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인수봉이나 도봉산 선인봉과 같은 곳에서 멀티 피치 등반을 하는 인구는 아마도 자연바위에서 볼더링이나 스포츠클라이밍을 즐기거나 실내암장에서만 피트니스 차원으로 즐기는 인구보다 훨씬 많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대부분의 등반 인구를 차지하는 멀티 피치 등반 중에서도 순수한 전통등반(크랙 등반)을 하는 사람들은 더욱 극소수에 불과하다.
자연바위보다는 실내 운동을, 스포츠클라이밍이나 트래드클라이밍과 같은 로프를 이용한 등반보다는 볼더링을 즐기는 젊은이들이 더 많은 이유를, '요즘 젊은 사람들은 편하고 쾌적한 걸 좋아하니까'라는 이유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는 동시에, 어느 한 단편만을 보고 단정 지으려고들 한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이유는 조금 다르다.
국내의 바위들이 해외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랙이 덜 발달된 환경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런 등반에 덜 노출이 되어있다는 것이 이유이기도 하지만, 더 가능한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가 크랙 등반을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교육 기회의 부재'에 있을 수도 있다.
물론 전 세계 인구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유튜브나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를 통해 무한의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해도, 궁극적으로 모두가 원하는 것은 가상보다는 현실 속 경험일 것이다.
요즘 시대에는 인생을 인터넷으로 배운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아닌가.
스포츠클라이머인 나는 몇 년 전부터 멀티 피치 등반(트래드 등반)을 조금씩 즐겨오고 있고 여전히 걸음마도 할 줄 모른다.
10년 이상을 해온 스포츠클라이밍으로 힘은 있으니 크랙 등반에서 할 줄 아는 기술이라고는 레이백 뿐이다.
지나친 레이백으로 힘에 부치거나 레이백을 쓸 수 없는 구간에서는 오도 가도 못하는 경험을 하곤 했다.
쌓아둔 힘으로 어떻게든 꾸역꾸역 올라가긴 했지만, 재밍이라는 기술을 이용해 훨씬 더 쉽게 오를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제대로 되지 않아 답답해 미칠 노릇이었다.
제천 금수산 저승봉에 크랙 등반지가 개척이 된 이후에 등반을 갔을 때도 '재밍 스쿨에 입학해야겠다'라는 말을 한 적도 있었다.
뭐든지 말만 하면 소원이 이루어지는 건가!
오랜 세월 동안 국내외 등반지에서 크랙 등반을 즐기며 저승봉을 개척한 '크랙 등반이 좋은 사람들'(페이스북 페이지 이름)이 3년 전부터 매년 '트래드 클라이밍 페스티벌'을 열어오고 있다.
그리고 13분 만에 신청 마감이 되었다는 3회가 되어서야 나는 참석할 수 있었다.
2019년 6월 8일 - 9일, 제천 금수산 저승봉 일대
이 페스티벌은 단순히 모두가 아는 등반을 모두가 함께 등반하며 즐기는 여느 페스티벌과는 달리, 국내에서는 막연한 이 등반에 대한 기초를 이론과 실제로 알려주고 본인들의 다양한 경험들을 공유하고 있었다.
토요일 오전부터 시작된 페스티벌은, 트래드 등반의 장비 설명으로 시작해 기본적인 정의, 개념, 등반기술 그리고 재밍 장갑을 만드는 실기수업까지 이어졌다.
오후에는 페스티벌을 위해 설치된 다양한 크기의 크랙 보드(핑거, 핸드, 피스트 등)에서 직접 만든 재밍 장갑을 끼고 연습을 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개인적 연습이 끝난 이후에는 조별 대항의 크랙 등반 릴레이 게임을 하며 새롭게 만난 참가자들과 친분과 담합을 다지기도 했다.
참가자들을 더욱 흥분으로 몰아넣었던 이벤트 게임은, 손 재밍이 되는 사각 나무 통으로 하는 줄다리기였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도전하며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저녁 식사 후에는 다시 한자리에 모여 앉아 ‘등반 예절'에 대한 강연이 있었다.
그리고 미리 신청받은 질문들에 대해 모두가 함께 생각을 공유하고 소통하는 시간이 마련되었는데, 다양한 경험, 출신 지역, 나이, 성별을 막론한 사람들의 진중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는 기회였고 굉장히 유익하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토요일은 이론과 연습의 시간이었다면, 일요일은 배운 것을 실제로 등반에 적용해보는 시간이었다.
총 6개의 루트 (고맙습니다, 씨 유 어게인, 멈출 수 없어, 늙은 제자 2P, 묻지마, 가족사진)를 7개의 조(1조에 5-6명)가 각 루트 당 1시간 정도씩 돌아가며 톱로핑으로 등반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각 루트마다 두 명의 강사와 스텝이 있고, 새로운 조가 올 때마다 해당 루트와 필요한 기술에 대한 설명이 이어지고 시범 등반을 한다.
조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올라갈 때마다 해당 기술에 대한 설명과 응원이 이어진다.
명월 테라스에서 아래쪽으로 하강할 때는 하강 방법을 기초부터 응용까지 차근하게 알기 쉽게 설명해 주었다.
