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edu

[블로그] 독일과 한국의 국어시험 수준 : 교육 : 사회 : 뉴스 : 한겨레

인서비1 2009. 1. 15. 13:21

 독일학교에서 초등학교 4년 동안 아이들에게 기대하는 독일어 수준은 극과 극의 대조를 이룬다. 처음 시작은 알파벳을 한 글자 씩 1년이 넘도록 반복 또 반복 하며 배우는 등 ‘이렇게 해서 어느 세월에 책을 읽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생길 정도로 기초를 다지다가, 졸업학년인 4학년이 되면 어느 정도 수업을 따라간 아이들은 이미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전개한 짤막한 글 한편 정도는 거뜬히 쓸 수 있는 실력이 된다.

 

 독일 초등학생들이 본격적인 독일어 공부에 돌입하는 시기는 작문이 시작되는 3학년부터다. 지금 3학년 1학기에 다니고 있는 우리 작은 아이의 지난 독일어 중간고사 문제는 4장의 그림을 보고 이야기를 써내는 것이었다.

 글은 아이의 상상력을 동원한 이야기여야 하며, 내용에 어울리는 제목에 시작과 끝과 클라이맥스가 정확하게 드러나야 한다. 거기다가 형용사와 부사가 적절하게 사용되고 문장의 시작을 중복 없이 다양하게 시도했다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초등학교지만 논술시험에서 문법과 맞춤법이 내용전개에 비해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김나지움 고학년과 기본적인 평가기준은 대동소이하다고 볼 수 있다.

 

 요즘 작은 아이는 갑자기 어려워진 독일어 때문에 고생을 하고 있다. 집에서 독일어를 쓰는 아이들에 비해 어휘력이 당연히 부족한 우리 아이가 독일 아이들과 같은 수준의 글을 쓴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도 큰아이처럼 엄청난 독서량이 바탕이 되어준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갑자기 어려워진 수준에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것이 외국인 학생들의 가장 심각한 문제고, 독일 아이들에게도 작문은 쉽지 않은 과정이다.


 독일어 시험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모두 작문이다. 독일어뿐만 아니라 영어, 사회, 과학과목까지 모두 같은 유형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독일 공부가 겉으로 느슨해 보인다고 만만하게 생각했다가는 큰코다치기 십상인 경우가 이런 부분이다. 어느 정도의 성적이라도 유지하려면 수박 겉핥기식의 암기로는 절대 통하지 않는 것이 독일 시험이다. 우리는 대학에나 가야 볼 수 있는 깊이 있는 문제를 이곳에서는 김나지움에서 익숙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김나지움 10학년인 큰아이의 지난 학기말 독일어 시험문제는 ‘만약 상어가 인간이 된다면’이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유명한 우화를 읽고 분석, 비평하는 문제였다. 2시간 동안 A4용지 5장 분량의 작문을 통해 우화를 정확히 이해하고, 그 글에 숨겨진 교훈을 찾아내 분석하고 자신의 견해를 논리적으로 써내야 한다.

 

 쉽지 않은 시험문제도 문제지만 채점된 답안지를 보면 놀라울 정도로 복잡하고 세밀한 부분까지 선생님의 손이 가지 않은 곳이 없다. 게다가 답안지의 끝에는 항상 ‘이 번 시험은 많이 좋아졌구나! 앞으로 계속해서 이렇게 하기 바란다.’ 라든가 ‘이 번엔 좀 어려웠던 것 같네. 다음에는 좀 더 노력해서 좋은 성적을 내도록 해라!’는 등 선생님이 아이에게 남기는 짤막한 메시지까지 적혀 있다.

 

 도대체 수 십장의 시험지를 이렇게 하나하나 채점 하려면 일이 얼마나 많을까. 아이가 독일어나 영어 시험지를 받아오면 한 장 가득 세분화되어 매겨진 점수판에 놀라다가, 토씨하나 건너뛰지 않고 잡아내려는 흔적이 역력한 빨간 글씨를 보고는 입을 딱 벌리고 만다. 게으른 선생님들에 대해 불만을 늘어놓다가도 시험지를 받아보면 투덜거리기 민망할 정도다.

