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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격 인터뷰] 곽노현교육감 "국제학업성취도 평가 1위, 상처뿐인 영광"

인서비1 2011. 4. 8. 20:56

 

[직격 인터뷰]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국제학업성취도 평가 1위, 상처뿐인 영광"

한국일보 | 입력 2011.04.08 20:23



"아이들 골병 들고 인성은 망쳐"

경쟁력 갖춘 지역별 고교 양성

교육의 상향 평준화로 가야

특목고·자사고 확대 안할것
규율 실종, 체벌금지 탓 아니다

자치·자율 끌어내는 교육 필요

무상급식은 '망국'아닌 '흥국'


우리 국민 모두가 교육 전문가다. 교육에 대해 다들 생각이 있고 말 한마디 보탤 수 있다. 더욱이 교육 현장은 계급 문제, 세대 문제, 이념 문제, 이상과 현실의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있다. 그러니 교육은 늘 논란과 갈등에 휩싸인다.

↑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자신의 사무실에서 국궁의 시위를 당겨보고 있다. 최근 국궁을 배운 그는 “정신 수양에 아주 좋은 운동”이라고 국궁을 소개했다.

↑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자신의 교육실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는 "학교별로 학력 격차가 발생하는 이유를 살피고 있다"며 "앞으로는 학교와 지역의 차이를 넘어서 학력이 상향평준화 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류효진기자 jsknight@hk.co.kr

최근 몇 달 동안 그 논란의 한 가운데 있었던 당사자가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다. 지난해 6월 교육감에 당선된 뒤 무상급식, 체벌 금지, 학력평가방식 다양화 등 여러 시도를 했다. 그 과정에서 중앙정부와, 또 서울시와 갈등을 겪었고 학교 현장과 의견 차이를 보일 때도 있었다.

H-직격인터뷰가 4일 서울시교육청에서 만난 곽노현 교육감은 입시와 경쟁이 지배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면서 교육 개혁의 이상을 반드시 실현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의 이해가 달려 있기 때문인지 민감한 현안에 대한 생각을 드러내는 데는 신중했다. 그가 선택한 언어들은 무척 절제돼 있었다. 그 때문에 언어의 틈에서 그의 감정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_4월 3일자 한국일보에 서울시교육청이 올해부터 수행평가(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외에 수업시간 중의 토론과 발표, 프로젝트 학습, 논술 등을 내신성적에 반영하는 것)의 배점 비중을 30%로 늘린 뒤 고 3생들의 불만이 많다는 기사가 나왔다.

"고교뿐 아니라 초중고 모두에서 30% 이상으로 확대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중간고사와 기말고사에서 서술형 평가를 30% 이상 하라는 지침을 내렸으나 시험에서는 실제로 그렇게 되기가 힘들다. 문제풀이식, 정답찾기식 교육에서 벗어나자는 서술형 시험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 수행평가의 비중을 늘린 것이다."

_현실은 다르다. 공책 필기 깨끗이 하면 점수 더 주고 떠들면 점수 깎는 식으로 운영하는 교사가 있다. 그래서 아이들을 점수의 노예로 만든다는 비판도 있다. 제도를 확대할 때 현실을 살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제도의 필요성이 있다는 것과, 그 제도가 현장에서 변형 또는 왜곡되는 것은 별도의 문제다. 잘못 운영된 것은 바로 잡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_얼마 전 2014년 수능시험 개편안이 나왔다. 앞으로 수능시험이 어떻게 변해야 하다고 생각하나.

"기존 수능시험을 최선의 것 혹은 불가피한 것으로 보면 안 된다. 핀란드에서는 과목당 여섯 시간씩 논술형으로 본다. 수능 과목도 다양해져야 한다. 그래서 다양하게 과목을 선택하고 그들 과목의 점수를 묶어 대학 전공별로 다양한 전형을 통해 입시를 치러야 하다. 획일화하면 사교육을 양산한다. 사교육은 경쟁이 강할수록, 공교육이 획일적일수록 기승을 부린다. 그것들을 줄여야 한다."

_지금도 전형방법이 많아 헷갈린다고 한다. 게다가 다양한 전형을 하자면 대학의 협조가 필요하지 않겠나.

"교육감 직선제 때문에 비로소 다양한 전형이 가능해졌다고 본다. 지난해 교육감 선거 때 교육감협의회를 활성화하고 교과부, 한국대학교육협의회 등과 협의해 대입전형의 다양화를 논의하겠다고 약속했다. 내가 교육감협의회 의장이 되지 못해서 그렇지 만약 의장이 됐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_서울에는 고교 선택제가 있어서 고교를 어느 정도 선택할 수 있다. 그렇게 했더니 공립학교 기피현상이 심각해졌다. 공립학교 가면 공부 못한다는 생각이 퍼져있다.

