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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곰 '썰매'가 죽은 지 1년 뒤 '얼음이'는..

인서비1 2013. 7. 7. 12:24

북극곰 '썰매'가 죽은 지 1년 뒤 '얼음이'는..

한겨레 | 입력 2013.07.07 10:10 | 수정 2013.07.07 11:20 

 

   
[한겨레][토요판/생명] 얼음이는 썰매와 함께 지내던 '내실' 출입을 거부했다

▶ 동물도 사람처럼 사랑하는 존재와의 이별에 슬퍼할까요? 사실 동물이 가진 감정, 마음의 양태는 오랜 논쟁거리입니다. 어린이대공원에 사는 북극곰 '얼음이'가 함께 살던 '썰매'가 죽고 난 이후 달라졌습니다. 그의 행동은 우연 때문일까요 아니면 슬픔 때문일까요. 동물학자 제인 구달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이 개성과 마음, 감정을 지닌 유일한 동물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덜 오만해질 수 있다고 말이죠.

북극곰 '썰매'(수컷. 사망 당시 29살)가 세상을 떠난 지 일년이 지났다. '얼음이'(암컷·19살)는 아직 그를 떠나보내지 않았다.

썰매는 지난해 7월2일 오전 10시10분에 서울시 능동 서울어린이대공원 바다동물관의 컴컴한 내실에서 숨을 거뒀다. 썰매가 내실 안 차가운 바닥에 누워 지낸 한달간, 철문 밖에 있던 얼음이는 안절부절못하며 주변을 맴돌았다. 썰매가 죽기 전날, 얼음이는 전시관에서 내실로 이어지는 철문을 쾅쾅쾅 쳤다.(<한겨레> 2012년 7월7일치 10면) 그 소리를 들으며 썰매는 힘겹게 숨을 내쉬었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썰매가 숨을 거두자마자 내실에서 바로 부검이 이뤄졌다. 건국대 수의학과는 부검 결과 썰매의 사망 원인이 '심장근육 출혈에 의한 심기능 정지'라고 밝혔다. 어린이대공원은 "북극곰의 평균수명(약 25살)을 고려할 때 썰매는 천수를 누린 셈"이라고 밝혔다.

혼자 남겨진 얼음이는 이전과 다른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얼음이는 내실에 들어가기를 꺼렸다. 전시장에서 철문으로 연결된 내실은 얼음이와 썰매가 매일 저녁 밥을 먹고 잠을 자던 곳이다. 투병생활을 하던 썰매가 한달간 혼자 머물며 임종을 맞은 곳이기도 했다.

얼음이의 이런 행동으로 사육사는 지금까지 애를 먹고 있다. 북극곰이 내실로 들어가지 않으면 전시장을 청소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웅희 사육사는 "내실 안에 먹이를 놔둬도 잘 들어가지 않고 일주일 넘게 안 들어갈 때도 있다. 관람객들에게 전시장이 지저분하다거나, 물이 더럽다는 지적을 받을 때가 있는데 이런 속사정이 있었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런 상황 때문인지 전시장 앞 관람공간에도 안내문이 걸려 있었다. "북극곰이 방사장에서 노느라 내실에 들어가지 않고 있습니다. 동물 건강에는 이상이 없으나 방사장이 조금 지저분합니다.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잖아도 소심하던 얼음이는 더욱 소심해졌다. 물에 들어가는 것도 더 조심스러워했다. 고등어, 양미리 등의 생선을 물 안으로 던져주면, 얼음이는 가능한 한 물 밖에서 먹이를 꺼내 먹는다. 기자가 어린이대공원을 찾은 6월26일 오후 2시, 얼음이는 경사진 바위에서 몸을 웅크린 채 조심스레 물에서 먹이를 꺼냈다. 물 밖에서 꺼낼 수 있는 먹이를 다 먹은 다음에도 몇 번이나 망설이다가 물 안으로 들어갔다. 5월 말에는 한 시민이 먹이를 눈앞에 두고도 물에 들어가지 않는 북극곰이 이상하다며 어린이대공원 누리집에 글을 올렸다. "북극곰이 물을 싫어하는 것 같습니다. 사육사 분이 먹이를 물속으로 던졌더니, 물 밖에서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며 물속에 들어가지 않더군요. 배가 고픈지 침을 흘리며 물가를 왔다갔다 하는데, 보면서 매우 안쓰러웠습니다."

얼음이의 행동은 어찌 보면 예견된 것이었는지 모른다. 얼음이와 썰매는 서로에게 의존적인 관계였다. 수컷인 썰매는 적극적이고 물을 좋아했다. 암컷인 얼음이는 썰매를 따라 마지못해 물에 들어오곤 했다. 먹이를 물에 넣어줘도 썰매가 먼저 물에 들어가야 얼음이가 따라 들어왔다. 저녁에 내실에 들어갈 때도 썰매가 앞장섰다. 이 사육사는 "원래 조심스런 성격이긴 했지만, 썰매가 있을 때는 그래도 매일 저녁 내실에 들어갔다. 지금처럼 며칠간 안 들어가는 일은 없었다"고 말했다.

