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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의식 잃고 적개심 남은 한국의 노동운동

인서비1 2017. 3. 16. 06:37

연대의식 잃고 적개심 남은 한국의 노동운동

이종태 기자 입력 2017.03.16 00:15 댓글 4

노동계 바깥에서 '노동시장 개혁'을 주장하는 목소리들이 분출하고 있다. 노동시장이 어떻게 작동하느냐에 따라 국가경제나 산업 발전에도 절대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에서도 이슈가 될 것으로 보인다.

“87년 7·8·9 투쟁을 동지여 기억하는가. 거제에서 구로까지 족쇄 깨고 외쳤던 날을. 우리는 뼈저린 각성에 드디어 깨달았노라. 1000만 형제 단결 없이 노동해방 없다는 것을~(‘총파업가’ 김호철 작사·작곡).”

1987년 7·8·9월 울산의 대형 사업장들을 중심으로 대한민국 전역을 뒤흔든 ‘노동자 대투쟁’을 기린 노래다. 자기 목소리를 박탈당해온 노동자 계급이 드디어 각성하는 순간이었다. 그 각성은, 1000만 노동자가 단결해야 한국 사회와 경제의 당당한 주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눈앞의 ‘적’은 해당 사업장의 자본이었다. 싸움은, 사용자 측을 위해 끊임없이 공권력을 동원하는 국가권력으로 확대될 수밖에 없었다. 국가와 맞서기 위해서라도 1000만 노동자의 단결이 필요했다. 당시에는 협소한 사업장 내에서 벌이는 임금 인상 투쟁이라 할지라도, 그 싸움이 ‘전체 노동자의 해방’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윤리적 확신과 자부심’이 팽배했다. 그 덕분에 노동운동은 ‘자본의 깡패’들이 식칼로 옆구리를 찌르고(노조 파괴 전문 폭력배들이 1989년 현대중공업 파업 노동자들을 식칼로 테러한 사건), 감옥에 처넣고, 조직 내부에 프락치를 투입해도 결코 굴복하지 않았다.

ⓒ연합뉴스 1월11일 근무를 마친 울산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이 오토바이와 자전거를 타고 회사 정문을 나와 퇴근하고 있다.

30여 년이 흘렀다. 당시 투쟁을 이끌었던 대기업 노동조합의 이름은 여전히 쟁쟁하다. 그런데 헌신적 노동운동가들의 염원이던 ‘1000만 노동형제의 단결’이라는 노동계급 연대는 어떻게 되었을까? 지난 1월24일 한국노동연구원 배규식 선임연구원이 사회경제정책 포럼에서 발표한 자료인 <경제사회 환경의 변화와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혁>을 살펴보면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1대99’의 문제만은 아니다

노동자 대투쟁 이후 한국은 임금 부문에서도 중진국에서 선진국 대열로 그럭저럭 진입했다. OECD 자료에 따르면, 2014년 현재 한국 노동자들은 1인당 연평균 3만6653달러(실질 구매력 기준)를 받는다. 임금 수준이 글로벌 최고인 미국(5만7139달러)과 스위스(5만7082달러)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일본(3만5672달러), 이탈리아(3만4744달러), 스페인(3만6013달러)보다 오히려 많다. 전체 노동자가 임금으로 받는 액수 자체로는 OECD 내에서 그리 열악하지 않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해 배규식 선임연구원은 “적어도 대기업과 공공부문의 평균임금 수준은 OECD 국가들과 비교해도 낮은 수준이 아님을 알 수 있다”라고 주장한다. OECD 내에서 한국의 소득 격차가 꽤 큰 편임을 감안하면, 고임금 부문(대기업과 공공부문)의 보수가, 다른 국가의 비슷한 계층과 비슷하거나 더 높으리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실제로 배규식 선임연구원이 제시한 OECD 자료(2014년, 오른쪽 <표 1> 참조)에 따르면, 한국의 최상위 10%는 하위 10%보다 4.79배의 소득을 벌어들인다. 가장 불평등한 미국의 5.01배 다음이다. 일본(2.94배)이나 스페인(3.08배)은 물론 영국(3.56배)보다 오히려 높다. OECD 기준 ‘저임금 노동자(중위 임금의 3분의 2 이하)’의 비율 역시 미국(24.9%)과 선두를 다투는 23.7%다. 소득 원천 가운데 근로소득의 비중이 가장 높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 같은 격차의 원인이 드러난다. 2015년 현재 대기업 정규직의 임금이 100이라면, 대기업 비정규직과 중소기업 정규직의 월급은 60 정도다. 중소기업 비정규직은 40에도 미치지 못한다. 고임금 부문과 저임금 부문이 확연히 갈린 것이다(오른쪽 <표 2> 참조). 학계에서는 전자를 1차 노동시장(이하 1차), 후자를 2차 노동시장(이하 2차)이라 부른다. 1차의 노동자들은 대체로 기업복지와 고용안정성 등에서도 2차보다 훨씬 좋은 처우를 받는다. 사회보험에서도 마찬가지다. 더욱이 2차의 노동자가 1차로 이동하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만큼 어렵다. 이른바 ‘노동시장 이중화’다.

