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경제학 학습을 위한 몇 가지 도움말
필자는 현재 매체 『사회주의자』 주최의 정치경제학 강좌에서 강사를 하고 있다. 전체 강좌는 여섯 개의 강좌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미 3강이 진행되었고, 필자는 이 중 1강 상품과 화폐, 2강 잉여가치의 생산을 담당하였다. 필자는 여러 번 『자본론』 강좌나 정치경제학 강좌에서 강사를 담당해왔는데, 이 과정에서 학생 분들이 학습에서 자주 겪는 혼동이나 어려움을 알게 되었다. 또한 내용의 이해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개념(키워드)들이 있는데 학생 분들이 이 개념을 정확히 파악하면 다른 내용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것들을 해설하여 정치경제학 학습을 하거나 앞으로 하려고 하는 분들에게 몇 가지 도움말을 드리려고 한다.
1. 교환가치와 가치를 같은 것으로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교환가치와 가치의 관계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자본론』 학습이나 정치경제학 학습을 하다보면 이해한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거나 학습 후 시간이 지나면 다시 혼동하는 일이 많은 것이 교환가치와 가치이다. 이 둘은 같은 것이 아닌데 같은 것으로 잘못 이해하거나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둘 사이의 관계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여러 번 학습을 한 사람들도 그런 경우가 있다.
교환가치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 어떤 상품이 교환되는 다른 상품의 양을 말한다. 서로 다른 사용가치를 갖는 상품들은 일정한 비율로 교환된다. 가령 1쿼터의 밀은 X량의 구두약, Y량의 명주, Z량의 금과 교환된다. 이때 X량의 구두약, Y량의 명주, Z량의 금은 모두 밀 1쿼터의 교환가치이다. 교환가치가 이런 것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기억해 두는 것은 교환가치와 가치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교환가치의 배후에는 가치가 있고 가치는 추상적 인간노동이 응고된 것이다. 이것을 양복 한 벌과 구두 네 켤레가 서로 교환되는 예를 가지고 설명해 보도록 하겠다. 양복 한 벌과 구두 네 켤레가 교환관계에 놓이면 각각의 사용가치는 무시되고 노동생산물이라는 속성만 남는다. 그런데 노동생산물의 사용가치를 무시해버리면 이 노동생산물은 재봉, 구두제조 등 특정한 생산적 노동의 생산물이 아니게 된다. 노동생산물의 유용성이 사라짐과 동시에 노동생산물에 체현된 노동의 유용한 성질도 사라진다. 노동생산물을 생산하는 이들 노동은 더 이상 서로 구별되지 않고 모두 동일한 종류의 노동, 즉 추상적 인간노동으로 환원된다. 가치는 바로 이 무차별적인 추상적 인간노동이 응고된 것이다. 가치는 바로 사회적 실체인 인간노동이 응고된 것, 즉 사회적 실체의 결정체이다. 교환가치라는 현상형태의 배후에는 사회적 실체인 인간노동의 결정체,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의 이해에서, 서로 구별되지 않고 모두 동일한 종류의 노동, 추상적 인간노동의 이해가 결정적인데, 추상적 인간노동의 이해는 상품생산 사회에서 노동이 갖는 특유한 사회적 성격을 이해하게 되면 보다 쉬워진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서는 상품생산이 전면화된다. 교환을 위해 생산되는 노동생산물이 상품인데,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서 노동생산물은 압도적 다수가 상품이다. 그리고 독립적으로 행해지고 상호의존하지 않는 사적 노동의 생산물만이 서로 상품으로 대면한다. 상품생산자들에 1, 2, 3…… 번호를 매기면 무수히 많은 상품 생산자들이 존재하는데 각각의 생산자들은 서로 독립적으로 상호의존하지 않고 사적으로 노동한다. 이 각각의 노동이 더해져서 사회의 총노동을 형성하고 이 각각의 노동은 사회의 총노동의 한 구성분들이다. 그리고 실제로 생산자들은 수시로 이 노동에서 저 노동으로 이동할 수 있고 이동한다. 그래서 상품생산 사회에서 각각의 노동은 구체적 유용노동의 측면을 무시하면 동일한 노동, 추상적 인간노동이다. 이 추상적 인간노동은 단순히 사고의 산물이 아니라 실재하는 것이다. 이는 상품생산 사회가 아닌 사회와 대비할 때 분명하게 드러난다. 가령 과거에 역사상 존재했던 원시공동체에서는 공동체 구성원들이 공동체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같이 생산해서 구성원들 사이에서 교환을 통하지 않고 직접 분배하고 소비하였다. 원시공동체는 상품을 생산하는 사회가 아니었고, 이러한 사회에서 노동은 ‘독립적으로 행해지고 상호의존하지 않는 사적 노동’이 아니었다. 따라서 실제로 존재하는 노동은 구체적 유용노동뿐이었으며 추상적 인간노동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상에서 밝힌 것을 토대로 할 때 동일한 노동, 추상적 인간노동은 사회적 실체이고 가치는 이러한 사회적 실체가 응고된 것이기 때문에 순전히 사회적인 것이다. 가치가 사회적인 것이라는 점은 왜 가치가 교환가치를 통해서만 나타날 수 있는지를 이해하는 데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가치는 추상적 인간노동이 응고된 것으로 추상적 인간노동이 대상화된 것이다. 따라서 가치는 사고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추상적 인간노동이 대상화된 것으로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데 추상적 인간노동이 대상화된 것인 가치는 감각적으로는 포착할 수 없다. 왜냐하면 가치에는 단 한 조각의 자연소재도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가치는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순전히 사회적인 것이다. 