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의 선거 패배: 몰락하고 있는 사이비진보세력
4월 15일 저녁, 21대 총선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되자 정의당 상황실의 분위기는 침울해졌다. 21대 총선에서는 의석수를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무색하게, 5석 내지 7석이 예상된다는 발표가 나왔다. 결국 정의당은 21대 총선에서 6석밖에 얻지 못했다. 지역구에서는 심상정 한명만이 고양시 갑 선거구에서 당선되었을 뿐 나머지 후보자들은 모두 낙선했으며 여영국, 이정미 등 현역 국회의원들도 ‘생환’에 실패했다. 심지어 심상정조차 같은 지역구에서 52.97%를 얻으며 여유 있게 당선되었던 20대 총선 때와 달리 39.38%를 얻으며 약 5%포인트 차이로 당선되었다. 비례 의석 역시 5석에 그쳤다(득표율 9.67%).
20대 총선과 동일한 6석이지만 이것을 두고 현상 유지라고 평가하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정의당은 이번 총선에서의 의석 수 확대를 위해 2018년 하반기부터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선거제도 개편에 ‘올인’해왔기 때문이다. 심상정은 2018년 10월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되어 선거제도 개편에 앞장섰고, 논의가 정체되자 같은 해 12월 이정미 대표는 국회에서 단식까지 했다. 또한 정의당은 민주당과의 선거제도 개편 협상을 위해 문재인 정부 2기 내각 인사에서 후보자들에 대해 비판만 할 뿐 ‘데스노트’에 올리지 않았고, 결정적으로 조국 임명 반대 여론이 60%가 넘는 상황에서 조국 임명까지 지지해주었다. 하지만 막상 이번 총선에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정의당에게 자승자박의 결과를 가져왔고, 정의당은 의석 수를 단 한 석도 늘리지 못했다. 정의당은 21대 총선에서 패배했다.
정의당이 선거에서 패배한 이유: 자유주의세력화한 사이비진보세력
정의당이 패배한 이유는 무엇일까? 직접적으로는 민주당의 비례위성정당 창당이 큰 영향을 주었다. 하지만 패배 이유를 ‘민주당이 비례위성정당을 창당해서’라고만 정리할 수는 없다. 민주당이 비례위성정당을 창당한 것이 정의당에 이렇게까지 큰 타격이 된 것은, 정의당이 근본적으로 자유주의세력화하여 민주당 2중대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었다.
정의당은 이제껏 자유주의 내 좌파에 다름 아닌 지위에 있었다. 정의당의 주요 지지층이 선거 때 지역구는 민주당을 찍지만 비례후보에서는 정의당을 찍는 민주당 지지층이라는 사실은 익히 알려진 바이다. 그렇기에 정의당은 늘 ‘민주당보다 조금 왼쪽에 있으면서 가끔 민주당을 비판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민주당, 문재인 정부를 도와주는 세력’으로서의 존재 가치를 자유주의자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이것은 작년에 조국 임명 반대 여론이 높은 상황에서도 조국 임명을 지지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이 외에도 정의당의 본질을 보여주는 사례는 많다. 가령 작년 12월 10일 여영국은 의원총회 모두발언에서 민생·개혁 법안 처리를 촉구하면서 문재인 정부에 대해 “촛불개혁연대의 힘으로 만든 문재인 정부입니다. 정의당은 여전히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바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이 촛불개혁연대를 버리고, 자유한국당과의 기득권야합을 선택한다면, 그것은 결국 문재인 정부의 실패로 귀결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바란다고 스스럼없이 말하는 당인 것이다.
올해 문재인의 신년사에 대한 논평에서도 정의당 김종대 수석대변인은 “올 한해 국내외의 어려운 여건에서 정부가 확실하게 고용과 소득을 견인하겠다는 기조에 대해서 적극 찬성한다.”고 하였으며, “다만 노동존중에 대한 보다 확고한 의지와 구체화된 정책 기조가 모자란 점이 아쉽다.”는 단서를 붙였을 뿐이다. 심지어 규제완화에 대해서도 일부 우려를 표하면서도 “한편 규제완화가 일부 필요하다는 정부의 입장은 동의한다.”고 하였다. 해당 논평은 “공수처 설치를 필두로 한 권력기관 개혁에 대해 정의당은 적극 협력할 것이다. 전반적으로 대통령의 국정철학 기조는 훌륭하지만 실효성 있는 이행이 관건이다.”라고 마무리되는데, 이는 정의당이 계속 자유주의 정권의 지지세력 역할을 하겠다는 다짐으로 읽힌다.
