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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고츠키와 구성주의 - 진보교육연구소

인서비1 2022. 1. 6. 23:06
비고츠키와 구성주의 - 진보교육연구소
피노키오15.02.20 
 
 
 
4.비고츠키 복권 선언

1. 변증법적 유물론에 입각한 진보적 교수-학습론의 창시자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적 유물론에 대한 심리학적으로 적절한 적용”은 비고츠키의 고등심리과정들에 대한 사회문화적 이론의 정확한 요약..(코일, ‘사회속의 정신’서론, p23, 조희숙 외 옮김)
‘비고츠키는 마르크스주의적 사고를 가치있는 과학의 토대로 보면서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적 유물론을 자신의 심리학에 적용하였다’(한순미, ‘비고츠키와 교육’, p17, 교육과학사, 1999)

한국에서는 주로 사회적 구성주의자로 알려져 있지만 비고츠키는 맑시즘 교육학자로서 변증법적 유물론과 사적유물론에 기초한 교육심리학과 발달이론을 발전시켜 나간 선구자이다. 비고츠키 이론은 ‘인간과 사회의 역동적 상호작용’ ‘기호(언어), 실천의 매개(중재)적 역할’, ‘고등심리기능에 대한 역사, 사회의 근본적 규정’, ‘인간정신의 점진적 확장과 질적 비약’ 등 온통 변증법적 유물론과 사적 유물론의 관점과 개념들로 채워져 있다.
그는 사회의 역사적 변화와 물질적인 삶이 인간성(의식과 행동)의 변화를 낳는다는 변증법적 유물론의 테제를 구체적인 심리적 문제에 적용하고자 한 최초의 교육학자로서 ‘노동과 도구’에 대한 엥겔스의 분석을 인간정신 영역으로 확장하였다. 그의 시도는 인간정신발달에 대한 설명력을 비약적으로 확대, 심화시켰고 맑시즘 교육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것이었다.   그렇지만 비고츠키 교육학은 그의 사후 은둔과 왜곡의 두 과정을 겪는다. 하나는 은둔의 과정으로 구소비에트에서는 그의 이론이 정치적 탄압을 받으면서 후학들에 의해 주로 ‘활동이론’이라는 방법론적 논의로 전개된 과정이다. 또 하나는 왜곡의 과정으로 1960년대 이후 서구에 소개되면서 월치 등에 의해 사회적 구성주의의 시조로 추대되고 그의 논의가 구성주의적 방식으로 채택, 왜곡되어 온 과정이다. 한국에서는 후자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2. 왜 비고츠키는 구성주의일 수 없는가?
비고츠키 이론이 마르크시즘에 입각했다 하더라도 구성주의의 한 부분으로 설정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러나 비고츠키 이론이 기반한 변증법적 유물론과 구성주의는 가장 근본적인 지점인 ‘인식론’에서 대립적이기 때문에 결코 구성주의가 될 수 없다.  

구성주의는 한마디로 “지식은 발견되기보다 구성되는 것”이라는 명제로 특징지울 수 있다.(조용기, ‘구성주의교육의 조절’, 1999)
구성주의는 기존 객관주의적 인식론에 대한 대안적 인식론, 곧 상대주의적 인식론을 바탕으로 하여, 객관주의적 인식론의 여러 문제점을 극복하려는 데로부터 시작한다.(강인애, ‘문제중심학습’, 1998)

구성주의가 아무리 다양한 모습을 지닌다 하더라도 구성주의일 수 있는 근본적 정체성은 ‘상대주의적 인식론’에 있는데 변증법적 유물론은 구성주의가 적대시하는 ‘객관주의’의 범주에 해당한다. 변증법적 유물론 역시 구성주의의 인식론인 ‘상대주의’에 대해 철학적 비판과 투쟁을 줄곧 전개해 왔다. 둘의 지식관은 완전히 다르다. 변증법적 유물론의 인식론은 ‘유물론적 실재론’으로 지식은 ‘객관적 실재’에 근거하는 것이며, ‘진리’에 대한 ‘인식 가능성’을 전제한다. 반면 구성주의에서 지식은 ‘주관적 구성’(조영남, ‘구성주의 교수-학습, 1998)의 산물이며 ’진리‘는 알 수 없거나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된다. 진리 대신 ’수행성‘ 혹은 ’적합성‘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사회적 구성이라 하더라도 ‘주관들의 합의’에 불과하다.

