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조선] [해외르포] 명품 교육의 나라, 핀란드
초중등은 ‘평등’, 고등교육은 ‘경쟁’으로 두 마리 토끼 잡다
글 : 吳炫錫 朝鮮日報 대중문화부 기자 

핀란드 교육의 평등 이념은 “결과야 어떻든 평등하면 된다”는 획일적인 평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 하나하나를 일정 수준까지 키운다”는 책무성(責務性) 개념을 포함한다. 의무교육이 끝나는 9학년까지 모든 학생이 일정 수준에 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대에서 학생·교수·교직원이 반대하고 있는 ‘대학 법인화’도 핀란드에선 이미 지난해 10개 국립대에서 일제히 이뤄졌다. 서울대에서 벌어진 것과 같은 점거농성은 찾아볼 수 없었다

⊙ 학교가 갖고 있는 敎育力 대부분을 학습부진아 지도에 쏟아… 優劣班 대신 ‘통합 학급’ 편성 
⊙ 민주시민이자 산업역군으로 빚어내는 ‘공교육 이상’을 인구 530만의 小國이 실현시켜
⊙ 핀란드는 인문계 고교보다 직업학교 들어가기가 힘들어
⊙ 대학등록금은 전액 ‘무료’… 핀란드 국민 소득의 30~50%를 세금으로 납부
⊙ ‘과학’이 강조되는 핀란드 교육… OECD 주관 국제학력평가 과학부문 1위

1107_444.jpg헬싱키의 부두. 이곳에 장이 열리면 종종 할로넨 대통령이 커피를 마시러 나오기도 한다. 

“한국에서 학생들이 수업을 안 듣는다고요? 그렇기 때문에 프로페셔널한 교사가 필요한 것이죠. 학생이 공부 안 하는 것은 교사 책임입니다.”

핀란드에서 여러 학교장·교사들의 이 말을 반복해서 듣기 전까지 솔직히 ‘핀란드 공교육’에 대해 적잖은 의구심이 있었다. 지표상으론 핀란드 공교육이 OECD 주관 국제 학력평가(PISA·Programme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에서 3회 연속 1위를 차지하는 등 우수한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핀란드 공교육의 힘보다는 북유럽 특유의 강력한 경제력과 적은 인구 규모 덕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있었다.

특히 국내에서 유통되는 ‘핀란드 교육’ 담론 뒤에는 정치적 맥락이 놓여 있다는 의혹이 많았다. 한국 사회에서 본격적으로 핀란드 교육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것은 지방선거를 반년 앞둔 지난해 1월 《핀란드 교육혁명》(살림터)이라는 책이 출간되면서부터다. ‘한국교육연구네트워크 총서기획팀’이 저자명으로 등록돼 있는 이 책은 전교조 대변인과 서울시 교육위원을 지냈던 안승문(安承文) 21세기교육연구원 원장이 주축이 되어 집필했다. 2009년 함께 핀란드 연수를 다녀온 39명은 진보신당 소속 심상정(沈相) 전 의원과 문인(文人)이자 전교조 교사인 도종환(都鍾煥) 시인, 박원순(朴元淳)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등 대부분 진보·좌파 인사들로 채워져 있었다. 안승문 원장과 심상정 전 의원은 지난해 5월 출간된 《에르끼 아호의 핀란드 교육개혁 보고서》(한울림)에도 공동저자로 참여했다.

국내 좌파 성향 매체에서는 핀란드 교육을 소개할 때마다 ‘무상’ ‘보편적 복지’ 등의 수식어를 항상 달아 놓았다. 자원이 부족하고 지정학적으로 강대국 사이에 껴 있는 한국 교육은 실력 있는 인재를 키워내는 것이 중요한데, ‘평등주의 교육’으로부터 배울 것이 있을지 의문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9월부터 올해 3월까지 반년간 핀란드 교육 현장에서 만난 교사와 학부모, 정책 결정자들은 이 같은 생각을 180도 바꿔 놓았다. 국가가 사회의 어린 구성원을 하나하나 민주 시민이자 산업 역군으로 빚어낸다는 공교육의 이상(理想)을 인구 530만의 북유럽 소국(小國) 핀란드는 현실로 만들고 있었다. 만약 국내 ‘핀란드 교육 담론’에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이를 주도한 이들의 편향성 때문이지, 핀란드 교육 자체는 충분히 우리 교육이 참고할 만한 것이라는 게 지난 6개월의 결론이다.