"특목고, 자율형사립고 등이 있고 일반고에도 이른바 명문학교가 있다. 명문학교는 대부분 사립학교다. 명문 사립학교가 강남에 몰려있는데 이것은 문제다. 사실 서울시내 구청장들을 만나면, 학부모들이 좋은 학교 찾아 다른 지역으로 이사하려 하니 도와달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래서 어느 구든 명문학교가 있어서 학생들이 멀리 가지 않고도 그 학교에 진학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 자치구별로 성적의 차이를 가져오는 요소가 무엇인지 분석해서 상당한 경쟁력을 갖춘 고교를 만들어낼 것이다. 교육에서 상향평준화가 이뤄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_공립학교 기피 현상이 강남 학교로 진학하겠다는 것만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강북 학교라도 공립은 피하고 사립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학생이 급감하기 때문에 사립 고교는 대입에서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하면 학생이 오지 않아 운영에 타격을 받는다. 그러니 입시에 목을 맨다. 특정지역에 산다는 이유로 상대적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자치구와 방안을 만들겠다."

_외고, 자사고 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우수 학생을 싹쓸이해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이 자랑할 일은 아니다. 그렇게 선발된 아이들에게 사회는 선민의식을 부추긴다. 어린 나이에 동급생의 90% 이상?나보다 못한 사람으로 여기는 엘리트주의의 기승은 민주주의의 축소를 부를 수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특목고와 자사고를 확대하지 않을 것이다."

_학생들이 공부하는 것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한계에 도달했다고 본다. 최장학습시간, 최고의 사교육비라는 극한적 요소를 투입해 얻은 학력이다. 초중고 12년 동안 배우는 즐거움을 못 느낀다. 70~80%의 학생들이 자기주도학습능력이나 학업 흥미가 없다. 최상위 아이와 그 부모의 관점이 교육계를 지배하고 다수의 아이들이 끌려가는 구조다."

_어떤 방법이 있을까.

"아이들의 희생을 줄이고 좀 더 의미 있는 방법을 찾아야겠다. 중하위권 학생들은 자유의 공기, 문화 예술 체육 활동, 수련활동, 봉사활동 등을 통해 공부에 대한 호기심과 즐거움을 가지고 거기에 몰입할 수 있다고 본다. 국어, 영어, 수학 외에 어느 한가지에라도 빠져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배움의 즐거움을 얻고 그 즐거움을 바탕으로 학력이 신장할 수 있다고 본다."

_경쟁을 확산하는 주체는 무엇인가.

"기본적으로는 불안 경제다. 자식을 명문대에 넣지 않고는 안정적으로 살기 어렵다고 보는 것 아니겠는가."

_그렇다면 그런 문화를 바꾸어야 하는데, 너무 어렵지 않을까.

"어렵다는 이유로 미룰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관 학업성취도 국제비교연구(PISA)에서 우리 학생들이 언어, 수학, 과학에서 세계 1위를 했지만 상처뿐인, 지속가능하지 않은 영광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 학생들이 골병 들었다. 서울 아이의 53%가 약골이다. 중고교생의 17%가 무기력하고 우울증세를 보인다. 수학, 과학의 학업 흥미도는 세계 바닥이다. 자기주도학습능력도 65개국 중 58위다. 학습시간은 우리와 성적이 비슷한 핀란드의 1.7배로 세계 최장이다. 협동성, 사회성은 36개국 비교에서 35위다. 과연 무엇을 위한 학력인가.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우리에게 필요한 덕목이 모험심, 용기, 개척자정신, 창의력 등인데 학력이 높다고 해서 그런 것을 갖췄다고 말할 수 있는가."

_체벌금지와 관련해 교과부가 간접체벌을 허용토록 한다는데.

"부정확하게 알려진 부분이 많다. 교과부는 간접체벌이라는 용어도 사용하지 않는다. 간접체벌이라고 하면 얼차려를 흔히 생각하는데, 교과부가 집단주의적 폭력문화인 군대식 얼차려를 학교에서 허용할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

_체벌을 금지했을 때 학생 지도가 어렵다는 선생님들이 있었다.

