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유행한 ‘평생도’에 묘사된 영광의 순간. 선비입네 체면 차리고 겸손한 척 했지만, 종을 부리고 축첩하며 땅을 사들이면서 사는 대지주로서의 부귀영화를 결코 포기한 적이 없다. 글항아리 제공
‘헬조선’이란 유행어가 겨냥하는 지점은 지금 현재의 대한민국 사회이기도 하지만, 조선시대이기도 하다.
지금 사회가 나쁘다는 얘기를 다른 그 어떤 나라도 아니고 조선에 비유했다는 건 조선이 엉망진창이라는 걸 대중들도 은연 중에 다 알고 있다는 증표다.
그러나 이걸 공개적으로 말하긴 어렵다. 조선이 엉망진창이었다고 말하는 순간 ‘비수를 품은 되물음’이 바로 날아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선이 일제한테 망하는 게 당연했다는 뜻이냐?” 이 질문(“당신 식민사학자냐”)에 잘못 휘말리면 대역죄인이 되는 건 순식간이다.
따지고 보면 지난 반세기 조선시대 연구는 식민사학 척결의 깃발 아래 ‘애민 정신’에 투철한 왕과, ‘학문이 깊고 청렴 결백한’ 선비와, ‘도도한 저력을 지닌’ 백성을 찾아 떠난 머나먼 여정이었다. 각각 아름다운 배역을 받아 들었으니 우리 모두가 야릇한 행복감에 젖어들 수 있는 유쾌한 게임이긴 하지만, 그렇게나 모두가 훌륭하고 아름다웠다면 대체 왜 그렇게 망했을까라는 의문은 지워지지 않는다.
이 때문에 학계에서 조선에 대한 본격 비판이 간헐적으로 나오고 있다. 계승범(서강대)은 ‘우리가 아는 선비는 없다’(역사의아침)에서 주민들을 극도의 가난에 몰아넣고 유일사상체계를 강요했다는 점에서 조선왕조를 오늘날 북한사회에 비유했다. 변원림(재독학자)은 ‘순원왕후 독재와 19세기 조선사회의 동요’(일지사)에서 조선후기 자본주의 맹아가 발생하면서 봉건질서가 해체됐다는 주장에 대해 “봉건제가 해체되면서 맹아가 나온 게 아니라 1,000년 전 골품제가 있던 신라시대 봉건제로 후퇴해버렸다”고 주장했다. 이승환(고려대)은 ‘횡설과 수설’(휴머니스트)에서 조선성리학의 절정이라 우리가 배웠던 ‘이기론 논쟁’이 실은 조선의 후진적 출판 인프라 때문에 제 때 책을 구하지 못해 일어난 해프닝이라 결론지었다.
‘두 얼굴의 조선사’는 이런 조선시대 비판을 대중적 눈높이에서, 강도 높게 주장하는 책이다. 저자도 ‘비수를 품은 되물음’을 분명히 의식하고 있다. 서문에다 “부정적 시각에서 조선시대를 폄하하는 뉴라이트 역사학을 옹호하려는 의도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고 밝혀뒀으니 말이다. 정면돌파란, 이 한마디를 방패 삼아 거침없이 내달린다는 의미다.
저자가 그리는 조선지배층은 이렇다. ‘엄격한 신분차별로 날 때부터 특권을 향유하면서 많은 땅과 노비라는 재산을 지닌 채 현실 권력투쟁에 몰두하면서 이를 교묘한 도덕정치의 말들로 위장하는 무리들.’ “기개와 청렴의 화신인 선비가 아닌, 민생을 돌보는 꼬장꼬장한 경세가도 아닌, 군주를 보필하며 왕도를 드높이는 사림관료도 아닌, 자신의 이익과 욕망에 충실한 지배자”로서 말이다. 350여쪽에 걸쳐 조선시대 신분제, 관료제, 법제도, 경제제도 등을 차례차례로 설명해나가면서 저자는 “유교도덕정치 아래 숨겨진 욕망의 계급정치”를 드러낸다.
예를 들어 성리학자들이 상거래 발달을 그렇게 막았던 건 상업이 지닌 교활함과 도덕적 타락 때문만은 아니었다. 성리학의 발상지 송나라는 상업의 나라였고 상업에 비교적 관대했다. 그럼에도 조선이 상업을 극력 막은 것은 장사해서 돈 번 사람이 신분 상승을 할 경우 양반들의 정치적 입지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해서 상업을 억제하고 농업을 장려한다는 건, 백성들을 땅에다 묶어놓고 부려먹으면서 자신들의 특권적 지위를 세습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선비들은 자기가 가난하다거나 세속에 뜻이 없어 자연에 묻혀 산다는 둥 하는 얘기들을 했는데, 이는 “가진 자의 정신적 허세일 경우”가 많았다. “퇴계 이황의 장남은 360여명의 노비를 거느렸고, 문신이자 시인인 윤선도 집안에는 700여명의 노비가 있었다. 15세기에서 17세기 고위 관료를 지낸 양반의 경우 대체로 500~600명의 노비를 보유했다.” 땅과 노비로 상징되는 경제력을 지닌, 대지주였다는 말이다.
이 때문에 제임스 팔레 같은 연구자는 “1850년 무렵 미국 남부에는 34만7,000여명의 노예 소유주가 있었는데 100명 이상 노예를 소유한 사람은 1,800명을 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그보다 더한 조선사회를 노예제사회로 규정하는 게 맞다고 했다. 상공업 발달로 조선후기를 근세라 불러야 한다고 흥얼대던 일반적 상식에 철퇴를 가하는 셈이다.
백성들의 부담을 가볍게 해주기 위해 실시됐다는 공납제 개혁 ‘대동법’에 대해서도 저자는 이렇게 평한다. “세금을 많이 내야 하는 양반층의 집요한 반대로 대동법이 전국에 실시되기까지는 100년이란 시간이 걸렸다.(중략)대동법을 은근히 치켜세우기도 하는데 오히려 대동법 실시과정은 지배층의 기득권 지키기가 얼마나 견고한 지를 말해주는 사례다.”
저자의 서술은 거칠고, 직선적이며, 선동적인 면모까지 있다. 전체적으로 앞뒤 서술 톤이 안 맞아 보이는 부분도 있고, 현대의 민족국가 개념을 가지고 중화세계 일원으로서 누린 혜택이나 노비와 노예의 성격 차이를 지적하는 반론 등을 무시하는 등 지나치게 한쪽으로 쏠렸다는 느낌도 있다. ‘조선사’라는 통사 이름을 가져다 붙이기엔 어떤 일관적 흐름이 있다기보다, 심층 취재 고발 르포물에 가깝기도 하다. 다 읽고 나면 책 제목과 부제가 각각 ‘두 얼굴의 조선사’, ‘군자의 얼굴을 한 야만의 오백년’이라기보다는 ‘분노하라’, ‘헬조선의 기원과 전개’처럼 보일 정도다. 저자 역시 본문 여기저기서 과감한 도약을 통해 이 책을 쓴 이유가 바로 헬조선에 대한 비판임을 굳이 숨기지 않는다.
그럼에도 굳이 말리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톡 쏘아붙여주는 속 시원한 느낌이 드는 건 왜 일까. 아마도 지금 대한민국이 봉건시대로 회귀하고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아서다. 그러고 보면 ‘자학사관’은 과거를 영광스럽게 꾸민다고 해결될 일이라기보다는, 지금 현재를 잘 꾸려나가면 자연스레 사라질 문제다.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역사에 관해서라면 지겹도록 들어온 경구가 아직도 여전히 새롭게 되살아나는 이유다.
조태성기자 amorfati@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