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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개혁? 엄마 아빠 주름살 깊어지면 언니 오빠 웃을까요

인서비1 2015. 9. 13. 13:12

노동개혁? 엄마 아빠 주름살 깊어지면 언니 오빠 웃을까요

등록 :2015-08-14 20:14수정 :2015-08-15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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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세대의 임금을 줄여 청년들의 일자리를 주자는 취지의 임금피크제는 박근혜 대통령이 말하는 ‘노동개혁’의 뼈대다. 지난 2월23일 졸업식이 열린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연세대학교 교정에 청년실업의 현실을 풍자하는 펼침막이 걸려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부모 세대의 임금을 줄여 청년들의 일자리를 주자는 취지의 임금피크제는 박근혜 대통령이 말하는 ‘노동개혁’의 뼈대다. 지난 2월23일 졸업식이 열린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연세대학교 교정에 청년실업의 현실을 풍자하는 펼침막이 걸려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토요판] 김경락의 초딩 이코노미
(2) 노동개혁과 임금피크제

여름휴가를 다녀온 박근혜 대통령의 첫 일성은 “노동 개혁”이다. 발언 강도는 점점 더 세지고 있다. 지난 7일에는 “기득권의 반발로 (노동) 개혁을 뒤로 미루면 후손들이 100배의 고통을 겪게 된다”는 말까지 나왔다.

박 대통령이 말하는 노동 개혁은 곁가지를 빼면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한 임금피크제 도입이 뼈대다. 부모 세대의 임금을 줄여 청년에게 일자리를 주자는 것이다. 새누리당이 채택한 구호도 ‘임금피크제로 자녀에게 일자리를’이다.

그러나 노동계는 개혁이 아니라 개악이 될 수 있다고 맞선다. 부모 세대 임금만 줄고 청년 일자리는 늘지 않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팽배해 있다. 임금피크제와 청년의 취업난을 들여다본다.

백수 언니 오빠, 참 많습니다. 10명 중 1명꼴로 취직을 못 하고 있다죠. 안타까운 일입니다. 일자리를 얻지 못한 젊은 언니 오빠가 늘어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그만큼 청년 일자리 문제는 뿌리가 깊지요.

그러던 차에 정부가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해법을 하나 제시했습니다. 여름휴가를 보내고 온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그 해법을 강조하고 나섰습니다. 연말까지 문제를 풀겠다는 기세가 높습니다.

그런데 정부가 어렵게 찾아낸 해법을 전해들은 부모님들 얼굴엔 그림자가 드리웠습니다. 무슨 이유일까요? 먼저 언니 오빠들이 겪고 있는 취업난부터 살펴봅시다.

‘정년 60살’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정부는 매월 둘째 주 수요일 ‘일자리 동향’을 발표합니다. 여기에 우리가 궁금해하는 백수 언니 오빠 규모를 알 수 있는 정보가 담겨 있지요.

지난달 기준으로 15살 이상 29살 미만에 해당하는 청년들의 실업률은 9.4%입니다. 일자리를 얻기 위해 뛰어다니거나 이미 직장을 가진 청년 100명 중 9명 정도가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청년 실업률 9.4%가 어느 수준인지 쉽게 와닿지는 않을 거예요. 이럴 땐 다른 숫자와의 비교를 통해 그 수준을 가늠해볼 수 있습니다. 길이를 잴 때는 자를, 방향을 볼 때는 나침반을 쓰는 것과 비슷한 이치입니다.

먼저 전체 실업률에 견줘 보겠습니다. 청년층을 포함한 전체 실업률은 3.7%, 즉 100명 중 4명가량이 일자리를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청년 실업률보다는 크게 낮지요? 그만큼 일자리를 원하면서도 갖지 못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청년층에 쏠려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두번째는 과거와의 비교입니다. 이는 흐름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청년실업률은 수년째 슬금슬금 꾸준히 높아지고 있습니다. 2012년엔 7.5%였는데, 2013년엔 8.0%, 2014년 9.0%이지요. 올해 들어선 10%를 넘은 달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앞으로 청년 백수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는 예상을 할 수 있지요.

하지만 실업률은 취업난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합니다.

대기업이나 공기업 등 비교적 안정적이고 보수도 높은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이나 햄버거 가게에서 매우 낮은 임금을 받으며 한두 시간 일하는 사람을 모두 차등을 두지 않고 똑같이 취업자로 분류하기 때문이지요. 실업률은 일자리의 질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겁니다.

또 취업을 위해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언니 오빠들이나 여러 번 취업에 도전을 했다가 낙방한 탓에 이제는 아예 한동안 일자리를 찾는 걸 포기한 사람들도 실업률 계산에는 빠져 있습니다.

이처럼 통계에 빠져 있는 사실상의 실업자까지 포함한다면 실질 청년실업률은 9.4%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라고 판단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지금까지의 청년 취업난도 높은 수준이지만, 적어도 앞으로 2~3년 동안 이 정도가 더 심각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경기가 나빠지는 등 경제적 이유 때문이 아닙니다. 예고된 법적 변화 때문이지요.