학습부진아를 위한 특별반 운영

핀란드에 파견된 한국 기업 주재원들은 자녀들이 다닐 학교 명칭에 처음 놀란다. 핀란드 어린이들이 모두 다니는 종합학교(Comprehensive School)는 과연 어떤 곳인가? 이를 알기 위해서는 핀란드의 학제(學制)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핀란드의 학제는 크게 4단계로 나뉜다. 모든 어린이가 만 7세가 되면 우리의 초·중학교에 해당하는 기본 의무교육 단계(9~10년)를 거쳐, 대부분이 인문계고나 직업학교 등 상위중등학교(3~4년)에 진학한다. 이후 원하는 학생들은 대학과 폴리테크닉(전문대) 등 고등교육을 밟고, 성인이 되어서도 재취업 교육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성인교육을 받을 수 있다.

큰 그림만 놓고 보면 우리나라와 다를 게 없다. 하지만 모든 교육이 대학입시 중심으로 짜여 있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핀란드에서는 각 교육단계가 추구하는 목표가 확연히 분리된다. 

우리와 가장 크게 다른 단계가 기본 의무교육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평등’이다. ‘평등’이라고 해서 학생 실력 향상을 포기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핀란드 교육의 평등 이념은 “결과야 어떻든 평등하면 된다”는 획일적인 평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 하나하나를 일정 수준까지 키운다”는 책무성(責務性) 개념을 포함한다. 의무교육이 끝나는 9학년까지 모든 학생이 일정 수준에 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핀란드 종합학교(우리의 초·중학교에 해당)에서는 학교가 갖고 있는 교육력(敎育力)의 대부분을 학습부진아 지도에 쏟고 있었다. 획일적인 평등에 집착해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학생들까지도 한 교실에 몰아넣고 가르치는 우리나라 공교육과는 달리, 핀란드 학교에서는 학습부진아를 위한 ‘특별반’(Special Class)을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해 11월 방문한 핀란드 카우니아이넨시(市) 카사부오렌(Kasavuoren) 종합학교도 마찬가지였다. 이 학교에는 학생 5명이 겨우 들어갈 만한 20㎡(6평)짜리 작은 교실이 5곳 넘게 있었는데, 이날 찾아간 ‘수학 특별반’에는 학생 3명만이 앉아 수학 수업을 듣고 있었다. 50대 중반 베테랑 교사는 학생 한 명 한 명이 모두 이해했는지 확인하고 나서야 다음 문제로 넘어갔다. 한 명이라도 이해하지 못하면, 다시 차근차근 설명한 뒤 진도를 나갔다. 

그렇다고 ‘특별반’이 우리나라의 ‘열등반’처럼 성적이 낮은 학생들을 1년 내내 모아놓고 가르치는 곳은 아니다. 수업을 따라가지 못해 ‘특별반’에 편성되더라도, 가능한 한 재빨리 일반 학급으로 돌려보내는 게 교사들의 목표다. 이 때문에 특별반의 구성은 그때그때 달라진다. 이날 수학 특별반에 앉아 있던 학생들은 특별반에 온 날짜가 각각 달랐다. 수학 과목에 대한 이해력이 떨어져 학기 초부터 한 달 넘게 특별반에 머물러 있는 학생도 있었지만, 다른 두 학생은 특별반에 온 지 각각 일주일, 사흘이 됐다고 했다. 담당교사는 “또 다른 학생은 2주 전에 왔다가 이틀 전 일반 학급으로 옮겼다”며 “반을 실력에 따라 나누는 것보다 학생 하나하나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게 목적”이라고 말했다.

과목에 따라서는 ‘특별반’을 별도로 구성하지 않고, 일반 학급에 특수교사를 투입하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아프리카에서 온 이주민이 많은 헬싱키 동부 지역 학교들에서는 이주 학생을 위해 핀란드어 시간에 보조교사를 투입해 공부를 도와주고 있다. 핀란드 국가교육청 관계자는 “우리는 학교에 자율성을 주고 각 학교에 알맞게 보조교사를 활용하거나 특별반 수업을 펼치도록 장려한다”며 “일선 학교에 적합한 정책은 그 학교 교사들이 가장 잘 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가르치는 내용도 획일성보다는 다양성 추구

핀란드의 ‘학생 맞춤형’ 수업 방식은 일반 학급에서도 통용되는 원칙이다. 이날 카사부오렌 종합학교의 같은 층 반대편에 위치한 수학교실에서는 일반 학급 학생들이 수업을 받고 있었는데, 칠판에는 5가지의 문제가 적혀 있었다. 이 학교 수학교사는 “1번부터 3번까지는 모두 풀어야 하는 문제이고, 4번·5번 문제는 3번까지 다 푼 학생들을 위한 추가 문제(Extra Quiz)”라고 설명했다.

교사가 칠판 앞에 서서 문제를 풀어주는 우리 교실과는 달리, 핀란드 교사들은 수업시간 내내 학생들 사이를 왔다갔다했다. 수학교사는 학생들이 푸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좀 더 간단하게 식을 만들면 어떨까”라는 식으로 조언을 한다. 교사가 풀어주는 것을 학생이 지켜보는 한국의 수업과는 상당히 다르다. “철저히 학생 하나하나가 스스로 생각해 방법을 찾도록 한다. 교사는 거들 뿐”이라는 게 핀란드 교육의 원칙이다.