가치는 앞에서 공부하였듯이 사회적 실체인 추상적 인간노동이 응고된 것, 사회적 실체인 추상적 인간노동의 결정체로서 순전히 사회적인 것이다. 따라서 가치는 사회적인 것이 응고된 것이므로 감각적으로는 포착할 수 없고, 가치는 오직 상품과 상품의 사회적 관계 속에서만 나타날 수 있다. 즉, 교환가치를 통해서만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가치는 교환가치라는 현상형태를 필연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앞의 예를 가지고 말하면 양복 한 벌의 가치는 구두 네 켤레라는 교환가치를 통해서만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요약하면 교환가치와 가치는 같은 것이 아니며 교환가치라는 현상형태의 배후에는 가치가 있고 가치는 교환가치라는 현상형태를 필연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다. 하나를 덧붙이면 교환가치는 계속 발전하여 금과 같은 화폐상품으로 표현되는 교환가치로까지 발전하는 데 이것이 화폐형태이고 이 경우 각각의 개별상품에게는 가격이 된다. 가격은 금으로 표현되는 상품의 교환가치에 불과한 것이다.
2. 상품생산 사회에서는 상품물신성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자본론』 학습이나 정치경제학 학습에서 매우 어렵게 다가오는 것이 상품의 물신성이다. 이 물신성을 이해하는 데에서도 상품생산 사회, 그리고 상품생산 사회에서 노동이 갖는 특유한 사회적 성격을 이해하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이미 언급하였듯이 독립적으로 행해지고 상호의존하지 않는 사적 노동의 생산물만이 서로 상품으로 대면한다. 유용한 물건이 상품으로 되는 것은 그것이 서로 독립적으로 작업하는 사적 개인의 노동생산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적 개인들의 노동총계가 사회의 총노동을 형성한다. 그런데 상품생산 사회에서 상품 생산자들은 자기들의 노동생산물의 교환을 통해 비로소 사회적으로 접촉하기 때문에, 그들의 사적 노동의 독특한 사회적 성격도 오직 이 교환 안에서 비로소 나타난다. 바꾸어 말해, 교환행위가 노동생산물들 사이에 수립하는 관계들과, 노동생산물을 매개로 생산자들 사이에 수립하는 관계를 통해서만 비로소 사적 개인의 노동은 사회의 총노동의 한 요소로 나타난다. 이러한 이유로 생산자들에게는 자기들의 사적 노동 사이의 사회적 관계는, 개인들이 자기들의 작업에서 맺는 직접적인 사회적 관계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물건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로서 나타나게 된다.
상품생산 사회에서 생산자들은 자기의 노동생산물의 교환을 통해 비로소 사회적으로 접촉하게 된다. 때문에 생산자들에게는 자신들의 사적 노동의 관계가, 자신들의 노동 자체에서의 개인들 사이의 직접적인 사회적 관계로 나타나게 되지 않고 물건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상품물신성이다.
바로 교환을 위해 노동생산물을 생산하는 상품생산 사회의 특성 자체로 인해 생산자들의 사회적 관계가 물건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즉, 물신성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1, 2항의 검토를 통해 상품생산 사회가 교환을 전제로 생산하는 사회라는 것을 염두에 두는 것이 『자본론』 학습이나 정치경제학 학습에서 마주치게 되는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서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 노동력이라는 상품의 특성을 이해하는 것이 잉여가치론 이해의 핵심이다.
『자본론』 학습이나 정치경제학 학습에서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잉여가치의 생산이다. 그리고 잉여가치가 발생하는 이유는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데 필요한 노동시간 이상으로 자본가를 위해 노동하기 때문이다. 즉, 노동력의 가치보다 노동과정에서 노동력이 창조하는 가치가 크고 둘 사이의 차이가 잉여가치를 형성한다. 이것이 잉여가치론의 핵심적 내용이다. 때문에 잉여가치가 발생하는 이유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노동력이라는 상품의 특성을 이해해야 한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서는 노동력도 상품이 되는데, 노동력은 다른 상품과 똑같이 사용가치와 가치를 갖는다. 노동력의 사용가치는 노동이다. 따라서 가치의 원천이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곧바로 뒤에서 살펴보게 될 터인데 가치의 원천일 뿐만 아니라 잉여가치의 원천이다. 노동력의 가치는 다른 모든 상품의 가치와 마찬가지로 이 특수한 상품의 생산과 재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에 의해 규정된다. 살아있는 개인은 자기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일정한 양의 생활수단을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노동력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은 결국 이 생활수단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으로 귀착된다. 즉, 노동력의 가치는 노동력 소유자의 생활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생활수단의 가치다. 생활수단의 총량은 노동하는 개인을 정상적인 생활상태로 유지하는 데 충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한 다른 상품들의 경우와 달리 노동력의 가치규정에는 역사적 및 도덕적 요소가 포함된다. 그리고 노동력의 생산에 필요한 생활수단의 총량에는 노동자들의 자녀들의 생활수단이 포함되고 노동력의 가치에는 훈련과 교육에 소요되는 상품들의 가치도 들어간다. 노동력의 가치는 일정한 양의 생활수단의 가치로 분해될 수 있다. 그러므로 노동력의 가치는 이 이 생활수단의 가치에 따라 변동한다.
