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체육/암벽

한국의 바윗길을 가다(23) 내설악 미륵장군봉 코락길 / 설악에 새겨진 ‘코등’의 자존심

인서비1 2019. 7. 27. 20:35

한국의 바윗길을 가다(23) 내설악 미륵장군봉 코락길 / 설악에 새겨진 ‘코등’의 자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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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적벽을 여러 개 붙여놓은 듯 붉고 기운찬 신선벽의 바위들은 계속 이어져 몽유도원도 릿지를 이루고 있다.


[김성률 기자] 인수봉이 대한민국 암벽등반의 메카라면 설악산은 세계로 향한 대한민국 클라이머들의 요람이라 할만하다. 이 땅에서 펼쳐진 숱한 해외 고산, 거벽 원정산행을 위한 베이스캠프가 바로 설악에 차려졌기 때문이다.

설악산에는 흔히 삼형제 바위라 부르는 적벽, 장군봉, 무명봉을 비롯해서 돌잔치길과 비너스 릿지로 유명한 울산바위 등이 있고 겨울철에는 토왕폭과 대승폭 등이 있어 동계훈련지로도 인기가 높다. 뿐이랴 장군봉의 꼬르데길, 석이농장길, 적벽의 크로니길, 에코길, 교대길   토왕골의 '한편의 시를 위한 길', '별을 따는 소년', ‘4인의 우정길’… 실로 설악은 바윗길의 천국, 바위길의 잔치집에 다름 아니다.   

설악산은 이렇게 삼형제봉과 토왕골, 울산바위를 중심으로 바윗길이 개척되어 있지만 내설악에도 이에 못지않은 바윗길들이 있다. 바로 미륵장군봉과 신선벽이다. 미륵장군봉은 바위 자체만의 높이가 약 250m, 폭 120m에 5개의 바윗길이 있다. 

미륵장군봉과 신선벽 등반은 장수대에서 시작한다. 장수대 주차장 못미처 장수3교를 지나 갓길에 약 7~8대 정도를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이곳에 이미 차들로 가득 주차되어 있다면 장수대에 차량을 주차하고 걸어 내려와야 한다. 운좋게 주차를 했다면 이곳에서 장비를 준비하여 도로를 건넌다.

최근에는 설악산관리사무소에서 사전에 내주는 등반허가서 없이는 이곳진입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으니 반드시 사전에 신청한 날짜에 등반을 하는 것이 좋다. 입구를 지키는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에게 사정을 해볼 수는 있겠으나 불필요한 시간낭비를 할 필요는 없다. 

입구에서 소로길을 따라 올라가면 중간에 계곡물을 지나 석황사터를 만난다. 석황사는 원래 이곳에 있었지만 국립공원 안에 무허가로 있었기 때문에 철거되어 인제군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약 30분의 어프로치를 하면 왼쪽에 거대한 '신선벽'이 나타난다. 

신선벽의 바윗길은 왼쪽부터 노을이 질 때까지(5.10d), 레인던스 크레이지(5.10a), 환영길(5.10b), 하얀마음(5.10c), 바기라티 가는길(5.11d)이 있으며 주로 왼쪽 4개의 바윗길을 등반한다. 마치 적벽을 여러 개 붙여놓은 듯 붉고 기운찬 바위들은 계속 이어져 몽유도원도 릿지를 이루고 있다. 

신선벽 건너편, 그러니까 올라가던 길에서 신선벽을 왼쪽에 두고 우측으로 방향을 꺾으면 비로소 미륵장군봉과 만나게 된다. 미륵장군봉에는 모두 5개의 바윗길이 있다. 코락, 즉 코오롱등산학교 동문회에서 개척한 코락길과 타이탄산악회에서 개척한 4개의 바윗길, 즉 타이탄길, 한가윗길, 노총각길, 자유를 위한 날개짓(5.11c) 등이 그것이다. 

셋째 마디부터 본격적인 바윗길이 열린다. 셋째 마디는 왼쪽의 크랙지대를 오르게 된다.


코락길은 모두 312미터, 열 두 마디로 구성된 비교적 긴 바윗길이다. 등반에는 퀵드로우 10개, 프렌드 1조, 최소 60미터 자일 2동 등이 필요하다. 

어택 가방을 메고 등반을 시작한다. 출발점은 공간이 여유가 있다. 먼저 등반을 시작한 팀들의 배낭이 여기저기에 보인다. 첫째 마디는 길이44m, 완경사 5.7급의 바윗길이다. 편안한 슬랩길로 몸을 푸는 구간이다. 중간에 낡은 하켄이 박혀 있는데 선등자라면 반드시 퀵드로우를 걸어 통과시키자. 몸이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첫 볼트까지의 거리가 너무 길기 때문이다. 출발지점으로부터 약 9m와 15m 지점에 볼트를 통과한 다음 약 20여 미터를 더 오른 후 역시 소나무에 확보한다.