교사만 가르치는 게 아니라 수학을 잘하는 학생들이 옆 친구를 가르쳐주는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교사들이 잘하는 학생에게 “친구를 도와주렴”이라고 말하는 모습도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한국보다는 학급당 학생 수가 적겠지만, 그래도 학생 10여 명에 교사는 1명이기 때문에 학생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학교 관계자는 말했다.

핀란드 교육당국은 교사와 학교에 자율성을 부여하면서도, 초·중학교 단계에서는 우열반을 편성하지 않는다. 실력과 상관 없이 편성하는 통합학급이 원칙이다. 특별반은 예외적인 경우에 일시적으로만 활용된다. 이는 교육당국의 지침이기도 하지만, 또 동시에 핀란드 교육계에 일반적으로 자리 잡은 일종의 교육철학이다. 카사부오렌 중학교 레나-마이야(Leena-maija) 교감은 “우열반으로 나누는 것보다, 잘하는 학생이 못하는 학생을 가르쳐주면서 서로 배우는 게 전체적인 학업 발달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는 거의 모든 핀란드 교사가 똑같이 말하는 내용이다.

심리학자가 학교에 상주

1107_444_1.jpg핀란드 초등학교에서는 구구단을 욀 때 게임을 한다. 학생들이 게임으로 놀며 익히더라도, 지도교사는 교실 구석구석을 다니며 일대일 교습을 멈추지 않는다.

때로는 성적이 좋은 학생도 ‘특별 교육’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부모가 이혼하는 등 심리적 충격이 있을 경우엔, 필요에 따라 학생에게 학교 심리학자(School Psychologist)를 따로 붙여 특별 관리를 실시한다. 모범생이 갑자기 짜증을 내거나 수업시간에 조는 것을 발견하고, 심리학자가 학생 면담과 가정 면담을 통해 어떤 심리적 외상을 입었는지 파악하기도 한다. 헬싱키에 거주하는 학교 심리학자 헤이코넨(Heikkonen)씨는 “아이들이 보이는 비정상적인 행동은 그 원인을 파악해야 바로잡을 수 있다”며 “일찍 원인을 찾으면 간단한 상담만으로도 치료가 되지만, 우울증으로 발전하면 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같이 특별 교육의 혜택을 받는 학생들은 핀란드 종합학교(초·중학교) 전체 학생 55만3329명 중 4만7168명(8.5%)에 달한다. (2009년 핀란드 통계청 통계) 12명 중 1명꼴로 특별 교육을 받는 것이다.

원인으로는 난독증(難讀症) 등 언어장애로 인한 학습부진 학생이 9749명으로 가장 많고, 그다음이 단순 학습부진 학생(8117명)들이었다. 단순 정서장애·부적응 학생도 6009명이나 특별 교육의 혜택을 받았다. 특별 교육의 대상을 심신 장애인으로 한정하는 우리나라에서였다면 ‘문제아’ 취급만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핀란드 의무교육 단계에서의 또 다른 특징은 수요자인 ‘학생 중심’으로 지도가 이뤄진다는 점이다. 공급자인 ‘교사 중심’으로 수업이 이뤄지는 우리나라에서는 교사가 강단에서 강의를 하면 그것으로 책임이 끝나는 경우가 많지만, 핀란드에서는 반드시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공부를 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 때문에 수업 장면이 우리나라와 아주 다르다. 지난해 10월 방문한 헬싱키 바르티오퀼래(Vartiokyla) 초등학교에서 참관한 2학년 수업시간엔 수학시간이었는데도 학생들이 모두 일어나 3~4명씩 짝을 이뤄 모래주머니를 던지며 놀고 있었다. 어린이들이 깔깔 웃으며 말하는 핀란드어를 찬찬히 들어보니 죄다 숫자였다. 한 아이가 모래주머니를 던지며 “3 곱하기 4는 뭐?”라고 외치면, 받는 아이가 “12”라고 외치며 받아야 하는 일종의 숫자게임이었다.

이 학교 마리안느 로포넨(Marianne Ropponen) 교장은 “어린 학생에게 앉아서 외우라고 하면 일부 조숙한 학생은 잘하지만, 나머지는 집중력이 떨어져 결국 딴생각을 하고 수업을 안 듣게 된다”며 “학생 발달 단계에 맞춰 강의 방식을 정하는 게 교사의 임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수요자 중심 교육’은 학생 생활지도에서도 활용되는 일관된 원칙이다. 학생이 수업시간에 졸 경우, 교사가 먼저 하는 일은 다른 학생들에게 티가 나지 않게 지적하는 것이다. 그러고는 수업시간이 끝나고 왜 졸 수밖에 없었는지를 차근차근 묻는다. 혼내고 징계하는 것은 그다음의 일이다.