 

 독일은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등 분기별 시험이 끝나면 대부분 2주 정도의 단기 방학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 때마다 채점으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교사들은 여름방학을 제외하고는 아예 휴가는 생각할 수도 없다고 한다. 컴퓨터에 답안지를 집어넣기만 하면 전교 석차까지 자동으로 계산되어서 나온다는 우리나라 선생님들은 독일 교사들에 비해 편하게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나는 우리 큰아이 한글을 가르치며 한국과 독일의 국어교육의 차이점을 정확하게 경험할 수 있었다. 3살 때 독일 와서 하루도 쉬지 않고 내가 아이를 위해 신경 쓴 부분은 다름 아닌 한국어였다. 가장 자신 있게 가르칠 수 있는 과목이기도 했고, ‘언어를 완벽하게 하나 더 할 수 있다면 우리 아이들의 인생이 얼마나 더 풍요로워질 수 있을까’ 생각하니, 힘들기는 했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또 다른 외국어에 비해 한국어는 집에서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한국 문제집을 구해다가 차례로 해나가기 시작했고, 지금은 중학교 1학년 2학기 과정을 하고 있는 아이는 이제 한국어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고 느낄 만큼 요즘 들어 부쩍 어휘가 다양해지고 대화 수준도 제법 어린아이 수준을 벗어나고 있다.

 

 하지만 한글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게 하지 않으려고 하루 20분 이 상을 넘기지 않으려다 보니, 같은 학년의 진도를 따라가기란 사실 불가능하다. 저학년 때는 그래도 어느 정도 되는가 싶었지만 고학년에 가니 학교 공부도 많아진데다가 수준이 점점 높아져서 이제는 겨우 잊어버리지 않을 정도만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도 지금 중학교 1학년 2학기 문제집을 가지고 공부하는 아이가 평균 90점 이상의 점수를 받는다는 사실이 놀랍고 신기하다. 그런데 더 신기한 것은 텍스트를 써보라고 하면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의 문장력도 흉내 내지 못할 정도의 실력이라는 것이다.

 

 문제집의 진도대로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는 큰아이는 문제를 풀 때마다 한국시험은 누워서 식은 죽 먹기라며 너스레를 떤다. 그러다가도 주제를 주고 작문을 해보라면 바로 기가 죽어 헤매기 시작한다.

논술공부라는 말이 없었던,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국어시간에 글 한 줄 써보지 않았고, 시험도 찍기만 하다가 졸업했던 것 같다. 그러니 우리 시대에는 명문대학을 나왔어도 편지 한 장 제대로 못 쓰는 사람이 허다했다.

 

 독일 아이들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시작된 작문시험이 대입으로까지 이어진다. 물론 저학년에서는 문법과 맞춤법 등도 중요시되고 있기는 하지만 6학년만 되면 이미 독일어 시험에서 문법은 사라지고 모든 시험은 작문이다.

 

 독일학교의 과목 중 독일어가 가장 좋은 점수를 받기 힘들다. 충분한 독서량과 논리적인 사고와 창의적인 생각이 동시에 뒷받침되지 않는 아이들은 아무리 새롭게 마음을 먹고 열심히 노력해도 따라갈 수 없는 것이 독일어다.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글을 잘 쓴다는 것은 달달 외운다고 되는 일도 아니고, 단기간에 들입다 판다고 될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아비투어에서 독일어 시험은 초등학교 3학년부터 13학년까지 체계적으로 연습하고 훈련해서 마지막으로 만들어내는 논술시험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대부분의 아이들이 이를 위해 단 한 번의 과외도 받지 않는 다는 것은 새삼 거론할 필요조차 없는 일이다.

 

 논술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요즈음 한국학교에서는 어떻게 논술을 지도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설마 학원에 모든 것을 의탁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여기에 생각이 이르니 얼굴이 다시 화끈거리기 시작한다. 설마….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한겨레 블로그 내가 만드는 미디어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