"체벌 금지 때문에 학교 규율이 없어진 게 아니라 인성교육을 하지 않아 그렇게 됐다. 학생들이 국제비교평가에서 인성부문 꼴찌를 기록했다. 통솔과 지도가 그만큼 어렵다. 타인에 대한 배려나 질서의식이 떨어진다. 그렇다고 체벌을 할 수는 없다. 체벌을 없애면서 서울시내 모든 중학교와 고교의 53%에 심리상담 전문가를 배치했다. 또 한가지, 학생 자치와 자율 역량을 끌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수업시간에 떠들고 선생님 말씀을 듣지 않고 다른 아이들을 따돌리는 것 등에 대해 학급회의 시간 등에 토론하고 결과를 수용하도록 학교가 이끌어야 한다."

_학급회의 등의 대안은 현실과 좀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닌가.

"아이들이 아무리 제 마음대로라 해도 공동선이나 공익 등에 대해서는 안다고 본다. 그러니 그런 의식을 키워주어야 한다. 아이들 인성이 떨어지고 수업 중 엎드려 자고 떠드는 마당에 국영수 공부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 같으면 교실 광경을 비디오로 찍어 아이들이 자신들의 모습을 스스로 보게 한 뒤 그것이 옳은지를 토론하면서 최소한의 규칙을 정하게 하겠다."

_선생님들의 능력도 향상돼야 하지 않겠는가.

"선생님의 대화와 수업 기법, 공감과 소통능력이 필요하다. 학교 단위에서 전문가를 모셔 그런 교육을 해야 하나 아직 활발하지 못하다. 선생님들이 대학에서, 새내기 교사 때 그런 능력을 제대로 익히지 못했다. 얼마 전 교육방송에서 방송한 '학교란 무엇인가' 프로그램 가운데 '선생님이 달라졌어요' 편을 보았다. 수업 장면을 비디오로 찍어 보여주었더니 선생님들이 부족한 점에 변명도 하고 눈물도 흘렸다. 선생님들이 자신의 수업 광경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면 변화가 생긴다. 선생님 사이에 그런 운동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학부모가 교실에 앉아있다고 생각한다면 수업 준비를 소홀히 하거나 아이들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아이들은 수업과 생활지도 방식의 변화를 요구한다. 그 변화의 키를 선생님이 쥐고 있다. 선생님이 변하면 아이들도 변한다."

_그 한 방편으로 남자 선생님을 늘리는 것은 어떤가.

"생활지도의 필요 때문에 남자 선생님을 늘리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생의 가치관 등을 배우는 과정에서 여자 선생님만 만나는 것이 균형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일정 비율의 남자 교사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고려할 점이 많다."

_체벌보다 훨씬 심각한 게 학교 폭력이다.

"우선순위에 두고 있다. 교장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경영능력을 평가할 때 학생간 폭력에 대한 학생들의 생각을 물어 반영할 계획이다. 갈취, 폭력, 따돌림 등에 대해 책임교육의 관점에서 접근하겠다."

_무상급식 논란으로 시끄러웠다.

"절대적인 평등이 요구되는 영역이 있다면 아이, 교육, 밥일 것이다. 이 셋이 기막히게 결합한 것이 학교 무상급식이다. 이것이 포퓰리즘이라면 망국이 아니라 흥국(興國)적 포퓰리즘이다. 친환경 식자재를 사용하기 때문에 농업과 농토를 살린다. 며칠 전 보도된 것처럼 소비자 물가를 낮추는데도 기여했다. 이것을 망국적이라고 모는 것이야말로 망국적이다. 망국적 포퓰리즘의 논리로 흔히 부자급식론과 세금급식론을 거론한다. 무상급식하면 세금폭탄을 맞을 것이라고 부자를 부추기는 것이 세금급식론이고, 부자에게 급식을 하니까 당신 몫이 감소할 것이라고 가난한 사람에게 속삭이는 것이 부자급식론이다. 둘 다 빈부의 사회연대를 부정한다. 망국이라는 말이 나오면서 무상급식 하는 아이들이 '내가 망국의 대가로 밥을 먹는 것인가' 자책하며 마음의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_오세훈 서울시장이 TV토론을 제안했는데 응하지 않은 이유는.

"나도 하고 싶은 말은 많았다. 그러나 무상급식에 필요한 친환경 쌀을 구하기 위해 전국으로 동분서주할 때여서 여유가 없었다."

_서울시가 서울시교육청에 주어야 하는 전출금(시도교육청이 예산으로 쓸 수 있도록 광역자치단체가 전달해야 하는 돈)이 올해 1분기에는 예년보다 적었다. 이것도 무상급식논란 때문이라고 보는가.

"서울시가 서울시교육청에 전출금을 주는 것은 법으로 정한 사항이다. 원칙대로라면 매 분기 25%씩 주는 게 옳다. 지난 10년간 1분기에는 15% 정도를 받았다. 그런데 금년에는 1, 2월에 한 푼도 못 받았고 3월 마지막 날에야 받았다. 그렇게 해서 1분기에 받은 돈이 8%다. 이것이 올바른 법 집행인가. 편협하고 반교육적이다."

