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자본

[정윤수의 ‘서문이라도 읽자’]마르크스의 <브뤼메르 18일>-마르크스 사상이 집약된 ‘정치학 나침반’

인서비1 2018. 1. 9. 18:05
[정윤수의 ‘서문이라도 읽자’]마르크스의 <브뤼메르 18일>-마르크스 사상이 집약된 ‘정치학 나침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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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모든 사회운동과 노동운동 등 모든 실천이 자칫 교조의 늪에 빠지지 않기 위하여 반드시 준칙해야 할 마르크스의 인용문은 다음과 같다. “이곳이 로도스다. 여기서 뛰어라”

절반쯤 농담을 섞어서 하는 얘긴데, 마르크스의 책을 완독하는 것보다 마르크스주의자가 되는 게 훨씬 더 쉽다. <자본론> 같은 책을 펼쳤다 접었다 하면서 결국은 완독하지 못했음에도, 어찌되었든 그 사상의 20세기적 파장 안에서 사회적 참여를 한 사람이 부지기수 아닌가. 이런 생각을 베를린의 미군 검문소, 즉 체크포인트 찰리에서도 해보았고, 체코 프라하의 어느 작은 만물상 가게에서도 해보았다. 

심야의 체크포인트 찰리. 2차 대전 직후 미 군정기 시절의 잔영과 동서독 분단 이후의 갖가지 역사적 상흔이 배어 있는 그곳은 어느덧 통일독일 30년이 가까워진 지금에는 일종의 ‘다크 투어리즘’ 코스가 되어 있었다. 현대사의 잔혹하거나 비장했던 장소가 여러 의미에서 관광코스가 되고 사람들이 일부러 그러한 곳을 찾아다니는 현상을 다크 투어리즘이라고 하는데, 체크포인트 찰리는 낮에도 또 밤에도 적지 않은 관광객들이 몰리는 장소였다. 관광객이 끊이지 않은 곳이어서 자연스레 선물가게가 난립해 있었고, 그 한 구석에 그렇게 잘 만든 것은 아닌, 조잡한 수준의 마르크스의 흉상이 있었다. 

 독일 베를린 시내의 한 기념품가게에 전시된 마르크스 흉상. /베를린/정윤수

독일 베를린 시내의 한 기념품가게에 전시된 마르크스 흉상. /베를린/정윤수


유럽 인문주의 높은 수준 보여주는 문장 

90년대를 전후로 하여 과거의 사회운동 장에서 레닌을 흉내낸 글들이 꽤 많았다. 격렬한 사상투쟁, 노선 경쟁을 하는 과정에서 쓰여진 많은 글들이 레닌의 정치 팸플릿을 참조하고 응용하여 제출되었다. 그런데 마르크스의 문체를 닮은 글들은 많지 않았다.

레닌이 당장의 중요한 정치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회주의자’와 ‘반동주의자’와 ‘제국주의자’들을 향해 날카로운 비판과 시니컬한 문장을 가파르게 던졌는데, 이것이 우리의 사회운동 과정에서도 효과적으로 쓰였던 것이다. 

반면 마르크스는 꽤 많은 전술적 요구의 글에서 그러한 면모를 보였지만, 본격 저작들에서는 유럽 인문주의의 높은 수준을 보여주는 문장을 유감없이 써내려갔는데, 이는 우리 사회운동에서 적극적으로 참조하기 어려웠다. 한 문장에 유럽의 오랜 ‘문사철’이 버무려져 있는 마르크스의 필체를 응용할 만한 지적 자산이 우리에게는 충분하지 않았고, 또 현실의 여러 운동에서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다. 

이를테면 <자본론> 서문에서 마르크스가 19세기의 노동계급 성장에 관하여 각국의 지배계급이 이미 그 뚜렷한 계급 갈등의 징후를 파악하고 대응하고 있음을 묘사하면서 “이것은 바로 시대의 징후이며 자포나 흑의로 가릴 수는 없는 것이다”라고 썼는데, 여기서 자포(紫袍)는 절대왕정기를 호령한 군주들의 의복이며, 흑의(黑衣)는 중세 이후 유럽의 일상사를 관여하고 지배했던 가톨릭 사제들의 옷이다. 그러니 이 책의 서문을 마르크스가 다음과 같이 끝맺었을 때도 그것을 우리의 현실에서 응용하기란 쉽지 않았다. 

“과학적 비판에 근거한 것이라면 어떤 의견도 나는 환영한다. 그러나 내가 한 번도 양보한 적이 없는 이른바 여론이라는 것이 갖는 편견에 대해서는 저 위대한 피렌체인의 좌우명이 내 대답을 대신해줄 수 있을 것이다. 너의 길을 걸어라, 그리고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그대로 내버려두어라!”