비고츠키와 구성주의의 관계를 다루는데 있어 인식론의 차이는 매우 근본적인 문제이다. 왜냐하면 구성주의의 핵심적 정체성이 바로 인식론의 문제이고 또한 교수-학습이론에서 인식론은 가장 근본적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사회’라는 말의 의미도 다르게 쓰인다. 비고츠키에서 ‘사회’란 근본적으로 ‘역사적 실체로서의 사회적 총체’이지만 구성주의에서는 주로 ‘개인을 둘러싼 상호의존적 결사체’(이종일, ‘사회적 구성주의’, 1998)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비고츠키에서도 개인을 둘러싼 소집단이 설정되지만 사회적 의식이 중재되는 통로인 반면 구성주의에서는 지식을 구성하는 경험, 맥락을 제공하는 환경의 의미를 지닌다. 비고츠키는 결코 구성주의가 아니다. 사회적 구성주의가 급진적 구성주의를 비판할 수 있는 근거로 쓰여 졌을 뿐이며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잘못 분류되었을 뿐이다.  

3. 비고츠키를 구성주의자로 둔갑시킨 이유와 조건들

* 사회적 인식발달에 대한 과학적 설명력
비고츠키가 결코 구성주의가 될 수 없음에도 구성주의자들이 비고츠키를 사회적구성주의의 원조로 삼은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무엇보다 지식발달의 사회적 과정에 대한 비고츠키의 뛰어난 설명력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월치는 비고츠키를 사회적구성주의의 창시자로 제시하였다. 물론 월치가 비고츠키를 사회적 구성주의의 토대적 근거로 제시하였다고 해서 비고츠키가 바로 사회적 구성주의가 되는 것은 아니다.....단지 월치가 사회적 구성주의의 근거를 찾는 가운데 비고츠키의 이론이 자신이 추구하는 사회적 구성주의의 맥과 거의 같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사회문화주의와 구성주의’, 이종일, <구성주의교육학>, 교육과학사, 1998)

지식의 사회적 발달에 대한 비고츠키의 분석과 설명은 매우 탁월한 논의이다. 비고츠키는 변증법적 유물론에 입각하여 당시 발달하기 시작한 언어학과 심리학의 성과를 받아 안으면서 인간의 인식발달과정을 역동적으로 묘사하였다. 구성주의의 발전과정에서 구성주의 내부에서는 개인적 혹은 급진적 구성주의라 불리우는 초기 구성주의의 극단적 경향과 문제를 보완할 필요가 있었는데 비고츠키의 이런 뛰어난 분석과 설명은 큰 힘이 되었다. 비고츠키 이론을 채용하여 급진적 구성주의를 비판하고 사회적 구성주의를 체계화한 월치와 코일은 아예 스스로의 위치(실제로는 바로 그들이 거겐(Gergen)과 함께 사회적 구성주의의 원조라 할 수 있다.)를 포기하면서까지 비고츠키를 사회적 구성주의의 시조로 위치시켰다. 그리고 한국교육학계는 이들의 분류를 주로 받아들였다.

* 인식주체의 능동성 강조
또 하나의 이유는 비고츠키는 ‘내면화’ 등 인식의 ‘능동적 과정’을 중시하였는데, 이를 구성주의에서는 지식의 주관적 구성으로 오해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인식주체의 능동성’과 ‘주관적 구성’은 전혀 다르다. 전자에서 지식은 여전히 사회문화적인 것으로 규정되지만, 후자에서는 개인의 주관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된다. 그럼에도 양자가 혼동되면서 구성주의로 포섭된 것이다.