정의당의 이런 모습은 이번 21대 총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가령 심상정은 3월 18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범민주 진영이 50% 이상 정당득표를 하리라고 보는데, 지금은 민주당이 40, 정의당이 10 정도”라며 “민주당과 정의당을 20 대 30 정도로 전략투표를 해주시면 정의당이 교섭단체가 된다.”고 설명했다. 정의당의 지지기반이 민주당 지지층에 있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또한 이 발언은, 정의당이 민주당의 비례위성정당에 참여하지 않은 것이 어떠한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에게 유리하지 않아서일 뿐임을 잘 보여준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본지 기사 「비례위성정당 논란으로 사이비진보정당의 본색이 드러나다」 참고).
한편 정의당이 이번 총선 지역구에서 민주당과 단일화를 하지 않은 것이 민주당으로부터의 독립성을 지킨 것이라는 일각의 평가가 있다. 그러나 실상을 보면 정의당이 단일화를 안 한 것이 아니라 못 한 것에 가깝다. 정의당은 민주당과의 지역구별 단일화는 열어두고 있었다. 가령 경상남도 창원 성산 선거구를 보면, 정의당 여영국 후보가 민주당 이홍석 후보에게 단일화를 먼저 제안했다. 하지만 민주당이 비례위성정당에 참여하지 않는 정당에 대해서는 지역구에서의 단일화도 거부함에 따라 협상이 잘되지 않았고 결국 단일화가 성사되지 않은 것이다. 4월 3일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은 창원 성산에서 민주당 이홍석 후보와 정책 협약을 맺으면서 “비례연합정당(더불어시민당)에 참여하지 않는 정당과의 연대는 강을 건넜다”며 “당 차원의 단일화는 없다는 것은 중앙당의 확고한 의지”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렇기에 정의당과 민주당 사이의 지역구 후보 단일화가 없었다는 이유로 정의당이 독자성을 지켰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또한 정의당 인사들은 각종 유세에서도, 정의당에 투표해야 문재인 정부를 더 잘 지킬 수 있다는 식의 논리를 반복했다. 전북 익산을 선거구에 출마한 정의당 후보 권태홍은 3월 31일 “문재인 정부의 후반기 성공적 국정운영과 시민 촛불혁명에서 제기된 개혁과제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권태홍과 정의당이 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권태홍은 정의당이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각종 개혁 법안을 민주당과 공조하여 패스트트랙으로 상정하고 통과시킨 것을 강조하며 “시민들도 생생하게 보았듯이 정의당이 없었다면 민주당만으로는 한 개의 법안도 통과시키지 못하고 보수 야당인 미래통합당의 거센 반대에 부딪혀 국회 상임위조차 상정하기 어려웠을 것”이므로 “문재인 정부의 정책을 국회에서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정의당이 반드시 원내교섭단체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심상정도 4월 3일 전남대학교 유세에서 “호남 광주에 의석이 28개입니다. 이 28개 의석을 전부 파란색으로 메우는 것보다는 그래도 몇 개 노란색으로 덧씌우는 것이 훨씬 더 강합니다. 100% 민주당 지지를 보내는 것보다 30% 정도 정의당으로 지지율을 나누는 것이 훨씬 더 강한 민주주의를 만들 수 있습니다. …… 촛불 개혁을 더 강력하게 견인해서 문재인 정부가 촛불 정부로서 자기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견인할 수 있는 정당, 그런 정당이 과연 누구입니까. 여러분. 정의당이 힘을 갖는 것이, 정의당이 교섭단체가 되는 것이 …… 훨씬 더 강력한 개혁으로 문재인 촛불 정부를 지킬 수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심상정은 4월 11일 막판 유세에서 자기가 출마한 지역구에서도 “심상정은 정했는데 정당은 어디를 찍을까. 문재인 대통령도 좀 지켜드려야 하지 않을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대한민국 촛불 혁명 이후에 최초로 치러지는 총선입니다. 정의당은 더불어민주당 왼편에서 좀 더 과감한 개혁을 견인해서 문재인 정부가 촛불 정부로서의 소임을 소홀히 하지 않도록 견인하는 그런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으로 문재인 대통령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합니다.”며 문재인 정부에 대한 충정을 어필했다.