_이주호 교과부 장관이 얼마 전 교육감 직선제에 부정적 견해를 밝혔다. 지난해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교육감 직선제가 교육비리를 불러온다고 했다.

"민주주의는 투표를 먹고 산다. 직선제로 뽑힌 교육감은 시민을 섬기지만 임명제 교육감은 권력자를 섬긴다. 직선제는 비리를 낳는 게 아니라 비리를 통제한다. 직선제가 없었다면 16개 교육청은 교과부가 정한 정책과 지침을 학교에 전달하는 이상의 기능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36조원에 이르는 교육예산도 단일 의사에 의해 결정된다."

_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주호 장관과 곽노현 교육감의 교육개혁에는 통하는 면이 있다는 사람이 있더라.

"사실 많이 통한다고 생각한다. 이 장관도 창의와 인성 교육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다만 고교 교육에 차이가 있다. 이 장관은 고교 다양화 정책을 펴면서 경쟁을 강조한다. 경쟁의 강조는 엘리트주의와 통한다. 엘리트주의는 전체주의, 관료주의와 더불어 민주주의의 적이다. 이 셋은 묘하게도 국가주의와 결합해있다. 그런 점에서 나와 차이가 크다. 하지만 진정성, 개혁가적 기질 등은 있다고 본다."

_지난해 교육감 선거 때 전교조의 지지를 받았는데.

"나는 전교조의 출범을 환영했던 사람이다. 전교조는 한국사회와 교육의 민주화에 큰 공헌을 했다. 그러나 전교조만도, 교사만도 아닌 시민의 교육감이다. 지향이 같으면 누구와도 같이 움직인다. 나는 세력논리, 진영논리, 조직논리를 싫어한다."

_교원평가 이야기 나왔을 때 전교조는 반대했지만 상당수의 학부모는 찬성했다.

"학생은 매주 몇 시간씩 선생님을 만난다. 그러니 학생이 수업에 대한 생각을 밝히고 좋았던 점, 바라는 점 등을 서술하는 것은 필요하다. 아이들이 수업을 못 알아 듣겠다고 하고 생활지도 방식이 일방적이라는 하면 선생님들이 고치지 않을 리 없다. 사실 교사는 학력 면에서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 어려운 임용시험을 통과하지 않았나.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도 강하다. 한때는 공부를 잘하고 성실했던 분들이 학생들과 멀어졌다면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학교가 지금까지는 수업 잘하는 선생님보다 행정 잘하는 선생님을 우대했던 것이 중요한 이유다. 아이들 지도 잘하는 방법, 공부 잘 가르치는 방법에 대한 논의는 별로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선생님들을 믿는다. 그들의 참여와 헌신이 없다면 개혁은 빈말에 그칠 것이다."

_진보교육감이라는 표현은 어떻게 생각하나.

"교육은 20∼30년 후의 사회인을 길러내는 일이므로 본질적으로 진취적이다. 다만 성인과 아이, 선생님과 학생이라는 관계에서 보면 보수적이다. 운영은 보수적으로 해도 교육 그 자체는 진보적일 수 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내가 과연 진보교육감에 맞는 미래지향성과 진취성을 갖고 있는지, 적합한 역량과 품성이 있는지 고민할 뿐이다. 내게는 영광스러운 호칭이다."

_진보교육감이 얼마 전 의전용 관사를 짓겠다고 해 논란이 있었다.

"주말, 심야에도 일하는데 필요한 교육정책사랑방 정도로 생각했다. 서울에는 1,300명의 교장선생님이 있다. 충고와 조언을 할 분들이 많다. 시간적, 공간적 구애를 받지 않고 소통을 하고 싶었다. 권위와 특권의 공간을 말한 게 아니었다. 우리 가족은 프라이버시가 침해받을 것이라며 반대했다. 이런 필요를 특권으로 규정하고 배격할 만큼 진짜 민주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_교육현장의 부익부빈익빈은 어떻게 해소할건가.

"저소득층 학생이 많은 학교일수록 교육적 필요는 더 높을 것이다. 그런 학교에 유능한 교사를 배치하고 시설 예산을 많이 배정하며 연구프로그램도 더 많이 시행할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교육의 부익부빈익빈을 극복할 수 없다. 교육을 통한 정의와 통합도 불가능하다."

_교육 현장의 낭비 요소도 많지 않나.