* 변증법적 유물론에 불철저한 이해와 비고츠키 자체에 대한 무지
뛰어난 설명력을 가져 올 필요성과 오해의 여지가 있다 하더라도 사회적 구성주의의 시조로 잘못 제시되고 그러한 규정이 널리 퍼지게 된 것에는 또 다른 이유들이 있다. 우선, 비고츠키를 구성주의로 분류한 일부 학자들이 변증법적 유물론에 대한 철학적 이해가 철저하지 못한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인식론의 근본 차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채 ‘인식발달에 사회적 영향이 매우 크다’라는 설명과 주장의 단면만을 채용한 것이다.
그리고 본래의 비고츠키와 그의 이론이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은 것도 왜곡이 퍼진 중요한 조건이었다. 비고츠키 교육학은 1960년대 이후에야 서방에 조금씩 소개되기 시작했고 구성주의가 확산될 때에도 비고츠키와 그의 이론을 제대로 접한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본래의 비고츠키를 알 수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왜곡이나 오류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웠고 ‘구성주의자 비고츠키’는 소문처럼 자연스럽게 퍼져나갔다.  

4. 잘못된 규정의 결과 : 문제점과 효과(?)

1) 문제점
구성주의자로의 왜곡은 필연적으로 비고츠키 이론과 내용의 왜곡, 교육학적 취지와 방법론의 왜곡으로 연결된다. 해설서에서는 주요 개념들과 강조들이 빠지기도 하고 본래의 의미와 다른 해석과 설명이 덧붙여졌다. 심지어 ‘비계’ 등과 같이 나중에 다른 사람이 고안한 개념이 비고츠키 이론으로 소개되기도 하였다. 그 결과 현재 이해되고 있는 비고츠키는 본래의 비고츠키와는 상당히 다르다. 마치 역사드라마에서의 인물 왜곡과도 비슷하다.

* 비고츠키 교육학의 상대주의로의 둔갑
사회적 구성주의에 대한 개론서들은 대부분 가장 중요한 이론적 근거로 비고츠키 이론을 소개한다. 사회적 구성주의자로 규정됨으로써 유물론적 실재론에 서있는 그의 이론은 실제와는 정반대로 구성주의의 상대적 인식론을 정당화하고 심화하는 것으로 왜곡된다.

“...개인적구성주의와 사회적 구성주의로 대별될 수 있다. 비록 개인적 대 사회적으로 구성된 앎과 지식의 성질이 분명하지는 않지만 분명한 것은 이들 두 이론 모두가 반실재론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이명숙, ‘구성주의의 심리학적 근저’, 1999)

* 주요 관점의 변질 그리고 덧붙임
‘사회’라는 의미가 다르게 쓰여짐은 앞서 지적한 바 있다. 이 외에도 주요 개념의 변질과 축소가 수반된다. 비고츠키는 사고기능의 ‘발달’을 중시했으나 구성주의에서는 지식 ‘구성’이 초점이 된다. 비고츠키는 중재된 ‘간접 경험’의 의미를 중요시 여겼으나 구성주의에서는 개인적 ‘직접 경험’이 중시된다. ‘근접발달대’와 관현해서는 ‘협력’ 대신 ‘비계’가 자리를 차지한다. 결국 사회적 의식이 언어와 실천을 매개로 주체적 인식과 발달로 전화하는 비고츠키의 역동적 분석과 묘사가 사상되고 ‘개인 간 상호작용’이라는 부분적 단면으로 거의 축소되어 버린다.

