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좋은글

'능가사 벚꽃잎' / 황학주

인서비1 2010. 1. 7. 12:37

'능가사 벚꽃잎'

 

                                                         황학주

 

어둠 속에서 여인을 본 날이었다

놀랍게도

이불을 끌어안은 것처럼

빗소리를 바짝 붙잡고 있는 모양이었다

낮술에 취해 비스듬히 베어진 남자가

물 묻은 가지를 짚은 채 여인 옆에 기대앉아 있었다

여인과 잠깐 눈이 마주친 동안

산벚꽃 잎이 날아왔다

 

빗소리 깔린 길

멀리 데려간 단 한 발자국만큼의 인연을

생이 지켜보고 있는 것도 같다 이미 울다 간 바 있는

봄, 사랑이 결정되기라도 하면

숙명이 책상다리를 하고 노랑 병아리 같은 것을 깔고 앉는

 

그런 전철이 있는 것 같다

서서히 기울며 지워지는

어둠은 그 날 부러지는 소리가 나고 잎도 져 내리었다

한참 후

양쪽 발소리가 다른 여인이
입구 쪽으로 천천히 나가고 있었다

 

젖은 꽃잎이 날아 내리며 입구를 간신히 비추어 주었다 -'능가사 벚꽃잎'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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