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자유의 어두운 그늘

마침 바로 그즈음, TV와 라디오에서는 연일 “하늘엔 조각구름 떠 있고 강물엔 유람선이 떠 있고, 저마다 누려야 할 행복이 언제나 자유로운 곳, 뜻하는 것은 무엇이건 될 수가 있어, 저마다 자유로움 속에서 조화를 이뤄가는 곳, 아 대한민국”이라는 여가수의 흥겨운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이 땅에는 이미 ‘지강헌’처럼 내몰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이들에게 ‘아 대한민국’의 노랫말은 심각한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를 초래하기에 충분했다. 과연 저마다 누려야 할 행복이 언제나 자유로운지, 뜻하는 것은 무엇이든 될 수가 있는지, 대한민국이 저마다 자유로움 속에서 조화를 이뤄가는 곳인지.
자유란 사전적 의미로 어떤 행위를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하지 않을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자기결정권’이라는 개념도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런 자유는 현실에선 존재하지 않는다. 자유는 먼저 합당한 자격과 능력을 요구한다. 일찍이 존 로크는 “모든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다”고 호기롭게 외쳤지만, 그에게도 인간이란 고작 자산을 소유한 백인 남자에만 한정됐다. 자유는 누구나 향유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니라, 오직 제 능력만큼만 허용될 뿐이다. 우리는 사실 내가 가진 ‘유가증권’만큼 자유롭고, 내 통장잔액만큼만 자유롭지 않은가. 이것이 자유의 속살이다.
자유는 기회의 평등을 의미한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겠다. 이는 필연적으로 능력주의로 귀결된다. 세상에 공짜는 없으며 능력(성과)에 따라 보상받는 게 자유의 원리라는 것이다. 그런데 “한 명의 천재가 10만명을 먹여 살린다”는 어느 재벌의 신조나 “돈도 실력이야, 억울하면 네 부모를 원망해”라는 정유라의 빈정거림에서 알 수 있듯이, 그 능력과 자격은 진정 자신이 노력한 결과일까. 과연 개인의 재능이나 능력, 근면, 자격 같은 것들이 계층이나 부모, 교육기회, 상속과 같은 대물림과 무관할까. 자산소득 증가율이 임금소득의 그것을 뛰어넘었다는 것은 기회의 평등은 허울일 뿐 이미 운동장이 기울어졌다는 것을 방증한다. 자유로울수록 불평등해진다는 역설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반상의 세습신분사회를 벗어난 지 100여년 남짓한 오늘, 우리 사회에는 자유를 빌려 새로운 세습신분질서를 예고하는 듯한 징표들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어쩌면 그때 지강헌은 미래의 오늘을 예견하고 우리를 대신하여 포효했는지도 모른다. 저마다 누려야 할 행복이 언제나 자유로운 곳, 원하는 것은 무엇이건, 뜻하는 것은 무엇이건 될 수가 있어, 저마다 자유로움 속에서 조화를 이뤄가는 아 대한민국의 그 허울 좋은 ‘자유’를 향해 그는 가운데 손가락을 높이 치켜든 건 아닐까.
<김형완 인권정책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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