“수업시간에 학생이 꾸벅꾸벅 졸 경우, 혼내는 것은 가장 편한 방법이겠죠. 하지만 그게 학생에게 도움이 될까요? 부모가 싸웠거나 혹은 사랑하는 강아지가 죽어서 밤새 잠을 못 잤을 수도 있잖아요.”(핀란드의 한 종합학교 교사)

이 같은 ‘맞춤형 교육’을 위해 핀란드 교사들은 다른 직종의 사람들보다 더 많이 일하는 편이다. 핀란드 최대일간지 《헬싱긴사노마트》(Helsingin Sanomat)의 아르노 세이로(Arno Seiro) 기자는 “노동 강도가 약한 핀란드 사회에서 교사는 임금에 비해 노동 강도가 쎈 직업”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고 엘리트들이 교사가 된다”고 말했다.

45%가 직업학교에 진학

한국에서 “핀란드 교육은 평등 원리에 충실하다”고 말할 때, 그것은 기본 의무교육 단계에 한정된다. 한국에 알려진 바와 달리 핀란드의 고등학교는 평등하지 않다. 종합학교에서 받은 내신성적과 별도의 시험을 쳐서 원하는 고등학교에 지원하는데, 학교별로 인기 학교는 치열한 경쟁을 거쳐야 한다. 한마디로 고교 비평준화 체제다.

9학년(중3) 학생들은 10등급으로 평가해 10점, 9점, 8점 등으로 점수가 매겨지는데, 명문고등학교의 커트라인은 우리의 특목고만큼이나 높다. 헬싱키의 레수(Ressu) 고등학교는 9.2점 이상 되어야 합격할 수 있고 영어로 가르치는 고등학교인 SYK(Helsingin Suomalainen Yhteiskoulu)도 8점대 중반은 되어야 지원할 수 있다.

특히 일부 학생들은 명문고교에 들어가기 위해 재수(再修)를 하기도 한다. 기본 의무교육 단계를 설명할 때 ‘9년 과정’이라고 하지 않고 ‘9~10년 과정’이라고 하는 것은, 한국에서는 ‘재수’라고 할 수 있는 10학년 과정을 다니는 학생들이 전체의 3%나 되기 때문이다. 

핀란드에서 초·중 교육은 통합돼 있지만 고교 교육은 일반고와 직업학교로 이원화돼 있다. 핀란드 학생들은 보통 55%가 인문계 고교에 진학하고 45%가 직업학교에 진학한다.

인문계고는 무학년제(無學年制)로 운영되며, 꼭 이수해야 할 필수과목과 개인이 선택하는 선택과목을 포함해 일정 학점을 이수해야 졸업할 수 있다. 이론상으로는 2년 만에 졸업할 수 있지만, 대부분은 2.5년 이상 수업을 듣고 4년 만에 졸업하는 경우도 상당수다. 

그렇다고 우리나라처럼 고등학교의 교육 목표가 ‘명문대 진학’에만 맞춰져 있는 것은 아니다. 학교별로 ‘수학 교육’ ‘과학 중점 학교’ 등 특성화가 이뤄져 있고, 예술 교육에 초점을 맞춘 학교도 상당수다. 헬싱키 중심부에 위치한 스웨덴어 학교인 뢰(Toolo) 고등학교는 예술 교육에 초점을 맞췄는데도, 학생들 사이에 인기가 많아 ‘들어가기 힘든 학교’로 꼽힌다.

이런 특성화는 명문고교도 마찬가지다. 상위 10% 이내가 입학하는 레수 고등학교의 경우엔 학교장이 ‘제1의 교육 목표’를 “모든 학생이 재학 중에 운전면허증을 취득하는 것”에 둔다. 학교가 해야 할 일은 학생들이 행복하게 살기 위한 요소를 만들어주는 것이라는 게 학교장의 설명이다.

핀란드 고등학생들의 학습량은 개개인에 따라 차이가 많지만, 우리처럼 ‘아예 공부를 포기한 학생’은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의 ‘수능 시험’에 해당하는 졸업고사(Matriculation Test)에서 일정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과목별 하위 5% 학생들에겐 아예 고등학교 졸업자격이 주어지지 않는다. “실력이 되어야 졸업장을 준다”는 ‘수준 도달’의 원칙이 평등의 원리보다 우선한다. 

하위 5%는 졸업장 안 주는 고등학교

졸업자격을 엄격하게 부여하는 대신 핀란드 학생들은 졸업고사에 최대 3차례에 걸쳐 응시할 수 있다. 대부분 수험생들은 졸업고사를 2학년 2학기부터 3학년 2학기까지 세 번에 걸쳐 치르고, 이 중 과목별로 가장 좋은 성적만 골라 대학에 제출한다. 

