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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을 담은 글쓰기 / 유용선

인서비1 2010. 1. 9. 20:24

지식을 담은 글쓰기

 

유용선

 

  문학의 위기를 논하는 자리가 부쩍 많아졌다. 그에 따른 진단도 참 다양하다. 영상 매체의 오락성에 밀린다, 표현방법이 지나치게 난해하다, 부자인 작가가 별로 없다, 실용성이 별로 없다 따위. 오락성이야 영상 매체가 추구하는 바와 문학이 추구하는 바가 똑같을 수 없으니 그렇다 치고, 표현방법의 난해함은 모든 작가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니 그것도 그렇다 치고, 부자인 작가 별로 없는 거야 새삼스러운 이야기이고, 실용성의 문제는……, 이 실용성 측면에 이르러선 문인들에게도 반성할 부분이 있다.


  시를 잘 쓰기 위해 시집을 많이 읽고, 소설을 잘 쓰기 위해 소설을 많이 읽는 것은 당연하다. 또한 시를 잘 쓰기 위해 소설을 많이 읽어 문장력을 키우고, 소설을 잘 쓰기 위해 시를 많이 읽어 인식력을 키우려 애쓰는 것도 당연하다. 더 나아가, 시나 소설을 잘 쓰기 위해 문화 전반에 걸친 소양을 갖추려 노력함도 지극히 당연하다. 더 나아가, 모름지기 문인은 인간과 관련된 것이라면 무엇에건 두루 관심을 두고 지식을 섭렵하려 애씀이 당연하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사생활을 들여다보지 않았으니 함부로 단정할 수야 없겠지만 어쩐지 나는 우리나라 상당수 문인들의 독서가 문학작품에 국한되어 있지 않나 하는 의심이 들 때가 많다. 열매를 보면 씨앗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작품을 보면 작가를 알 수 있다. 최근작이라 해서 읽어 보면 이미 그 비슷한 문체와 내용을 어디선가 접한 적이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작가의 신변잡기를 소재로 삼은 작품은 왜 또 그렇게 많은지.


  인간은 언어로써 사회와 문화와 문명과 자연과 관념과 심지어 인간 자신도 담아낼 수 있다. 실로 호모로퀜스(Homo loquens, ‘언어의 인간’이라는 뜻의 라틴어)가 문학으로 담아내지 못할 소재란 없다. 그러므로 문학의 생산자인 문인은 인문학뿐만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것에 관심을 열어두어야 할 것이다. 또한 어떤 신분과 어떤 직업군에서든 문인은 탄생할 수 있다. 그리하여 문학은 어쩔 수 없이 인간학이 될 수밖에 없다.


  한국 역사극 분야의 거장이 되기까지와 그 뒤로도 엄청난 양의 역사관련 책을 읽은 극작가 신봉승, 체험에 취재의 노력까지 보태 리얼리즘의 거봉으로 우뚝 선 황석영, 조정래 등의 작가들, 수백 수천의 섬을 직접 여행하여 시집을 묶었던 시인 이생진 등 문학의 지평을 넓혀온 문인들의 맥이 가늘어지진 않을까 걱정이 된다. 자아를 탐구하는 것도 좋고 판타지를 연출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 한 쪽에 치우치는 동안 혹시 정물화나 풍경화도 그려내지 못하면서 추상화를 그려대고 있진 않은지 스스로 반성해 봐야 할 일이다. 도깨비보다 토끼 그리기가 본래 더 어려운 법이다.


  외국의 경우엔 사회 각계의 다양한 출신들이 작가로 나서 독자에게 읽는 즐거움과 실용성을 동시에 안겨주는 작품을 써내고 있다. 특히 소설분야에선 더욱 두드러진다. 하버드 대학교 의대를 졸업한 로빈 쿡은 의학 스릴러를 쓰고, 미시시피 주립대학교를 졸업한 존 그리샴은 법정 스릴러를 쓴다. 과학소설 ‘스페이스 오디세이’로 잘 알려진 아서 찰스 클라크는 발명가이기도 하다. 트레이시 슈발리에처럼 역사 속의 인물을 소설로 재창작하는 작가도 환영받고 있다.


  독자가 내 글을 읽고 나서 덕분에 새로운 걸 아주 인상 깊게 알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도록 작품에 지식을 넣어 보자. 책이나 신문, 잡지 등을 읽다가 아주 새롭고 놀라운 지식을 얻게 되면 그것이 들어있는 작품을 써 보도록 하자. 마음에 새길 만한 명언이나 아름다운 시를 인용하는 것도 좋다. 지식이 담긴 글로 내 작품에 실용성을 불어넣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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