"체육관, 특별교실 등 학교 시설 보강에 대한 요구가 많다. 그러나 그렇게 하려면 돈이 많이 들어간다. 우선순위를 정할 때 시민이 참여하고 감시하는 시설민주주의를 도입하면 비효율을 많이 없앨 수 있다고 본다. 올해도 540억 원으로 책정한 시설예산을 점검했더니 135억 원이 불필요한 것으로 나왔다. 절감된 돈을 다른 분야에 사용키로 했다. 올해부터 300명 정도가 참여해 시설 예산을 꼼꼼히 따지는 시설민주주의를 본격화할 계획이다."


곽노현 "교육감이 뭐 하는 자리인지도 몰랐다."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은 교육청이라는 곳을 가본 적도 없고 교육감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도 몰랐다고 했다. 교육에 무관심해서가 아니라 초중고의 현안을 접할 일이 없었고 그것 때문에 교육행정을 남의 일로 여겼던 것이다.

그런 그가 바뀐 것은 2009년 7월 경기도 학생인권조례제정 자문위원장을 맡으면서부터다.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 일을 같이 하며 알고 지내던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이 방송통신대 교수로 있던 자신에게 그 일을 부탁했던 것이다. 그는 조례 제정 업무를 하면서 학생, 학부모, 교사, 교장 등 1,000여명을 만났고 공교육 붕괴현장을 목격했다.

민교협이 2010년 6월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 후보를 내기로 하고 최갑수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에게 의향을 물었으나 그가 사양하면서 곽 교육감이 나서게 됐다. 최 교수 역시 민교협 일 때문에 알게 됐는데 나이와 학번이 같아 친구로 지내는 사이다. 곽 교육감은 "솔직히 말하면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일을 하면서 일종의 소명감을 갖게 됐다"면서 "그 상태에서 최 교수가 사양해 내가 나섰다"고 말했다.

나중에 정치를 하지 않을까 하는 일부의 생각에 대해 그는 "절대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중고교 및 대학 동창회나 경조사에 얼씬 하지 않는 등 마당발 스타일도, 정치적 성격도 아니라고 말한다. 자신이 교육감 선거에 나섰을 때도 그를 알고 있던 많은 사람이 깜짝 놀랐다고 했다.

약력

1954년 서울 출생

1972년 경기고 졸업

1976년 서울대 법대 졸업

1984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로스쿨 법학석사

1991년 3월~2010년 6월 방송대 법학과 교수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회 위원,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 민주주의법학연구회 회장, 참여연대 집행위원 운영위원,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공동의장,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연구자문위원장, 아태국가인권기구포럼 법률가자문위원회 위원 등



창의성·인성·적성진로 교육 23개 학교서 전면화 실험


곽노현의 혁신학교 정책

곽노현 교육감이 심혈을 기울여 추진하는 정책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혁신학교다. 곽 교육감은 인터뷰에서 혁신학교를 창의성, 인성, 적성진로를 전면화하는 학교라고 설명했다.

창의성과 인성 교육을 위해 문화ㆍ예술ㆍ체육 활동과 예술적 상상력을 키우는 활동에 주안점을 두고 있는데 곽 교육감은 이런 활동이 결국 학력신장에도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공동체적 인성, 건강한 신체, 예술적 감수성, 인문적 교양 등이 자기주도학습능력을 키워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적성진로 교육과 관련해서는 지역사회, 시민사회의 지원을 연계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박물관, 미술관, 공연장 등의 지역시설 및 지역 전문가들과 손 잡고 아이들이 체험활동 등을 통해 자신의 적성 등을 깨닫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혁신학교는 공모를 통해 초등학교 10개교, 중학교 10개교, 고등학교 3개교 등 모두 23개교를 지정했다. 복수담임제를 도입, 학생 15명당 담임 1명을 배치해 학습진로와 생활지도 등을 하고 학생, 교사, 학부모 모두 공동체 생활협약을 하기로 하는 등 지정 학교마다 독특한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하지만 3월에야 본격적으로 운영되기 시작했으니 그 성과를 확인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

혁신학교 운영을 비롯해 곽노현 교육감이 특히 관심을 보이는 학교는 중학교다. 그는 중학생이 심리적 혼란을 겪는 나이이며, 중학교는 초등학교와 고등학교의 허리에 해당하지만 교육적 관심이나 교육 여건이 상대적으로 열악하다고 보고 있다. 초등학교는 저력과 탄력성이 있지만 중학교는 문화ㆍ예술ㆍ체육교육에 대한 인프라가 부족하다고 보고 있다. 그렇지만 고교처럼 입시압박이 아직은 적기 때문에 중학교에 집중적인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이 곽 교육감의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