보고 들으려 노력하는 사람들의 자유조차도 철창에 가둬버리고, 정보마저 원천봉쇄하는 무시무시한 제국이다.

시대에 역행하는 초등학교 일제고사를 기어이 부활시키더니, 그 것을 거부할 수 있는 소신을 가졌다고 해서 교사를 해임시키는 나라. 자라나는 어린 새싹들에게 원치 않는 이별의 아픔을 생생하게 체험시키는 학교, 아직 분노를 배우지도 않았을 파릇한 가슴에 울분을 심어주는 어른들, 그러면서도 정작 격리시켜야 할 성추행 범은 버젓이 학교를 활보하게 하는 나라, 한국은 정녕 아직도 개인의 소신을 짓밟고 입을 틀어막아야만 유지될 수 있는 자신 없는 나라란 말인가. 이곳에서 들은 소식이라 그런지 내가 자라던 7,80년대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현실이 더욱 안타깝고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전국 학생들이 똑같은 시험을 치르게 되면 학교 사이의 경쟁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고 뒤처진 학교는 격차를 줄이는데 골몰한 나머지 다양한 교육의 기능을 소홀히 여길 수밖에 없다. 또한 지식 위주의 시험을 통해 학생이 자신을 ‘실패자’로 여기게 되면, 이들은 스스로의 잠재력과는 상관없이 ‘실패자’에 걸 맞는 행동을 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전교조 참교육연구소 초청으로 한국을 찾은 ‘교육 강국’ 핀란드의 교육전문가 요우니 벨리예르비 교수가 한 이 말에 일제교사를 거부해야만 하는 이유가 정확하게 드러나 있다.

벨리예르비 교수의 말처럼 학교끼리의 경쟁 때문에 다양한 교육 기능을 소홀히 했고, 자신의 잠재력과는 상관없이 스스로 ‘실패자’에 걸맞게 행동하는 ‘꼴찌’를 만들어 냈던 곳이 바로 내가 30년 전 다니던 학교였다. 지금 우리 교육을 보면 30년 전으로 다시 돌아가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