둘째 마디의 난이도는 5.7의 완만한 코스다. 길이는 약 35m. 둘째 마디를 오르면 인수봉의 오아시스와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왼쪽으로는 신선벽이 어느새 우뚝 서서 내려다보고 있다. 까마득하게 높아 보이는 신선대를 등반하는 클라이머들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셋째 마디부터 본격적인 바윗길이 열린다. 셋째 마디는 왼쪽의 크랙지대를 오르게 된다. 선등자는 크랙을 뜯으며 올라가 우측크랙에 캠을 하나 박고 왼쪽으로 올라서 돌아가면 확보지점이다. 넷째마디는 거리 약 20m, 난이도 5.8급으로 작은 오버행을 넘어서면 테라스와 만날 수 있다. 벙어리크랙인 다섯째 마디(5.9)를 넘어서 쌍볼트 지점에 확보하면 드디어 코락길의 크럭스인 여섯 째 마디와 만나게 된다. 


여섯째 마디는 길이 약 17m에 약 105도의 경사를 지닌 5.10급의 오버행 크랙 구간이다.


여섯째 마디는 길이 약 17m에 약 105도의 경사를 지닌 오버행 크랙 구간이다. 난이도가 있는 곳에서는 주저하면 더 힘이 든다. 되든 안되든 과감하게 올려치는 수밖에 없다. 선등자는 실력이 안되는 후등자를 위해서 슬링줄을 걸어 두는 것이 등반 속도를 높일 수 있다. 

일곱째 마디는 길이 20미터 난이도 5.9의 재미있는 쌍크랙길이다. 처음에는 오른손을 오른쪽으로 나있는 크랙으로 벌려서 지나가다가 중간에는 스태밍 자세를 취하고 마지막에는 왼쪽 크랙으로 내려서면 된다. 확보지점에서는 오른쪽으로 타이탄길을 등반하는 일행의 모습이 한눈에 바라다 보이고 저 멀리 구름이 쉬었다가 넘어가는 풍경이 아스라하다. 

여덟째 마디는 다소 가파른 난이도 5.10의 슬랩구간이다. 다행히 전날 내린 비도 다 마르고 바위결이 살아있어 등반에 큰 어려움은 없다. 

여덟째 마디를 마친 시간이 오후 4시 30분경. 날이 흐려 빗방울이 떨어지고 여덟째 마디를 지나서는 등반성도 떨어진다는 생각에 일행은 이곳에서 하강하기로 결정했다. 

일곱째 마디는 길이 20미터 난이도 5.9의 재미있는 쌍크랙길.


코락길은 이어서 열두 마디까지 이어진다. 즉 아홉째 마디는 길이20m, 난이도 5.9의 슬랩구간이고 열 번째, 열한 번째 마디는 완만한 슬랩과 크랙구간이며 마지막 열두 번째 마디는 자일을 설치하지 않고도 등반할 수 있는 구간이니 등반시간을 살펴보며 완등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좌측으로 걸어가 클라이밍 다운을 하니 그곳이 바로 코락길의 하강길이다. 이곳에서 아쉬움을 남기고 하강을 하기로 한다. 하강길에는 등산학교 학생들의 하강이 지연되어 밀리고 있다. 장엄한 설악. 그리고 미륵장군봉. 다음 등반 때는 과감성과 힘을 동시에 필요로 하는 미륵장군봉 타이탄길과 신선벽 등반을 기대해 보며 하강을 기다린다. 

코락길은 1990년 8월 코락회원인 최정식, 김현대, 조용환, 박현보, 염동훈, 권영삼, 이희경, 홍원기 등이 개척했다. 코오롱등산학교 동문회의 활성화와 결속을 다지고 주말등반에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사실 코오롱등산학교(교장 : 이용대, 이하 ‘코등’)는 우리나라 암벽등반 저변확대와 안전등반에 지대한 기여를 해온 등산학교이다. 

코등은 ‘올바른 산악문화 보급’이라는 취지로 1985년 6월5일 북한산에서 43명의 입교로 처음 학교문을 열었다. 이후 18년동안 수료한 학생은 약 3,000여 명에 강사는 약 100여명에 이른다. 코등은 정규반과 기초반, GPS반은 물론 여름에 설악산 비선대 일원에서 암벽반을 열고 있으며 겨울에는 동계반에서 빙벽교육과 설상등반교육도 하고 있다. 전반적인 학교 업무를 맡고 있는 원종민 교무 이외에 쟁쟁한 산악인들이 이 학교의 강사진을 거쳤거나 지키고 있다.

윤재학 대표강사를 비롯하여 원종민 주무, 남선우, 손재식, 심산, 서형찬, 김성기, 손정준, 이동윤, 전양준, 문철한 등의 강사진이 활약하고 있다. 아이거북벽을 우리나라 최초로 등반한 산악인 윤대표도 바로 코오롱등산학교 강사출신이다. 그들의 자존심이 뭉쳐서 바로 이곳 설악산 미륵장군봉에 학교의 이름을 새긴 바윗길을 개척했으리라. 설악에 새겨진 ‘코등’의 자존심, 언제까지나 살아 빛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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