개인적으로 예나 지금이나 도저히 감도 없고 답도 없는 핑거 재밍을 해야 하는 '고맙습니다'에서는, 조금이라도 감이 잡히려면 처음 내가 등반을 시작했던 그때처럼 끊임없이 생각의 끈을 놓지 않고 실행에 옮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농담처럼 웃으며 말을 던지긴 했지만, "나 '고맙습니다' 프로젝트 하러 와야겠어!"라는 말은 사실 꽤 진심이었다.
'씨 유 어게인'에서는 핸드 재밍을 해야 했는데, '고맙습니다'보다는 조금은 더 쉽다는 말 때문이었는지 아주 조금은 한발 한발 더 나아갈 수 있었다.
내가 크랙 속에 손이나 발을 넣는 것을 보고 제대로 된 재밍 방법을 세심하게 알려주셔서 재밍의 원리를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었고 실제를 적용시켜 보았다.
'고맙습니다'와 함께 연습용 프로젝트로 해보기에 꽤 괜찮을 듯하다.
다음 루트는 쉬어가는 코스라는 '멈출 수 없어'였는데, 책바위에 잘 잡히는 크랙을 레이백으로 오를 수 있다.
말 그대로 손도 잘 잡히는 각진 크랙이어서 레이백을 하기에 용이했고 발자리도 좋아서 어렵지 않았다.
다만 정해진 시간 내에 조 인원이 모두 등반해야 하는 만큼 시간을 정해놓았는데, 내 등반이 느린 건 알고 있었지만 꽤 많이 느리다는 걸 여실히 보여준 루트였다.
마지막 임시 앵커 지점에서 뒤를 돌아보면 충주호를 볼 수 있다는데, 나는 앵커 가기 직전에 시간 초과로 하강하고 말았다.
저승봉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갔을 때 멋모르고 해 본 '늙은 제자 못난이 사부 2P'가 다음 루트였다.
할 줄 아는 기술이라고는 레이백 밖에 없어서 무식하게 있는 대로 힘을 쓰며 등반했고 그래도 앵커 직전의 크럭스까지는 억지로 오르다가 추락하며 혀를 내둘렀던 루트이다.
그런데 그 루트에서 생각지도 못한 허벅지 재밍 기술을 배웠고, 딱 내 스타일이었다.
어쩌면 다들 암장 운동으로 힘은 있어서 더욱 적성에 맞았을지도 모르겠지만, 조원 모두가 제일 재밌다며 입을 모았다.
이 루트 담당 강사님은 이 기술을 알려주기 위해 하루 종일 바위에 매달려 허리가 끊어지고 입이 닳도록 가르쳐 주셨다.
명월 테라스에서 하강해 마지막으로 한 루트는 '묻지마'였다.
재밍 기술이 크게 필요 없이 스포츠클라이밍 루트와 흡사한 짧은 루트였는데, 처음 시작 부분이 오버행이고 같은 동작이 무려 세 번이나 연속으로 나온다.
앵커에 줄을 걸어야 하는 동작이 꽤 불안하고 살 떨리는데 모든 행사 등반은 톱로핑으로 이루어졌기에 그나마 부담이 없었다.
본래 마지막으로 예정되어 있던 '가족사진'은 시간 상 등반하지 못했다.
몇 년 전에 왔을 때 조금 맛은 봤었고 다른 조가 등반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생각 #1 - 통 큰 재능기부
새벽부터 일어나 길고도 긴 하루였던 만큼 좋은 경험과 등반 기술은 물론 그 이상의 값진 것들을 얻은 하루였다.
페스티벌을 기획하고 준비하는 과정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의 시간과 열정이 투자된다.
그런데 트래드 클라이밍 페스티벌이 열렸던 이틀 내내 페스티벌이라는 명칭보다는 '학교'라고 불리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많은 것들을 알려주는 교육의 시간이었다.
오랜 기간 동안 '크랙 등반이 좋은 사람들'이 쌓아온 보이지 않는 노력과 경험들이 그야말로 무상으로 전파되는 자리였던 것이다.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등반가들이 돈 한 푼 나오지 않는 이 행사를 위해 본인 등반을 내팽개치고 주말을 통째로 반납하고 이틀 내내 목이 아프게 열심히 말하고 똑같은 루트를 몇 번씩 등반하고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이 페스티벌은 사기업에서 진행된 상업 행사도 아니요, 충분한 비용의 참가비를 받는 행사도 아니었다.
그들은 '그 어떤 감정적 이유'의 공감대 하나만으로 한마음이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통 큰 재능기부'를 선뜻 해주었고, 우리는 금전적 가치로 쉽게 환산할 수 없는 특혜를 받은 것이다.
'주말 이틀을 즐겁게 잘 보냈다', '모르던 기술을 알아서 좋았다' 정도의 피상적 감상을 넘어서서 우리는 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들이 왜 이런 재능기부를 하는지.
그들의 이유 속 마음의 기저에는 무엇이 있는지.
그렇다면 나는 어떤 클라이머였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자세로 등반을 대해야 할지 말이다.
정답은 없다.
각자의 생각 속에서 무엇을 마음으로 느꼈는지가 답일 것이다.
P.S. 트래드 클라이밍 페스티벌을 열어주신 분들께,
두말하면 잔소리요 흔하디 흔한 단어지만, 그 이상을 표현할 수 있는 적당한 단어도 말도 찾을 수가 없네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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