* 구성주의의 시장주의 옹호와 결합
주관적 상대주의에 기반한 구성주의는 기본적으로 교수론이기 보다 학습론이며 개별화교육을 지향한다. 그리고 철저한 중립주의를 명분으로 헤게모니에 순응한다. 이 때문에 시장주의와 상당한 친화력을 지니며 시장주의 교육의 엘리트중심, 조기교육론, 수준별교육 등을 옹호한다. 경쟁 역시 마찬가지다(암기식, 주입식 교육에 대해서만 적대적이다). 사회적 구성주의라 하더라도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상호작용을 강조하지만 초점은 여전히 개인이다. 구성주의의 이 같은 교육적 관점과 지향이 비고츠키를 내세우면서 표현되는 것은 엄청난 이론적, 실천적 아이러니다.

2) 파생적 효과들
또 다른 아이러니지만 비록 왜곡, 편집되었다 하더라도 비고츠키 이론의 광범한 소개는 앞으로 통합적이고 진보적인 교수-학습론을 펼칠 수 있는 조건을 확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개인적 상호작용으로 축소, 변질되었지만 인식의 사회적 과정에 대한 핵심 개념을 널리 확산시켰고 변증법적 유물론의 방법론적 우월성을 확인시켰다. ‘선도활동’과 ‘협력’, ‘교수와 학습의 통일’ 등 의미있는 개념들이 널리 퍼진 것 역시 기반이 된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 구성주의의 상대주의적 인식론을 극복하고 변증법적 유물론에 입각한 논의들을 새롭게 발전시킨다면 진보적 교수-학습론의 새로운 지평을 보다 빠르고 용이하게 열릴 수 있을 것이다.

5. 복권을 위하여
비고츠키는 변증법적 유물론의 관점에서 마르크시즘 교육학의 지평을 거대하게 열어젖힌 선구자이다. 왜곡은 오래갈 수 없다. 비고츠키에 대한 구성주의적 덧칠이 시정되고 맑시즘 교육학자로서 새롭게 조명되어야 한다.
비고츠키를 구성주의가 아닌 별도의 흐름으로 보는 시각이 이번이 처음인 것은 아니다. 월치 등의 분류에도 불구하고 세계 교육학계에서는 비고츠키를 구성주의로 보지 않는 시각 역시 많았고 한국에서도 소수지만 사회문화주의로 별도로 취급한 시각도 있었다. 최근에는 유럽과 미국에서 구성주의와 구별되는 ‘비고츠키교육학’이라는 독자적 흐름의 확대로 나타나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한 때 세계 교육학의 주류를 형성했던 구성주의의 패퇴 흐름과도 맥락을 같이 한다. 핀란드교육의 이론적 지주가 되고 있는 ‘활동시스템이론’의 선구자인 엔게스트롬은 자신의 이론이 기반하고 있는 ‘비고츠키의 문화-역사적 관점과 사회적 구성주의는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만큼 거리가 멀다’고 말하고 있기도 하다.    
그렇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구성주의가 대세이고, 비고츠키 역시 구성주의자로 왜곡된 상태로 있다. 이는 구성주의가 미국교육학계의 대세였던 90년대의 흐름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한 때문이다. 아직까지 비고츠키에 대한 왜곡된 규정이 거의 그대로 남아있는 한국적 상황에서 왜곡을 바로잡고 비고츠키 교육학을 제대로 소개하고 연구하는 것은 중요한 교육학적 과제이다.
비고츠키 복권 작업은 앞으로 크게 3가지 부분으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본다. 첫째, 변증법적 유물론에 입각한 맑시스트 교육학자로서 비고츠키의 이론과 성과를 올바로 소개하는 것이다. 둘째, 구성주의에 의해 왜곡된 개념과 내용을 취지에 맞게 재해석, 재구성하는 것이다. 셋째, 진보적 교수-학습이론의 출발점으로서 의의를 분명히 하면서 그 성과를 계승하는 한편 한계와 미진한 부분을 보완, 발전시켜 새로운 논의들로 확장해 나가는 것이다.  
참고자료
도서
1. 비고츠키의 사회 속의 정신 8~9p - 루리아가 쓴 비고츠키 전기
2. 아동의 상상력과 창조 3~4p - 옮긴이의 말
3. 정신의 도구 24~29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