만약 1차의 노동자가 2차보다 훨씬 많다면, ‘이중화’ 문제를 비교적 쉽게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배규식 선임연구원이 정리한 바에 따르면, 1차의 인력은 전체 피고용인(1930만명)의 25%밖에 안 된다. 대기업 정규직 290만명, 공공부문 정규직 190만명 등이다. 나머지 75%가 몸담은 2차는 중소기업 정규직(840만명), 대기업 비정규직(183만명), 중소기업의 비정규직(395만명) 등으로 구성된다. 청년들은 1차로 편입되기 위해 생사를 건 투쟁을 벌인다. 어느 쪽에 취업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천국과 지옥으로 갈린다. 한국은 중산층(최상위 10%)의 상대 소득이 매우 높은 나라다.

한국노동연구원 황덕순 박사의 발표(<한국의 노동시장 양극화와 정책 과제>)에 따르면, 한국의 소득 기준 최상위 10%가 전체 국민소득 가운데 차지하는 몫(소득비율)이 무려 45.6%에 이른다(2009년 기준). 나머지 54.4%를 하위 90%가 분배받는다고 보면 된다. 통계 비교(<세계 상위 데이터베이스>)가 가능한 OECD 17개국(미국·일본·영국·프랑스 등) 가운데 미국과 공동 1위다. 같은 시기, 한국 최상위 1%의 소득비율은 12.2%였다. 이 부문에서는 미국, 영국, 캐나다에 이은 4위다.

한국의 최상위 1%와 10%의 소득비율은 지난 20여 년 동안 어떤 추이를 보여왔을까? 국가별·국가 간 소득과 부의 역사적 진화 과정을 추적하는 사이트 ‘세계 부와 소득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한국의 최상위 1% 소득비율은 1995년의 6.9%에서 2012년 12.2%로 증가했다. 최상위 10%가 전체 국민소득에서 차지하는 몫은 1995년 29.25%에서 2012년 44.9%로 늘었다(왼쪽 <표 3> 참조). 미국 ‘월스트리트 점령’ 운동 이후 ‘1대99’라는 슬로건이 유행한 적이 있다. 소득양극화의 수혜자에 최상위 10%도 포함된다고 봐야 할 것이다. 홍민기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의 계산에 따르면, 2013년 기준 최상위 1%의 소득경계값은 1억2456만원, 10%의 소득경계값은 6352만원이다(<산업노동연구> 제21권 1호).

이 같은 소득 격차의 원인은 매우 다양하다. ‘자본의 착취 본성’이 근본 원인이지만, 왜곡된 노동시장 탓도 있다. 예컨대 정규직과 비슷한 능력의 노동자를 외부에서 훨씬 싼 비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면, 기업 처지에서는 굳이 정규직을 고용할 인센티브가 없다. 같은 노동에 같은 가격(임금)이 책정되지 않아서 발생하는 시장 왜곡이다. 원청 대기업이 높은 노동비용을 하청 중소기업에 전가해 납품가를 낮출 수도 있다. 상당수 노동시장 전문가들은 대기업 고임금과 중소기업 저임금 사이의 인과관계를 어느 정도 인정한다. 노동조합 측은 근속 연수에 따라 연공급이 올라가는 속도(오래 근무한 노동자가 고임금을 받는 원인 중 하나)를 늦추거나 ‘기능적 유연성(다기능화)’을 높여, 사용자 측이 간접고용에 매력을 덜 느끼게 타협할 수도 있었을 터이다.