그러나 대중의 입장에서 정의당의 위와 같은 호소는 설득력이 없었다. 민주당 비례위성정당까지 있는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에 힘을 실어주고자 한다면 그냥 지역구에서도 민주당, 비례에서도 더불어시민당에 투표를 하면 된다. 그리고 21대 총선에서 민주당 지지층은 실제로 더불어시민당에 대거 투표를 했다. 다만 선거 막바지에 민주당이 압승할 것으로 보이자 민주당 지지층 일부가 정의당에 대해 표를 던지면서 완전한 붕괴를 면했을 뿐이다.
사이비진보세력이 몰락하고 새로운 대안세력이 등장해야 한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마치 정의당이 제21대 총선 이후 민주당 2중대의 모습을 탈피하고 진보정당으로 변화할 수 있을 것처럼 포장한다.
가령 노동자연대는 21대 총선 결과가 나오자 「정의당의 선거 성적에 관하여」에서 라는 글에서 “기대에 못 미쳐 아쉽다고 평가하는 것과 처참하거나 초라하다고 평가하는 것은 다른 말이다. B학점을 목표로 삼은 시험에서 보통인 C학점을 받은 것을 두고 F학점 낙제를 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라며 전국 득표 수가 증가해 왔다든가, 수도권 지역과 울산에서 전국 평균 득표 이상을 했다든가 하는 지엽적인 사실들을 열거하면서 정의당이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둔 것처럼 말하고 있다. 심지어 정의당원들도 21대 총선 결과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데, 노동자연대는 정의당 당원들조차 하지 않는 방식으로 정의당을 높게 평가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노동자연대는 “정의당은 민주당 비례 위성 정당 참여를 거부함으로써 막판에 독립성을 지켰다. 그리고 조국 사태 때 취한 입장을 스스로 비판하는 등 차별성을 드러냈다. 진작에 그랬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라는 무의미한 논평을 하고 있다.
노동자연대가 정의당 밖에서 정의당의 실체를 호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면 정의당 안에서는 정의당 당원인 장석준이 그 역할을 맡고 있다. 그는 한겨레신문 칼럼 「진보정당은 허무에 빠질 겨를이 없다」에서 “이후 진보정당 운동은 리버럴 정당의 하위 파트너가 되는 오랜 방황기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이제는 16년 전의 그 약속을 되새길 때다. 국회가 촛불광장과 멀어진 만큼, 진보정당은 거리로, 광장으로 돌아가야 한다.”라고 하면서 마치 정의당이 진보정당으로 변화할 수 있을 것처럼 말하고 있다.
그러나 정의당이 진보적 방향으로 변화한다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오히려 정의당의 선거패배는 사필귀정이라 할 수 있다. 시대의 요구와 반대로 가던 사이비진보세력이 몰락하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전세계적으로 자본주의의 객관적 모순이 계속 심화되고 특히 2008년 대공황을 계기로 민중의 삶이 크게 악화되어, 자본주의와 맞서 싸우는 급진적인 세력이 등장하는 것이 시대적 요구가 되었다. 미국이나 영국 등지에서는 실제로 시대적 요구에 일정 부분 부응하는 흐름으로서 샌더스, 코빈이 부상했다. 그런데 한국의 진보운동은 이런 시대적 흐름에 정면으로 역행하여 우경화에 일매진했다. 그 결과물로 창당된 것이 바로 정의당이었다(「진보정치, 진보운동 전반이 몰락한 이유」, 「정의당은 진보정당이 아니다」 참조). 그렇기에 정의당이 진보정당으로 변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그릇된 바람을 불어넣는 노동자연대나 장석준 같은 이들은 어떻게 보면 정의당 주류보다도 더 문제가 있는 세력이다.
21대 총선에서 자유주의세력이 압승한 이상 자유주의세력은 민중의 삶의 문제 해결에 있어서 더 이상 핑계를 늘어놓을 수 없게 되었다. 이제 민중은 자유주의세력을 더 냉정하게 평가하게 될 것이고, 자유주의세력의 무능이 드러남에 따라 대안세력을 원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대안세력이 빠르게 등장하기 위해서는 진보를 참칭하면서 민중을 헷갈리게 하는 세력, 진짜 대안세력의 등장을 방해하는 세력이 정리되어야 한다. 따라서 사이비진보세력은 몰락의 길을 가야한다. 정의당의 선거 패배는 사이비진보세력이 그 길로 접어들었다는 징표라 할 수 있다. 이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여 자본주의와 맞서 싸울 수 있는 세력, 사회주의세력이 대안세력으로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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