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좋은글

동강行 / 홍신선

인서비1 2010. 1. 8. 21:22

 동강行

                      홍 신 선


1.
고요에 먹먹하게 가는 귀 먹은
한 때는 이 고장에서 떼를 엮었음직한
기암괴석 영감 서넛이
서로 엉뚱한 낯으로 딴전부리며 서있다
읍내 주막거리 킬킬대며
누비던
화냥년 시간에게
목숨도 뒷돈도
또 불알마저도
오래전 모두 털리고 돌아와
동강 상류 그들은 그렇게 거덜난 위대한 기다림으로
용도 폐기된 삭은 뗏목 몇 척으로 잔류하고 있다
수몰 뒤엔 다시 띄울 수 있을까
고색창연한 맞배지붕의 미륵전처럼
떠있는 하늘 속 어디
그들이 건너다니던
삭제된 물길 위로
다시.

2.
"업으바 업으바"
등 편안히 내어주고
업히라는
꼭 내 무명저고리 입은 누님같은
구름 뒷꼭두에
실은 벌써 돌잡이만한 햇살이 업혀있다
곤한 얼굴로 잠들어 있다

낯 모르는 죽음에 업혀서 천진스레 웃는
그 애놈처럼
삶 일대가 별뜻없이 느긋하다.

3.
일부러 앙다문 입 벌려서 들여다 보는
담배꽃의
노오란 저 깊은
기관지 속

생공기로 팽팽하게 목숨 갈고있는
허파꽈리같은
그 꽃들이
혼자서 혹은 단체로 가볍게 떠 있는
민박집 어라연 상회 못미쳐쯤

강바닥 돌틈에 숨은
바가사리만한 등푸른 늦여름이
이따금 폐활량 큰 아가미를 열었다 닫는다
자갈밭에서는
코펠에 다듬어 안친 마음이 짧게 끓어 넘친다
서쪽 공기의 앞섶에
벌건 국물이 흥건하게 엎질러져 있다.

4륜구동으로 전환한 떼처럼 사람들이
빠져나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