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society

<위기의 자본주의>① 곪아 터진 모순

인서비1 2011. 10. 9. 13:05

<위기의 자본주의>① 곪아 터진 모순

DC를 점령하라
(워싱턴=연합뉴스) 이승관 특파원 = 뉴욕 월가에서 벌어진 `월가를 점령하라'는 대규모 시위를 본뜬 `DC를 점령하라(Occupy DC)' 시위가 6일(현지시간) 미국의 수도 워싱턴DC 한복판의 백악관 인근 프리덤 광장에서 오전부터 1천여명의 군중이 참가한 가운데 별다른 충돌이나 사고없이 비교적 평화롭게 진행됐다. 위 사진은 'DC를 점령하라(Occupy DC)' 푯말뒤로 관중들이 시위를 벌이는 장면. 2011.10.7 humane@yna.co.kr

부의 불평등 분배 구조는 자본주의의 근본적 한계
미국 등 주요국 소득 불균형 심화에 국민 불만 고조

(워싱턴=연합뉴스) 이승관 특파원 = "자본주의는 악이다(Capitalism is Evil)."
최근 한 달 가까이 이어지는 미국 뉴욕의 대규모 시위에 등장한 피켓 문구 가운데 하나다. 전세계 `자본주의의 수도(capital of capitalism)'로 불리는 월가의 한복판에서 자본주의를 저주하는 아이러니가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소유욕, 탐욕을 추진력으로 삼기 때문에 사회적 총량이 한정돼 있는 부(富)의 불평등을 초래할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갖고 있다.

   인간의 이기적 본성과 자유시장을 강조한 `전통 자본주의'를 시작으로 정부의 개입과 규제, 복지를 강조하는 `수정 자본주의', 민간의 자율을 중시하는 `신(新) 자유주의'에 이르기까지 시대의 요구에 따라 개량적 요소가 가미되고 있으나 자본주의 근본은 역시 사적 소유 인정과 자유 경쟁이다.

   이는 결국 경제발전이라는 과실과 함께 노동 착취, 각종 도시 문제, 삶의 질 하락, 독점자본 형성 등의 부작용을 낳을 수밖에 없고, 이것이 곪아 터진 결과가 현재 전세계에서 벌어지는 대중 시위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최근에는 인간의 이타적 동기와 환경을 강조하는 대안적 자본주의가 등장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주목받진 못하고 있다.

   구(舊)소련의 붕괴와 중국의 시장경제 도입을 계기로 최고의 가치로 `숭배'되던 자본주의를 흔들고 있는 것은 역시 `부의 불균형'이다.

   빈부 격차는 미주,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등 전세계적인 현상으로 확산하고 있고 일부 국가에서는 이에 대한 반발 심리가 깊어지면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와 혁명, 내전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더욱이 최근 경기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서구 선진국에서도 상대적 빈곤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하는 분위기다.

   자본주의의 중심인 미국에서는 최근 인구통계국의 조사 결과 지난해 최저생계비에 못 미치는 소득을 벌어들인 가구의 비율이 15.1%에 달해 전년(14.3%)보다 0.8%포인트 상승, 1993년 이후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인구로 따졌을 때 빈곤층은 4천620만명으로 한국의 인구에 육박하는 숫자가 빈곤층으로 분류된 셈이다.

   최근 뉴욕 월가와 수도 워싱턴 D.C.에서 벌어진 `점령 시위'에 참가한 군중이 "우리는 (소득 하위계층) 99%"라는 구호를 외치는 것도 고소득층과 중산ㆍ빈곤층 간 괴리와 이에 따른 반목이 커지고 있음을 방증한다.

   장기불황에 시달리는 일본도 지난해 국민생활 기초조사 결과 저소득층 비율을 나타내는 상대적 빈곤율이 16.0%에 달해 관련 통계조사를 시작한 1985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경찰에 연행되는 월가 점령 시위자
(AP=연합뉴스) 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의 주코티 공원 인근에서 '월가를 시위하라'에 참여한 시위자를 경찰이 체포하고 있다. A person is taken into custody by New York City police at the Occupy Wall Street protest near Zuccotti Park Wednesday, Oct. 5, 2011 in New York. (AP Photo/Craig Ruttle)

   최근 일본을 제치고 `주요 2개국(G2)' 반열에 오른 중국도 마찬가지다. 지난 3월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지바오청(紀寶成) 런민대(人民大) 총장은 상위 10% 부유층과 하위 10% 빈곤층 간의 소득 격차가 무려 40배에 달한다고 보고하며 우려를 표명했다.

   이런 지적에 따라 중국에서는 최근 `샤오캉(小康, 모든 국민이 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을 누리는 사회)'이라는 개념이 부상해 덩샤오핑(鄧小平)의 `선부론(先富論, 일부가 먼저 잘살게 된 뒤 이를 확산한다)'에서 `균부론(均富論)'으로 무게 중심이 옮겨가는 분위기다.

   `재스민 혁명'의 튀니지를 시작으로 이집트, 시리아, 예멘 등으로 번진 중동 민주화 시위도 장기독재와 권력층의 부패 외에 양극화 심화에 따른 불만이 도화선이 된 것으로 풀이됐다.

   복지 수준이 높아 빈부 간 소득격차가 크지 않은 것으로 평가받아온 유럽 등에서도 최근 세계화와 기술의 발달 등으로 숙련된 고급인력에 대한 수요가 많아지면서 불평등이 심화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 5월 발표한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1980년대 중반 0.28이던 회원국의 지니계수(Gini index)가 2000년대 후반에는 0.31로 높아졌다.

   소득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인 지니계수는 0과 1사이의 값을 갖는데,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이 심하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고소득자의 임금이 지난 20년간 저소득자보다 큰 폭으로 늘어난 데 따른 것이다. 전체 회원국을 놓고 볼 때 소득 상위 10%의 임금은 지난 20년간 연간 2% 증가했으나 하위 10% 계층은 1.4% 늘어나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저소득자의 근무시간이 고소득자보다 더 많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나면서 이런 소득 격차는 더 늘어난 것으로 분석됐다.

   이에 더해 1990년대 말 아시아 외환위기와 2000년대 말 글로벌 금융위기 등을 겪으면서 각국 정부가 재정 적자 문제 해결을 위해 긴축에 나서면서 정부 차원의 소득재분배 효과도 제대로 나타나지 않고 있다.

   월가의 대표적 비관론자인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최근 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카를 마르크스가 옳았다"면서 "어떤 부분에서 자본주의는 자기 파괴적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은 본질적으로 비용을 줄이고 현금을 확보하려는 속성을 갖고 있다. 이는 노동자들의 수입과 지출 감소로 이어지고 결국 기업으로 돌아가는 돈이 줄어드는 `내부적 모순'이 자본주의의 구조적 한계라는 주장이다.

   루비니 교수는 다만 지금의 자본주의가 자기파괴의 위기 국면에 진입한 상태는 아니라면서도 "만약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두 번째 대공황이 발생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humane@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11/10/09 07:00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