썰매는 항상 모든 행동을 먼저 하는 편이었지만 그를 항상 안아주고 핥아주는 쪽은 얼음이였다. 이씨는 "모성애 때문에 그런지 암컷이 수컷의 털을 자주 핥아줬다"고 말했다. 썰매는 곰팡이성 피부염을 앓기도 했다. 썰매가 아픈 곳을 맨 먼저 알아본 이도 얼음이였던 셈이다.


얼음이는 평생의 대부분을 썰매와 함께 보냈다. 어쩌면 한평생을 썰매와 살았을 수도 있다. 얼음이와 썰매는 1982년 문을 연 경남 마산 앞바다의 돝섬해상유원지에서 살았다. 1984년에 태어난 썰매와 1995년에 태어난 얼음이가 언제 어떻게 돝섬유원지로 왔는지는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바다에 울타리를 친 돝섬유원지에서 썰매와 얼음이는 따뜻한 남해 바닷물에 몸을 담갔다. 이들을 데려온 이재용 어린이대공원 동물관리소장은 동물 인수를 위해 돝섬유원지를 찾을 때마다 썰매와 얼음이를 눈여겨봤다고 말했다. 어린이대공원이 돝섬유원지의 동물들을 인수하면서, 얼음이는 7살 때 서울로 올라왔다. 얼음이는 그 이전부터 썰매와 함께 살아온 셈이다.

얼음이와 썰매는 매년 5~6월에 자주 교미를 했다. 사육사들은 내심 새끼를 기대했지만, 소식이 없었다. 이웅희 사육사는 동물원에서 번식이 가장 어려운 동물이 북극곰이라고 했다.

"북극곰, 침팬지는 성격이 예민해서 웬만해선 동물원에서 번식이 되지 않아요. 오히려 사자, 호랑이가 번식이 쉽죠."

얼음이는 이날 특정 두 지점을 반복해서 왔다가 갔다를 반복했다. 북극곰이 동물원에서 받는 스트레스 때문에 보이는 정형행동이다. 두 지점 사이엔 배설물이 있었지만, 얼음이는 한번도 배설물을 밟지 않았다. 사육사는 북극곰이 배설물을 밟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알려줬다. 한두 시간 왔다갔다를 반복하던 얼음이는 오후 3시께 고등어 등 먹이를 먹었고, 4시께부턴 사육장 한쪽에 엎드렸다.

관람객들도 비슷한 것을 본 모양이었다. 썰매가 세상을 떠난 뒤, 얼음이가 슬퍼 보인다는 글들이 어린이대공원 인터넷 누리집에 제법 올라왔다. 지난해 9월엔 한 관람객이 "왠지 북극곰의 눈빛이 슬퍼 보인다"고 글을 올렸고, 올해 4월엔 다른 관람객이 "북극곰이 스트레스가 극심한지 철문을 발로 할퀴더니, 나중엔 머리를 벽에 계속 박았다. 많은 관람객이 모두 조심스레 백곰의 행동을 지켜봤고, 30분 동안 계속됐다. 너무 불쌍했다"고 썼다.

동물학자 제인 구달은 20여년 동안 침팬지 연구에 전념하면서 동물에게 개성, 마음, 감정이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제인 구달은 <창을 통해서>라는 책에서 어미 침팬지 '플로'가 새끼를 잃고서 식음을 전폐하고 슬퍼하다가 죽어간 것을 기록했다. 동물에게 마음이 있다는 것이 굳이 증명의 대상이 되어야 할까. 동물이라고 이별에 슬퍼하지 않을까. 데니즈 허징 미국 플로리다애틀랜틱대 교수는 상어의 공격을 받아 새끼를 잃은 어미 돌고래가 날이 갈수록 수척해지고 무리에서 자주 벗어나는 것을 발견했고, 마크 베코프 콜로라도대 교수는 새끼를 사산한 코끼리가 머리와 귀를 늘어뜨린 채 시체를 며칠 동안 지켜보기만 하는 사실을 기록한 적도 있다. 그리고 얼음이는 이번주에도 내실에서 한번도 잠을 자지 않았다.

어린이대공원은 죽은 썰매의 가죽과 골격으로 박제를 제작중이라고 밝혔다. 박제 제작이 완료되면 북극곰 전시장 앞에 설치할 계획이다. 아직도 썰매를 보내지 못한 얼음이는 박제를 보고 어떤 감정을 느낄까.

윤형중 기자hj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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