여러 번에 걸쳐 치러지는 만큼, 핀란드 졸업고사 성적은 성적표에 구체적인 점수로 기재되지는 않는다. 대신 전체적인 수준만 기재되는 이른바 ‘등급제 수능’이다. 가장 높은 L등급은 상위 5% 학생에게 주어지고, 하위 5%(I등급·낙제)가 최하등급이다. 총 7등급이 주어지는데, 헬싱키대(大) 등 명문대 진학을 원하는 학생들은 주요 과목에서 L등급에 속해야 하기 때문에 학습량이 상당한 수준이다. 

핀란드 졸업고사의 특징은 형식에 한정되지 않는다. ‘등급제’ 및 ‘복수(複數) 시험’를 골자로 하기 때문에, 우리와 달리 상당한 수준의 문제와 서술형 평가를 실시할 수 있다. 

예컨대 영어과목의 경우 가장 배점(299점 중 99점)이 높은 문제는 작문이다. 5가지 문제 중 하나를 골라 150~250개 영어단어로 글을 쓰도록 한다. 지난해 가을 수능시험에서는 ‘오지(奧地) 여행은 즐겁지만 위험한데 이에 대한 의견을 여행잡지 기사 형식으로 작성하라’는 등의 문제가 출제됐다.

나머지 200점은 듣기평가(90점)와 독해시험(110점)이다. 독해 문제 중에는 《타임》이나 《이코노미스트》 등 영미 언론에 실린 기사를 요약하는 문제도 출제된다. 반면 우리 수능의 외국어영역(영어)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독해(60%)이며, 모두 객관식 문제이다. 핀란드를 방문한 한 한국의 영어교사는 “한국의 수능시험보다 훨씬 어렵다”며 “듣기평가는 대학생들이 취업을 위해 치르는 토익(TOEIC) 문제 수준”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수학·과학 과목에서도 핀란드 수능시험은 해답뿐 아니라 문제 풀이과정도 적어내야 한다. 정답을 정확히 맞추더라도 풀이과정에 논리성이 결여되거나 공식을 암기해 풀면 점수는 절반도 받지 못한다. 

‘등급제’ 및 ‘복수 수능제’는 우리나라의 수능시험 제도와는 정반대다. 우리도 1994학년도에 한 차례 복수 수능제를 실시한 적이 있고, 최근에도 교과부가 도입하려고 했었지만, 매번 “변별력에 문제가 생긴다”는 이유로 제도 안착에는 실패했다. 등급제 수능 역시 노무현(盧武鉉) 정부 때 도입을 추진했었지만, 역시 변별력 문제로 한 차례 시행 후 폐지됐다.

그렇다면 핀란드는 어떻게 이런 제도들을 안정적으로 시행할까. 그 해답은 우리나라에서는 철저하게 금지돼 있는 ‘대학별 본고사’에 있다.

전공과목 지식 물어보는 학과별 본고사

핀란드에서 남학생은 고교 졸업 후 상당수가 바로 입대한다. 헬싱키 인근 에스푸(Espoo)시에 거주하는 페이크 페우란헤이모(Peik Peuranheimo·20) 씨 역시 그런 경우였다. 지난해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졸업고사 대부분 과목에서 최우수 등급을 받은 상태였다.

지난 3월 ‘말년 휴가’를 나온 그를 만나 곧바로 입대한 이유를 물었다. 그는 “대학 입학시험을 치려면 새로 공부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핀란드 대학입시에서는 대학에서 출제하는 본고사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핀란드 대학입시에서는 본고사가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핀란드의 4년제 대학은 대부분 대학에서 직접 출제하는 지필시험 형태의 ‘본고사’를 실시한다. ‘3불(不) 정책’으로 논술·면접 이외의 대학별 고사를 금지시켜 놓은 우리나라와는 정반대다. 핀란드에서는 학생 선발 과정을 국가가 아닌 대학이 주도하고, 본고사 문제는 대학별이 아닌 학과별로 출제된다. 일종의 대학입시 분권화 정책이다.

또한 ‘본고사’ 문제라고 해서 1980년까지 실시되던 우리나라의 ‘본고사’ 문제를 떠올리면 안 된다. 과거 우리 명문대학의 본고사는 고난이도 국어·영어·수학 시험으로 무조건 최상위권 학생들을 ‘싹쓸이’하는 방식이었지만, 핀란드 대학들은 학과별로 자신들이 정해놓은 교육 철학에 알맞은 인재만 골라서 뽑는다. 

