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edu

"요즘 학교에는 '추억'이 없습니다. 다들 바쁘거든요"

인서비1 2013. 5. 18. 13:12

스승의 날 맞은 한 교사에게 들은 '요즘 학교'

 

[대전CBS 김정남 기자]

지난 15일은 스승의 날이었다. 다양하고 이색적인 행사로 가득 찬 학교들을 지켜보며, 그 주인공인 선생님들이 느끼는 '요즘 학교'가 궁금해졌다. 올해로 23번째 스승의 날을 맞은 지정배(49) 교사를 찾아 '요즘 학교'에 대해 들어봤다. [편집자 주]

"다 같이 모여 밥도 비벼먹고, 애들과 시시콜콜한 얘기까지 나누고..."

제자들과 나눈 추억을 말하는 지정배 교사의 얼굴에는 행복이 묻어났다. 안타까운 건 그 추억들이 모두 '과거형'이었다는 것.

더 이상 교사도, 학생들도 추억을 만들기에는 너무 '바빠졌다'는 것이 지 교사의 말이었다.

◈ 상담 과목까지 있어도…만날 수 없는 아이들

학교마다 상담교사가 배치되고 '상담 과목'까지 생긴 요즘이다.

지 교사 역시 고등학교에서 상담 수업을 맡고 있다.

아이들의 말을 듣기 위한 제도는 많아졌는데 어찌된 일인지 아이들을 만나기는 예전보다 더 힘들어졌다.

"학원에, 보충수업에 뒤로 밀리기 일쑤죠."

지 교사는 '시간'을 말했지만 결국은 '경쟁'의 문제였다.

"예전에는 아이들이 공부를 못 해도 자신의 꿈 하나는 당당하게 말했어요. 그런데 요즘은 말을 꺼내면 선생님이든 친구들이든 '네가?'라는 반응이 먼저 돌아오니까요."

꿈 하나를 당당하게 말하기 위해서라도 아이들은 늘 쫓기고, 눈치를 봐야 했다.

"요즘 아이들은 꿈이 없다고 하는데 그건 아니에요. 더 이상 말하지 않을 뿐이죠."

지 교사는 "애들과 대화를 나눠보려고 연수도 갔다 오고, 자격증도 따 봤는데 문제는 그게 아니더라"며 고개를 저었다.

◈ 평가받는 선생님, 멀어지는 아이들

지 교사는 언젠가 한 아이에게 들은 말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선생님 그러시면 나중에 평가에 안 좋잖아요."

세월이 흐르면서 교사가 할 일은 많이 달라졌다. '지식을 전해주는 역할' 측면으로만 본다면 교사보다 인터넷이 더 빨랐고, '학생과의 소통'은 평가 항목에 없는 것이었다.

"교원평가를 잘 받기 위해선 몇 시간씩 정해진 의무 연수에 매달려야 하고 잡무도 많아요. 그러다보니 정작 아이들이 찾아와도 '다음에 하자'는 말부터 튀어나와요."

뭔가 잘못된 것 같은 기분을 지울 수 없지만, 평가의 결과가 곧 아이들에게 '좋은 선생님'의 기준이 되니 소홀히 할 수도 없다.

서로 '바빠진' 선생님과 제자. 그 결과는 '고민이 생기면 선생님에게 털어놓는다'는 학생이 10명 중 1명도 채 안 되는 팍팍한 현실로 돌아왔다.

대화가 끊긴 학교에서는 연일 불미스러운 일들이 매스컴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 그래도 희망은 있다

지 교사는 이 같은 현상이 결국은 '학교 공동체'가 무너져가는 과정에서 나오는 것들이라고 말했다. 그것도 '외부'에 의해.

"학교도 하나의 공동체인데, 내부 문제를 자꾸 외부에서 진단하고 개입하면서 정작 주인공인 교사와 학생은 무능하게 취급이 됐죠. 경쟁 역시 정치나 경제 논리인데 학교에 지나치게 강요됐고요."

스승의 날을 맞아 지 교사가 바라는 것은 뭘까.

"공동체의 회복이 필요합니다. 내가 아이들에게 한발 더 다가가고... 함께 손을 잡고 갔으면 좋겠어요."

예전엔 당연한 것이었는데 요즘은 하기 힘든 것.

요즘 선생님들에게 어쩌면 가장 '간절한'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jnkim@c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