내년부터는 정년이 60살로 모든 기업에 의무화됩니다. 현재 정년은 57~58살 정도인데, 갑자기 내년부터 2~3년 더 일할 수 있게 되는 거지요.

이는 우리나라 인구에서 차지하는 나이 든 사람 비중이 빠르게 늘어나는데다 평균 수명도 증가하고 있는 사회 변화를 고려한 조처입니다. 일할 수 있는 기간을 늘려줘서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하자는 거지요.

사실 퇴직을 하게 되면 생계가 불안해질 가능성이 큽니다. 매월 들어오던 수입이 없어지니까요. 물론 저축 등 미리 많은 돈을 모아놓은 어르신들이라면 예외가 되겠지요. 하지만 이런 경우는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퇴직 이후에 새 일자리를 찾는다고 해도 젊을 때 일한 직장만큼 좋은 대우를 받기도 힘들지요. 대부분 단순한 일에 낮은 임금을 주는 곳에서 일을 합니다.

이런 사람이 늘어날수록 정부 부담은 커집니다. 이들에게 지원해줘야 하는 비용이 커지기 때문이지요. 우리나라는 주요 선진국 가운데 가난한 노인 비율이 가장 높을 정도로 현재도 정부가 제구실을 못하는 형편입니다.

문제는 정년 연장이 청년들에게는 쥐약이 될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기업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보지요. 기업은 정년 연장 조처 때문에 사람을 종전보다 2~3년 더 써야 합니다. 그만큼 임금 부담이 커지는 거지요. 갑자기 경기가 좋아져서 돈을 더 벌게 된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들어오는 돈은 그대로인데 나갈 돈이 늘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허리띠를 졸라매야겠지요. 평소보다 임금을 덜 올려주거나 깎는 것도 한 방편이 될 수 있습니다.

이보다 더 손쉬운 방법은 사람을 덜 뽑는 겁니다. 임금을 덜 올려주려면 이미 뽑은 직원들과 협상을 해야 하는 수고로움이 필요하지만 사람을 덜 뽑는 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취업 희망자가 항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이처럼 정년 연장은 청년의 취업 기회를 줄이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습니다.

15~29살 청년 실업률 9.4%라니
백수 언니오빠들이 무지 많지요
나이 든 노동자들보고 양보하래요
월급 꼭대기를 정하는 임금피크제
정부가 내놓은 이 해법 어떤가요?

첫 일자리 얻는데 11개월 걸려요
근데 1년7개월만에 그만둔대요
비정규직은 600만명이 넘어요
중소기업 월급은 너무 적고요
이것이 청년실업의 뿌리랍니다

100을 벌면 노동자는 70도 못 가져가죠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제시한 해법은 ‘임금피크제’ 확대입니다. 생소한 낱말이지만, 그 뜻은 어렵지 않습니다. 일정한 나이가 지난 노동자의 월급을 줄이는 제도이지요.

정상에 오른 뒤엔 내리막이 나오는 산길처럼 임금에도 꼭대기를 두자는 겁니다. 지금은 나이가 들수록 월급이 많아지는 임금 제도를 갖고 있는 기업이 많습니다.

2003년에 국내에 처음 도입된 이후 현재 기업 10곳 중 한곳 정도에서 이 제도를 쓰고 있습니다. 정부는 이 제도를 기업 전반으로 확대해야 청년 취업난을 줄일 수 있다고 판단합니다.

임금피크제를 도입해 임금 부담을 줄여 그 재원으로 청년을 더 뽑을 수 있다는 거지요. 특히 정부는 정년 연장 혜택을 받는 50대 중후반 노동자 임금을 줄여야 한다고 봐요. 더 오래 일할 수 있는 혜택을 받는 만큼 더 많은 임금은 포기하라는 거지요.

이렇게 놓고 보면 정부 해법은 나이 든 노동자들의 양보 내지 희생을 전제로 하고 있는 셈입니다.

물론 정부는 나이 든 노동자에게만 양보를 요구하지는 않습니다. 일단 정부가 운영하는 기업부터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겠다고 하고 있지요. 정부부터 솔선수범을 한다는 취지입니다.

또 임금피크제를 도입해 청년을 더 뽑은 기업에는 세금을 깎아주기로 했습니다. 세금이 줄면 기업으로선 비용 부담을 덜 수 있고, 정부로선 고통을 분담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정부 뜻대로 임금피크제가 전면 도입될 경우 청년 일자리는 얼마나 늘어나게 될까요?