이를 위해 학과별 본고사에는 고등학교 때 배우던 국어·영어·수학 등의 과목은 전혀 출제되지 않는다. 출제되는 것은 대부분 전공별 기초 지식이다. 헬싱키 대학 입학처장 레베카 니스카넨(Rebekka Niskanen) 씨는 “이미 수능시험을 통과한 학생들이기 때문에 고교 교과과정 이해 수준을 별도로 확인할 이유가 없다”며 “중요한 것은 대학 와서 공부할 전공에 대한 적성과 동기부여”라고 말했다.

본고사를 위해 각 대학은 학과별로 약 2달 전인 3~4월에 전공 관련 논문 등 읽을거리를 내준다. 예컨대 철학과는 철학 관련 서적 리스트를 홈페이지에 올리고, 법학과는 법률 논문을 모은 수험서를 제작해 배포하는 식이다. 이들 자료는 해당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전공 기초지식에 해당한다.

일부 대학은 학생 개개인의 노력과 무관한 시험을 치르기도 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교사 양성 기관으로 유명한 위베스퀼래(Jyvaskyla) 대학교 사범대학 시험이다. 이 대학에서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일종의 심리검사인 인성검사를 실시한다. 이 대학 엘리사 헤이모바라(Elisa Heimovaara) 교수는 “교사는 미래의 인재를 키워내는 직업이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부적합한 요소가 있으면 직무를 수행하기 힘들다”며 “사범대학은 최고의 교사를 키워낼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본고사 과목과 읽을거리는 원서 접수 기간 이전에는 정해지지 않기 때문에 미리 공부할 수도 없다. 두 달간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유일한 합격비법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전공서적을 폭넓게 읽은 학생들이 유리하다. 특히 의대나 법대 등 인기학과에 들어가려는 학생들은 종종 대학생들로부터 본고사를 겨냥한 한 달짜리 전공과목 과외를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핀란드에서는 어느 누구도 “사교육이 있으니 대학입시를 국가가 주도하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 한 교민은 “우리와 같은 기업형 사교육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대학은 자율성이 중요하다는 데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대학 등록금과 국립대 법인화

6월 들어 국내 대학가에서는 때 늦은 ‘개나리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황우여(黃祐呂) 한나라당 원내대표의 발언으로 이명박(李明博) 대통령이 내걸었던 ‘반값 등록금’ 공약이 이슈가 됐고, ‘한국대학생연합’ 등 대학생 단체와 야당, 시민단체들이 촛불집회를 열면서 대학들에 ‘등록금 인하’를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또 서울대학교 학생들은 지난 5월 30일부터 “국립대 법인화는 진리를 추구해야 할 대학을 기업으로 만드는 것이다”고 주장하며 총장실을 점거했다. 과거 등록금 고지서가 발부되는 3월에만 잠깐 일어나 ‘개나리 투쟁’이라고 불렸던 대학생들의 시위·농성이, 역설적으로 여당 지도부의 발언으로 뒤늦게 불붙은 셈이다.

등록금만 놓고 보면 핀란드의 대학 정책은 이들 대학생들이 좋아할 만하다. 핀란드는 소득 수준에 상관없이 대학 등록금이 전액 무료다. 이 때문에 대학을 오래 다니는 학생도 많다. 핀란드 교육법에는 대학교육 기간이 5년으로 명시되어 있지만, 실제 학생들은 평균적으로 7년을 다닌다. 대학 등록금이라는 제도 자체가 없기 때문에, 늦게 졸업하는 학생도 등록금을 내지 않는다.

‘무료 등록금’ 정책이 가능한 것은 세금 제도와 대학 규모가 우리나라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핀란드 국민들은 소득의 30% 이상을 세금으로 납부한다. 많은 경우 소득의 50%까지 세금으로 낸다. 반면, 대학 숫자는 종합대학이 10곳으로 우리보다 훨씬 적다. 10개 종합대학을 다니는 학생수(학부 기준)는 14만여 명. 우리나라 4년제 일반대 학생 숫자 200만명의 7%에 불과하다. 핀란드의 인구 규모(530만)가 우리나라(4800만)의 9분의 1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핀란드의 대학생 비율이 적은 것은 확실하다.

더 놀라운 점은 서울대에서는 학생·교수·교직원이 반대하고 있는 ‘대학 법인화’도 핀란드에서는 이미 지난해 10개 국립대에서 일제히 이뤄졌다는 점이다. 서울대에서 벌어진 것과 같은 점거농성은 찾아볼 수 없었다. 

지난 1월 핀란드 헬싱키 대학에서 만난 한 교수는 “우리 교수들도 법인화에 동의했다”며 그 이유를 밝혔다. “법인화의 이유는 교수를 자르기 위한 게 아니잖아요. 세상이 빠르게 변하는 만큼 대학도 경쟁력 있고 리더십 있는 조직으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이 점에 동의한 것이죠.” 

교수의 지위가 하락하고 대학에 기업의 경영 원리가 도입되는 것에 대해서도 이 교수는 크게 반대하지 않았다. 