대기업 노동조합 처지에서는 사용자 측의 수익성이나 생산성을 고려하는 것 자체가 ‘자본과의 굴종적 타협’으로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니 노동계 바깥에서 ‘노동시장 개혁’을 주장하는 목소리들이 분출하고 있다. 진보 세력 측에서는 소득 순위에서 최상층 10~20% 내에 속하는 대기업 정규직 역시 자신들을 수탈당하는 약자인 ‘노동자’ 신분으로 보기에, 노동개혁으로 소득이 줄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공리공담이 판을 친다. 불안정 노동자나 복지 문제 해결의 재원을 주로 최고 부유층의 소득 및 대기업 사내유보금 등에서 찾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최상위 1%를 대상으로 세율을 아무리 높여봤자 연간 15조~20조원 정도가 더 걷힐 뿐이라고 판단한다. 700조~800조원에 달한다는 사내유보금 역시 기업의 금고에 쌓인 현금이 아니다. 상당 부분은 이미 투자되어 있다.

저임금을 경쟁력으로 삼는 기업 퇴출시켜야

노동시장이 단지 자본-노동 간의 분배만 일어나는 공간은 아니다. 노동자 간 분배도 이루어진다. 노동시장이 어떻게 작동하느냐에 따라 국가경제나 산업 발전에도 절대적 영향을 미친다. 참조할 만한 노동시장 개혁 사례가 있다. 1940년대 초 스웨덴에서 시행된 연대임금제다. 연대임금제는 같은 일을 하는 노동자에게 동일한 임금을 주는 제도다. 특정 산업의 모든 기업이 소속 노동자들에게 같은 수준의 임금을 준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높은 기술 기반의 기업은 연대임금 이전보다 더 많은 수익을 얻게 된다. 저임금을 경쟁력으로 삼는 기업은 퇴출된다. 스웨덴은 퇴출 기업의 노동자들에게 소득보장 정책과 함께 교육·훈련 기회를 주었다. 퇴출 기업 노동자들은 숙련화 훈련을 받은 뒤 다른 기업에 취업했다. 연대임금은 노동시장 정책이었지만 동시에 한계 기업 퇴출을 통한 산업고도화 정책이기도 했던 것이다. 스웨덴은 이후 30여 년 동안 선진국 최고 수준의 경제성장률과 복지, 고용률 등을 달성할 수 있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1987년 파업 중인 울산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이 중장비를 동원하여 사용자 측과 맞서고 있다.

이렇게 연대임금제가 성공 가능했던 가장 큰 공로자는 스웨덴 노총(LO)이다. LO는 상대방인 경총과의 교섭에서 무조건적 연대임금 인상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 수준은 국제경쟁력과 일자리 안정성, 경제성장을 함께 고려하는 선에서 결정되었다. 개별 기업 노동자들은 LO가 정한 연대임금 이상의 보수를 사측에 요구할 수 없었다. 특히 대기업 노동자들은 연대임금 때문에 소득이 정체되거나 오히려 줄어들었지만 인내했다. 노동자 계급의 연대가 평등과 함께 경제성장까지 이끌어낸 모범 사례다. 반(反)자본 구호가 넘쳐나는 한국의 노동운동이 과연 자본과 적극적으로 타협한 스웨덴 노동운동보다 ‘계급’의 이익에 더욱 충실하다고 할 수 있을까?

1990년대 이후 한국의 주류 노동운동은 자기 사업장의 임금 인상 외에 공공성과 노동연대를 이루는 쪽으로 한 발짝도 내딛지 못했다. 심지어 정규직 노동자들이 불안정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무관심을 넘어 ‘착취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다. 1980년대와 비교할 때 한국의 노동운동이 잃은 것은 노동연대에 대한 문제의식이고, 간직한 것은 자본에 대한 적개심이다. 이 적개심은 임금 인상 투쟁에 더없이 효율적인 이데올로기 무기였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 ‘노동시장 이중화’가 가장 주요한 의제로 떠오르리라 보인다. 구체적 정책 수단이 제기되고 양보가 요구될 때 대기업 노동조합들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우리’는 1987년 7·8·9 투쟁의 정신을 기억해야 한다.

이종태 기자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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