노동력이라는 상품의 특성을 파악한 후 잉여가치의 생산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잉여가치의 생산을 이해하는 데 편의를 위해서 다음과 같은 가상적인 상황을 가정해 본다.
1) 20파운드의 면화에서 노동자 1인이 12시간에 20파운드의 면사를 뽑아낸다(시간당 1⅔파운드의 면사를 뽑아낸다.).
2) 20파운드의 면화의 가격은 20실링인데 20실링으로 표현되는 금량을 생산하는 데에는 40시간이 필요하다(1실링 당 2노동시간).
3) 20파운드의 면화에서 20파운드의 면사를 뽑아내기 위해서는 4실링만큼의 방추가 소모된다. 4실링으로 표현되는 금량을 생산하는데 8노동시간이 필요하다.
4) 노동력의 하루의 가격은 3실링인데 3실링으로 표현되는 금량을 생산하는 데에는 6노동시간이 필요하다. 이 노동량은 노동자의 매일 평균의 생활수단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것으로 가정했다.(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노동력의 가치는 노동력 소유자의 생활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생활수단의 가치다.)
5) 하루의 노동일은 12노동시간이다. 즉, 1인의 노동자는 하루에 자본가를 위해 12노동시간 일을 한다. 노동자는 6시간이 아니라 12시간 노동한다.
이러한 가상적인 상황에서 자본가는 20파운드의 면사를 뽑아내기 위해서 20파운드의 면화에 20실링, 방추 소모분에 4실링, 노동력에 3실링을 투하한다. 전체로서는 27실링을 투하한다. 여기에는 54노동시간이 대상화되어 있다.
그런데 20실링, 4실링은 그대로 면사로 이전된다. 그러므로 48노동시간(4노동일)에 상응하는 가치가 면사로 이전된다. 노동자는 12시간 노동하므로 12노동시간에 상응하는 가치를 첨가한다. 그 결과 20파운드의 면사에는 60노동시간(5노동일)이 대상화되어 있게 된다. 이것은 30실링의 가격을 갖는다(면사 1파운드 당 1.5실링).
그래서 자본가는 다음의 결과를 갖게 된다.
자본가는 3실링의 잉여가치를 획득하게 된 것이다. 그러면 이 3실링의 잉여가치는 어떻게 발생하게 된 것인가? 그것은 자본가가 노동력에 3실링을 투하했을 뿐이지만 노동자가 12시간 노동을 하여 새롭게 6실링의 가치를 첨가했기 때문이다. 만약 노동자가 12시간이 아니라 6시간만 노동한다면 다음과 같이 잉여가치가 발생하지 않게 된다.
따라서 잉여가치가 발생하게 된 것은 노동력의 가치에 6노동시간이 대상화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자가 6시간을 초과하여 12시간 노동하였기 때문이다.
좀 더 상세하게 이 문제를 고찰해보자. 노동력의 하루의 가치는 3실링이었는데, 그 이유는 노동력 그 자체에는 1/2노동일이 대상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노동력의 생산을 위해 매일 요구되는 생활수단은 1/2노동일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력에 포함되고 있는] 과거의 노동과 [노동력이 제공할 수 있는] 살아있는 노동은, 다시 말해 노동력의 매일의 유지비와 노동력의 매일의 지출은 그 크기가 전혀 다른 두 개의 양이다. 전자는 노동력의 교환가치를 규정하며, 후자는 노동력의 사용가치를 형성한다. …… 따라서 노동력의 가치와 노동과정에서 노동력이 창조하는 가치는 그 크기가 다르다. …… 그러나 자본가에게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이 상품의 독특한 사용가치[즉, 가치의 원천일 뿐 아니라 그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가치의 원천이라는 것]였다.
(『자본론』 Ⅰ, 256~257쪽, 강조는 인용자)
결국, 노동과정에서 노동력이 창조하는 가치(6실링)는 노동력의 가치(3실링)보다 큰데 그 차액(3실링)이 잉여가치인 것이다.
이상에서 정치경제학 중, 상품과 화폐, 잉여가치의 생산에 해당하는 부분에서 학생 분들이 학습에서 자주 겪는 혼동이나 어려움인 교환가치와 가치, 상품의 물신성, 잉여가치론의 이해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개념(키워드)인 노동력을 해설하여 정치경제학 학습을 하거나 앞으로 하려고 하는 분들에게 몇 가지 도움말을 드리려고 하였다. 이 글이 정치경제학 학습에 도전하는 분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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