“교수들이 법인화 이후 지위에 대해 물었더니, 근로조건의 변화가 없다고 하더군요. 교육부가 그렇게 얘기했으니 믿고 따르는 겁니다.”

실제로 법인화 이후 핀란드의 각 대학 이사회에는 교수 외에도 기업 대표들이 참여하고 있다. 휴대전화 제조업체 노키아의 요르마 올리마(Jorma Ollila) 이사회 의장은 헬싱키 대학의 이사, 세계적인 엘리베이터 제조업체 코네(Kone)의 사장은 알토 대학의 이사다. 학생들도 기업의 참여에 대해 큰 불만이 없다. 헬싱키 공대에 재학 중인 페카(Peekka·23) 씨는 “기업이 수업 내용까지 시시콜콜 간섭하면 싫겠지만, 어차피 학문이 세상에서 쓰이는 만큼 서로 의사소통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학에 기업 원리가 도입되는 것을 반대한다”는 국내 좌파들의 주장은 예상 밖으로 핀란드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과학’이 강조되는 핀란드 교육… 수업시간에 인공위성 제작

1107_444_2.jpg헬싱키의 한 고등학교 과학 시간. 서술형 평가가 대학입시에서 중요한 핀란드에서는 실험 중심으로 과학 수업을 한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교과서에서 그림으로만 보는 실험 과정을 핀란드 학생들은 몸으로 체험한다.

핀란드에 우리가 또 배워야 하는 것은 과학 교육에 대한 강조다. 국내에서는 이공계 기피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지만, 핀란드에서는 오히려 과학자가 연예인만큼 인기 있는 직업이다.

지난해 12월 핀란드 헬싱키의 메세케스쿠스(Messekeskus)에서 열린 진학정보박람회에서 만난 레나(Reena·17) 씨 역시 환경공학이나 화학공학을 전공하고 싶어하는 여고생이었다. 눈 주위를 까맣게 화장하고 할리우드 영화 <트와일라잇>을 좋아한다는 소녀였지만, “가장 좋아하는 과목이 뭐냐”는 질문엔 주저 없이 “화학”이라고 말했다. 이유는 ‘재미’였다. 레나 양은 “수업시간엔 선생님과 함께 실험을 하는데 물질이 반응하고 변하는 게 신기하다”고 말했다.

다음 날 헬싱키 인근 한 중학교에서 학교의 허락을 받아 2층 과학교실을 취재했다. 교실 앞쪽에는 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칠판 앞에 서 있는 과학교사 안시 라우하(Anssi Lauha) 씨 손에는 실험용 전극(電極)이 들려 있었다. 염화구리 수용액을 분해하는 실험이었다. 이 학교 관계자는 “위험성이 작은 실험은 학생들이 직접 하고, 그렇지 않으면 이처럼 교사가 학생과 함께 실험한다”며 “그렇더라도 학생들이 구경만 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라우하 씨는 수업시간 내내 “염화구리 수용액을 분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분해 후에는 어떻게 될까”라며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학생들은 수업시간 내내 눈앞의 실험도구에서 눈을 떼지 않으면서 교사의 질문에 답했다. 수업이 끝날 때쯤 라우하 씨가 양 전극을 수용액에 넣자, 학생들이 우르르 일어나 교탁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실험결과를 자세히 보기 위해서였다. 수업은 5분 정도 늦게 끝났지만 지루해하는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학교에서 과학 과목을 실험 중심으로 생생하게 가르쳐서 그런지 국민들도 과학을 좋아한다. 지난해 발표된 2010년 핀란드 과학지표(Tiedebarometri)에 따르면 25세 이하 성인 중 60%가 “과학에 흥미가 있다”고 했고, “과학에 흥미가 없다”고 답한 비율은 6%에 불과했다.

이 같은 선호도는 결국 실력으로 직결된다. 실생활에 필요한 ‘응용력’에 초점을 맞춘 OECD 주관 국제학력평가 비교연구(PISA)에서 핀란드는 과학 분야에서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2003·2006년 PISA에서 과학 과목 1위를 했고, 2009년 PISA에선 중국 상하이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중국 상하이가 대도시 학생들만 참가한 결과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핀란드가 과학 분야에선 사실상 3회 연속 1위를 한 셈이다.