이 질문에 대해 정부는 답변은 하지 않습니다. 구체적인 숫자를 제시하기엔 예측이 쉽지 않거니와, 대략적이라도 숫자를 내놨다가 수년 뒤 실제 늘어난 일자리 규모와 차이가 클 때 불거질 부담을 의식해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정부 대신 기업 쪽에서 숫자를 내놓고 있습니다. 기업을 회원으로 두고 있는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모든 기업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게 되면 내년부터 2019년까지 18만개 이상의 청년 일자리가 생긴다고 합니다. 한해 평균 4만개의 청년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거지요.

다만 이러한 추정 결과는 그다지 신뢰는 얻지 못하는 것 같아요. 국회의원들의 입법 활동을 지원하는 국회 입법조사처라는 비교적 공신력이 있는 곳의 판단도 그렇습니다. 부풀려졌다는 거지요.

한 가지만 꼽자면 경영자총협회는 모든 노동자가 60살까지 정년을 누린다는 가정을 전제로 청년 일자리 증가 규모를 추산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는 거지요. 희망퇴직 등의 방식으로 정년을 채우지 못하고 일터를 떠나는 경우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훨씬 더 많습니다. 정부 통계상 실제 퇴직 평균 나이는 50대 초반에 머뭅니다.

사실 정부도 임금피크제가 청년 취업난을 푸는 만능열쇠라고 주장은 하지 않습니다. 좀더 정확한 속내는 정년 연장이라는 보릿고개를 넘는 수단으로 생각합니다. 청년 취업난의 단기 해법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런 점에서 청년 취업난의 뿌리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병의 근원을 알아야 해법도 찾을 수 있을 테니까요. 다시 한번 통계를 들여다봅시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첫 일자리를 얻기 위해 걸리는 기간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현재 평균적으로 11개월이 걸립니다. 그런데 어렵게 구한 일자리긴 하지만 1년7개월만 일한 뒤 첫 일자리를 그만둔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첫 일자리가 썩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겠지요. 임금이 낮거나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크다면 오래 일할 수가 없을 테지요.

문제는 이런 불안한 일자리가 너무 많다는 데 있습니다. 계약직이거나 짧은 시간만 일하는 비정규직 규모는 10여년 만에 두배 가까이 불어났습니다. 2001년엔 360만명 정도였는데, 지금은 600만명을 넘어섰지요.

이런 일자리가 많아진 이유는 기본적으로 기업들이 비용이 적게 들고 관리하기도 쉬운 형태의 일자리를 만들었고, 이런 경영이 가능하도록 정부가 제도를 만들거나 운영해왔기 때문입니다.

임금 차이도 크지요.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사람은 대기업 노동자에 견줘 절반이 조금 넘는 월급을 받고 일을 합니다. 이러니 중소기업엔 사람이 부족하고, 청년들은 좀더 나은 일자리를 찾아 헤맬 수밖에 없지요.

좀더 근본적인 문제로는 기업이 가져가는 몫이 불어난 반면, 노동자가 가져가는 몫은 줄어왔다는 점을 꼽을 수 있습니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나라 전체가 100을 벌어들였다면 75 정도는 노동자들이 가져갔는데, 현재는 100 중에 70도 노동자들이 가져가지 못합니다. 그만큼 기업 몫이 늘어난 거지요. 선진국들의 노동자 몫 평균이 80선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면, 그만큼 우리나라는 분배 장치에 고장이 나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대화와 타협의 역사를 만들어봅시다

노동문제는 다른 사안보다 각 이해관계자들 간의 대화와 타협이 필요합니다. 노동 제도의 변화는 노동자들의 생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고 동의 없는 제도 개편은 사회 불안마저 높일 수 있기 때문이지요.

청년 취업난을 풀기 위해 정부가 전면 도입을 추진하는 임금피크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제도가 정부나 기업 생각대로 설령 청년 취업난을 풀 수 있는 유용한 해법이라고 하더라도 다른 쪽, 즉 노동자들의 공감을 얻어내지 못한다면 그 효과도 떨어지고, 부작용만 낳을 수 있습니다.

사실 청년 일자리 문제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참고해볼 만한 다른 나라 사례가 있다는 뜻입니다. 이 문제를 어느 정도 잘 풀었다고 평가받는 나라들에선 노동자와 정부, 기업 간의 대화가 오랫동안 지속됐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서로 이해를 높이고 예상하지 못했던 부작용을 줄였습니다. 무엇보다 고통과 과실을 공정하게 나누려고 노력을 했지요.

아쉽게도 우리나라는 이러한 대화의 역사가 짧은데다, 타협의 기억은 없습니다. 대화를 하는 듯하다가 서로 믿을 수 없다며 대화가 중간에 끊기고 정부는 정부 뜻대로 정책을 밀어붙이는 일만 반복됐습니다.

이번에는 어떻게 될까요? 뿌리가 깊은 청년 취업난 문제를 노동계와 기업계, 정부가 지혜를 모아 공정한 해법을 찾는 아름다운 모습을 기대해봅니다.

김경락 경제부 기자
김경락 경제부 기자
김경락 경제부 기자 sp96@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