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자본

[시인과 경제학자]조앤 로빈슨과 어니스트 알투니언-빈곤과 실업의 안타까움에 대한 공유

인서비1 2018. 1. 6. 17:51
[시인과 경제학자]조앤 로빈슨과 어니스트 알투니언-빈곤과 실업의 안타까움에 대한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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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선거가 코 앞이다. 각 후보들은 사회 안정과 불평등 해소, 경제성장 등에 있어서 다양한 해법을 내놓고 있다. 캠프에는 여러 경제학자들이 자리잡고 비전을 제시하며 여러 정책들을 설계하고 있다. 특히 관심을 환기하는 것은 불평등의 해소와 관련이 깊다.

1971년 전미경제학회에서 여성 경제학자인 조앤 로빈슨(1903~83)은 “생산에 기여한 만큼 보수를 받는다”는 한계생산성 이론을 비판했다. 그러니까 “그대의 보수가 적은 것은 그만큼만 ‘기여’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에 딴죽을 건 셈이다. 

케인즈의 제자였던 로빈슨은 이론으로서 경제학은 여러 가지 처방전을 묶어둔 것이 아니라 논리적인 분석도구들의 집합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곧 이런 도구들이 모여서 큰 실험장비가 된다고 했다. 교육정책이든 조세정책이든 여러 정책을 넣어보고 그 결과를 살필 수 있다는 장비 말이다. 그래서 개개 분석도구가 지닌 논리적 ‘가정’과 사회적 ‘시각’이 더 중요하다고 믿었다.

그런 까닭으로 로빈슨은 ‘케임브리지 논쟁’을 이끌었다. 로빈슨을 위시한 영국 케임브리지 학자들과 미국 케임브리지의 하버드대학 경제학자들 사이에 있던 자본에 대한 논쟁이다. 다른 종류의 자본을 어떻게 하나로 합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 핵심이었다. 각기 다른 이윤을 내는 자본들의 가치를 어떻게 단일한 기준인 ‘가격’만으로 합할 수 있겠는가 물었다. 또 한계생산력에 바탕을 두고 자본의 가격(이자율)을 매기는 일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알투니언의 시집 “명예의 장식물」의 표지사진.(왼쪽) 1925년에 찍은 조앤 로빈슨의 사진.(오른쪽)/영국 국립 초상화미술관

알투니언의 시집 “명예의 장식물」의 표지사진.(왼쪽) 1925년에 찍은 조앤 로빈슨의 사진.(오른쪽)/영국 국립 초상화미술관


좋은 가문에서 태어난 그녀는 소녀 시절부터 수필을 쓰고 시를 여럿 발표했다. 그러나 자기 사회의 오점인 빈곤과 실업을 해결해야 한다는 압박 아래 자랐고, 경제학자가 되기로 했다. 여성 차별에서 자유롭지 못한 그때의 영국에서 학자로서 자신감을 얻지 못한 채 결혼했고 잠시 인도에서 살았다. 그 시간이 그녀에게는 오히려 학문적으로 성숙할 수 있는 토양이 됐다.

1936년 로빈슨은 친구의 소개로 시인이자 의사인 어니스트 알투니언(1890∼1962)을 만나게 됐다. 아르메니아계로 시리아 알레포에서 태어났지만, 그는 영국에서 자랐다. ‘아라비아의 로런스’로 유명한 토머스 로런스와 교분이 깊었던 알투니언은 꽤 낭만적인 사람이었다. 로런스의 죽음을 애도하며 <명예의 장식물>이라는 시집을 냈다. “마지막에 나를 보고 웃는군요/ 더 말하지 말고 바라봐요/ 상실의 공허를 통해 서로의 얼굴을/ 모든 것이 찌꺼기인 걸 알고/ 영혼을 아껴”두자고 했다. 비록 좋은 시평을 받지는 못했지만, 시에 대한 열정은 무척 깊었고 그래서 더 넓은 세계를 보려고 돌아다녔다. 


둘은 첫 만남 이후 서로의 시간을 공유했다. 로빈슨은 그의 시집을 출간하도록 힘써주었고 거의 매주 편지를 나누었다. “당신은 나를 취하게 한다”고 시작했던 시인의 몇몇 편지들은 서로의 마음을 드러낸다. 또한 둘의 관계가 경제학자의 시각을 새롭게 했음을 보여준다. 알투니언은 특히 삶의 고뇌와 병원 주변의 여러 가지 절망에 대해 토로했고, 그녀는 공감했다. 경제학자는 시인의 시를 교정해주면서 가까워졌다. 그러면서 개인의 삶과 사회 변화에 소녀 때 같은 섬세한 반응의 깃을 벼리게 됐다.
 
이런 연유로 경제학자는 자녀들에게 소홀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여러 기록은 그렇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또 불안한 관계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다만, 교통사고 같은 위험한 시간을 통해 둘 모두는 팽팽히 당겨진 긴장과 공감의 힘을 얻지 않았을까?

<김연 (시인·경제학자)>



원문보기: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705021512581&code=114#csidx18a8e27276fa47ab2254827a61c5a8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