여기서 마르크스가 말한 ‘저 위대한 피렌체인’은 두 말할 것도 없이 알리기에리 단테이며 그의 <신곡> 중 ‘연옥’편 제5절의 문장을 조금 바꾼 표현이다. 마르크스의 많은 글들은 이렇게 유럽의 오랜 지적 유산을 자유분방하게 활용하고 있다. 마르크스는 본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다가 베를린대학으로 가서 문학과 철학에 심취하였고, 23살 되던 1841년에 예나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논문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 자연철학의 차이’를 썼다.

마르크스의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 표지 사진.

마르크스의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 표지 사진.

훗날의 정치경제학 사상가 마르크스를 염두에 두고 청년기의 학문적 이력, 특히 박사학위 논문 주제에 대해 어떤 이는 일단 학위를 받기 위해 쓴 것이 아니냐는 농담도 하는데, 유럽의 지적 전통 및 대학의 연구문화를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결코 변신이나 전환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지적 성장 과정이다. 예컨대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의 <부분과 전체>를 생각해 보자. 읽어도 들어도 도통 무슨 소린지 모를 ‘불확정성의 원리’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하이젠베르크의 지적 자서전이다. 이 책에는 젊은 날의 학우들은 물론 아인슈타인이나 보어 같은 석학들이 곳곳에 출몰하여 물리학·생물학·화학은 물론 미학·철학·문학 등이 망라된 지적 담론을 나눈다. 특히 1차 대전의 혼란이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10대 후반의 하이젠베르크가 친구들과 도보여행을 하는 1장이 인상적이다. 장차 물리학자의 길을 걷게 될 소년이 친구들과 자연만물의 원리와 우주의 비밀을 얘기하면서 칸트와 플라톤까지 두루 담화한다. 특별히 천재적인 사람의 자서전이긴 하지만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의 교육이 원래 그렇다는 점이다. 우리처럼 16살 때 ‘문과/이과’로 나누어져서, 10대 중반에 이미 인류 지식의 절반을 포기하는 것과는 다르다.

16살 때 ‘문과/이과’로 나뉘는 우리 현실 

그런 면모가 유감없이 펼쳐지는 책이 마르크스의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이다. 기본적으로 이 책은 경제적 측면에서 근대사회를 해명한 <자본론>과 나란히 하여 마르크스 정치사상이 집약된 책으로 접근해야 한다. 일본의 사상가 가라타니 고진은 <역사와 반복>에서 “<자본론>이 경제를 표상의 문제로서 파악하고자 한다면, <브뤼메르 18일>은 정치를 그와 같이 파악하고 있다. <자본론>이 근대경제학 ‘비판’이라면, 마찬가지로 <브뤼메르 18일>은 근대정치학 ‘비판’이다”라고 썼다. 따라서 보다 깊은 학문의 연마로 보나 불규칙하고 역동적인 현실 분석으로 보나 이 책은 언제든지 펼쳐서 읽을 만한 정치학과 정치운동의 나침반이다.

국내 번역서에 ‘제2판에 부치는 마르크스의 서문’으로 되어 있는 글에서 마르크스는 “겉보기에는 매우 급진적으로 행동하던 서적판매상은 이처럼 ‘시대에 역행하는 주장’을 담은 글 내용에 도덕적으로 엄청난 공포감에 휩싸였다”고 쓰면서 <브뤼메르 18일>의 충격파를 전한다. 그러면서 “황제의 망토가 루이 보나파르트의 어깨에 마침내 걸쳐지는 순간, 나폴레옹 동상은 방돔 광장 전승기념탑 꼭대기에서 떨어져 산산조각날 것”이라는 본문의 유명한 대목을 스스로 재인용한 후 “캔터베리 대주교는 제사장 사무엘과 아무런 공통점이 없다”는 그 자신의 학문적 태도를 분명하게 밝힌다. 그리고는 본문으로 여지없이 돌진하여, 헤겔의 문장을 뒤집은 그 유명한 표현 즉 ‘역사는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희극으로’를 천명하면서 1848년 혁명 전후를 분석한다.

그러면서 다시 한 번 인구에 회자될 만한 고대 희랍의 에피소드를 인용한다. 마르크스의 이 유명한 인용은 파시즘 하의 벤야민이 브레히트의 망명 거처에서 보았다는 문장, 즉 ‘진리는 구체적이다’라는 정신으로도 이어진다. 마르크스는 모든 정치사상과 현실 분석의 윤리학적 태도가 집약된 이 에피소드를 사유하는 것만으로도 <브뤼메르 18일>의 가치는 확고하다. 오늘날의 모든 사회운동들, 노동운동이나 교육운동이나 문화운동이나 여성운동 등 모든 실천이 자칫 교조의 늪에 빠지지 않기 위하여 반드시 준칙해야 할 마르크스의 인용문은 다음과 같다.

“이곳이 로도스다. 
여기서 뛰어라 / 여기 장미꽃이 있다,
여기서 춤을 춰라.”
 
<성공회대 문화대학원 교수>



원문보기: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709041743511&code=116#csidx8f808c2786b9d7f942cc5893bbc6ac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