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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11편중 9편 "선행학습 효과 거의 없다"

인서비1 2017. 3. 31. 08:42

논문 11편중 9편 "선행학습 효과 거의 없다"

곽수근 기자 입력 2017.03.31. 03:10 수정 2017.03.31. 07:35        

[사교육을 다시 생각한다] [8] 선행학습 분석 논문 살펴보니
국어·영어 과외 받은 고3 수험생, 안받은 학생과 수능점수 差 없어
"공부시간 늘리는 효과 있지만 성적엔 유의미한 영향 못미쳐"
"상위권 학생들엔 효과" 논문도

중 1 딸과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을 둔 주부 김모(42)씨는 평일은 물론 주말까지 자녀들을 수학·과학·영어 학원 등에 보낸다. 김씨는 이것이 "합리적 투자"라고 했다. 아들과 딸이 더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 번듯한 직장을 잡을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생활비가 빠듯해도 학원비를 댄다"는 것이다. 사교육에 가계 지출의 최우선을 두는 부모 가운데는 김씨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사교육을 하면 성적이 오른다'고 확신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연구 결과를 보면 '사교육=성적 향상' 등식이 늘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선행학습 위주의 교과 사교육이 효과가 있는지 여부는 학계에서도 주요 관심사다. 한국교육개발원은 2000년대 초반부터 최근까지 선행학습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가장 최근 보고서(학교 외부의 선행학습 유발 요인 해소 방안 연구·2015)에서 분석한 선행학습 효과 관련 논문 11편 가운데 9편은 선행학습 효과가 없거나 미미하다고 결론 내렸고, 2편만 성적 향상 효과가 있다고 했다.

고 3 수험생들의 수능 성적과 과외 시간의 관계를 연구한 김진영 건국대 교수의 논문은 "과외가 총 공부 시간을 늘리는 역할은 하지만 수능 점수에 유의미한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고 분석했다. 고 3 수험생 2000명의 과외 시간과 수능 성적 등을 분석한 이 논문에선 과외를 받는 학생과 받지 않는 학생 간에 수능 국어와 영어 성적 차이가 통계적으로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진영 교수는 "부모들이 과외의 효과를 의심하면서도 시킬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나마 자녀들의 학습 시간이라도 늘리자는 취지"라며 "설사 과외가 효과적인 것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단기 효과에 불과할 것"이라고 했다.

2015년 한국교원대 학술지에 실린 '중학교 수학 학업 성취도 성장에 대한 사교육의 효과' 논문은 사교육 효과가 학생들의 성적 수준에 따라 다르다는 결론을 내렸다. 연구자는 113개 중학교 5017명을 성적 상위 20%, 중위 40%, 하위 40%로 구분해 분석했다. 이 학생들의 3년간 성적을 분석한 결과, 중위 집단 학생의 경우엔 사교육이 중요 변수가 아니었다. 사교육 시간을 주당 1시간 늘렸을 때의 수학 성취도 향상(1.4점)보다 자습 시간을 늘렸을 땐 향상 폭(2점)이 더 큰 것으로 나온 것이다. 상위권과 하위권 학생에겐 사교육이 성취도 향상에 효과 있지만, 하위권의 경우 "학원을 오가는 시간과 피로 등을 고려하면 실제적인 영향력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상위권을 제외하면 사교육 효과가 크지 않다는 것이다. 논문 저자(차동춘 박사)는 "학생 수준에 따라 그 효과가 다른데 사교육을 받으면 누구나 성적이 오르는 것으로 믿는 것은 사교육의 효과가 과장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반면 박종근 경상대 교수 등이 쓴, 중학생을 대상으로 과학 선행학습 영향을 분석한 '선행학습과 성취도와의 상관성' 논문에선 선행학습을 한 학생들이 그렇지 않은 학생들보다 성취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사교육 효과를 다룬 논문을 보면 학생 수준이나 과목, 조사 방법에 따라 그 효과에 차이가 있다. 사교육 효과 관련 논문을 쓴 한 연구자는 "성적이 뛰어난 일부 학생의 사교육 효과가 모든 학생에게 적용되는 것처럼 과장된 것도 사교육 과열의 한 원인"이라고 했다.

서울과 경기의 고교생 430명을 설문 조사해 수학 선행학습 효과를 분석한 논문(인문계 고등학생의 선행학습 효과 분석 연구)은 "선행학습 진도가 얼마나 빠른지 여부를 비롯해 사교육 시간과 비용 등이 수학 성취도에 미치는 영향력이 없거나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고교 수학 교사에 대한 설문 조사를 병행한 이 연구는 사교육을 '다른 사람이 축구공을 몰고 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마치 자신이 공을 차고 가는 것처럼 착각하는 것'에 비유했다. 또 사교육이 내비게이션 학습, 구경 학습으로 불리는 것에 대해 "내비게이션에 의존하는 운전자가 혼자 힘으로 길을 못 찾는 것처럼 사교육이 학생의 학습 능력을 빼앗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