지난해에는 에스푸 오타니에미(Otaniemi)에 위치한 헬싱키 공대 학생들이 인공위성을 제작하는 게 핀란드 TV에 방송되기도 했다. 핀란드의 유명 건축가의 이름을 따 ‘알토-1(Alto-1)’이라고 이름 붙인 이 인공위성은 2013년 궤도에 올려질 예정이다. 학생들은 “위성에 환경 문제 탐사를 위한 이미지 분석 장치, 임무 완수 후 스스로 폐기할 수 있는 정전기 플라스마 파괴 장치, 헬싱키대와 투루크대에서 개발한 방사선 감지기를 탑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만약 이들이 3kg의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하면, 핀란드는 최초의 인공위성을 갖게 된다. 즉 대학교 학부생들이 국가의 첫 인공위성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과학 교육은 국가경쟁력으로 직결된다. 헬싱키 대학교 사범대학 야리 라보넨 학과장은 “핀란드가 과학에 강한 이유는 한마디로 설명하기엔 복잡한 문제”라면서도 “핀란드에선 교사가 수업방식을 자유롭게 정하고, 대부분이 실험 수업을 빈번히 한다는 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험 중심 과학 수업이 학생들 과학 실력의 주요인이라는 것이다. 

목표를 명확히 알고 실천하는 교육자들

핀란드 교육을 논할 때 반드시 언급해야 하는 곳이 직업학교들이다. 우리나라에서 직업학교는 ‘인문계 못 가는 학생들’이 진학하는 곳으로 곧잘 인식되지만, 핀란드에서는 인문계 고교보다 들어가기 힘든 곳으로 통한다. 지난해 6월 핀란드 고교 입시에서 종합학교 9학년(우리의 중3)의 일반고 지원자가 3만3000여 명에 그친 반면, 직업학교엔 두 배가 넘는 6만7000여 명이 지원했다. 10학년 학생 중에는 직업학교에 가고 싶어 재수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직업학교 인기’ 비결은 핀란드 직업학교를 한 곳이라도 방문하면 명확히 알 수 있다. 직업학교에서 이뤄지는 교육의 수준이 한국에서는 입사 뒤 이뤄지는 수습교육 수준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방문한 핀란드 에스푸시 옴니아(Omnia) 직업학교의 경우, 학교 강의실은 죄다 작업장 같았다. 건축학과 학생들이 공부하던 곳은 베니어판이 굴러다니는 전기톱 소리가 끊이지 않는 목공소 분위기였고, 미디어과 학생들이 사진을 찍던 곳은 서울 청담동의 웨딩사진 촬영장과 비슷했다. 그래픽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모니터가 두 개 달린 컴퓨터로 웹디자인을 연습한다. 소프트웨어까지 기업들이 쓰는 것 그대로였다.

이 학교 학생들은 1학년 때부터 ‘실전에서 바로 써먹을 수 있는 기술’을 배우고, 2학년이 되면 직업 프로세스를 직접 경험한다. 건축과 학생들이 학교가 마련한 200㎡(60.6평) 부지에 집을 지으면, 조경과 학생들은 그 옆에 정원을 만든다. 미용과 학생들은 학교가 차린 미용실에 나가 실습을 한다. 실습만 하는 게 아니라 돈도 번다. 지난해 건축과와 조경과 2학년 학생들이 지은 집은 50만 유로(약 7억8000만원)에 팔렸다. 수입은 다시 교육비로 쓰인다.

직업학교에서도 역시 강조되는 것은 ‘수준 도달’의 원칙이다. 보통 3학년 때 이뤄지는 현장 실습 평가에서 학생들은 각자 자신의 업무 능력을 입증해야 공인 기술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다. 실력이 안 될 경우, 기술자격증을 받지 못한 채 졸업하게 돼, 취업 시장에서 불이익을 겪게 된다.

핀란드 국가교육청이 2005~2008년 직업학교 학생 13만8481명을 추적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7.1%가 학교에서 중도 탈락했고, 23.8%는 과정을 모두 이수했어도 자격증을 받지 못했다. 반면, 현장 실습 평가를 통과한 졸업생은 4명 중 3명꼴(73.3%)로 취업에 성공했다. 학교에서 제대로 공부하면 시장에서 통할 인력이 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엔 냉정하게 자격을 박탈하는 게 핀란드 교육 경쟁력의 비결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핀란드에서는 이러한 교육 목표와 원칙들이 중앙정부―지방자치단체―학교―교사―학생 사이에서 왜곡되지 않고 지켜질 수 있을까? 그 해답은 우리의 교과부에 해당하는 국가교육청과 우리의 ‘전교조’에 해당하는 교원노조(OAJ)의 다음과 같은 대답에 있었다.

“우리가 만든 교육정책과 방향에 대해 학교와 교사, 학부모들이 이에 따를 것이라는 것을 기본적으로 신뢰합니다. 정책 만드는 과정에 여야 구분없이 모든 정당, 교장연합·교원노조 등 모든 이해 관계자들이 참여하고 동의했기 때문이죠.”(핀란드 국가교육청 관계자)

“핀란드 교사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자기 과목 최고 전문가이자 인격적으로도 완성된 사람이 되려고 늘 애씁니다. 정책 수립 과정에 우리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때문에 정부와 견해 차이가 생기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핀란드 교원노동조합 관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