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목시계 분해, 라디오 뜯어보기
금지된 것들이 허락되는 공간서
왕성한 호기심 나래를 펼치다
현실을 피해 이론으로 숨어 들어
흩어진 문장들로 텍스트 만드는
지금의 나, 그때 거기서 만들어져
어린 시절 우리 집에는 조그만 다락방이 있었다. 그곳에는 작은 창문이 나 있어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골목길을 내려다볼 수 있었고, 바닥 마루의 틈으로는 바로 아래 있는 부엌에서 벌어지는 일을 엿볼 수도 있었다.
천장은 신문지로 도배되어 있었는데, 한쪽 귀퉁이가 뜯겨져 있어서 그리로 들어가 집의 모든 방의 천장으로 이동할 수도 있었다.
영화 ‘나 홀로 집에’에서 주인공 꼬마는 “우리 식구들 모두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식구들에 이리저리 치이다 보면 누구나 같은 생각을 할 게다. 하지만 그 인간들이 어디 내 뜻대로 사라져 주겠는가? 그렇다면 남은 수는 한 가지, 내가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어린 시절 다락방은 원할 때마다 내게 세상에서 철수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곳에서 나는 완전한 자유를 누렸다. 다락방 아래에서는 왕성한 호기심에 비해 금지된 일이 너무 많았다. 만년필이나 손목시계를 분해하는 것도, 전화기나 라디오의 내부를 뜯어보는 것도 일절 허용되지 않았다. 하지만 다락방은 다르다. 그곳에 모여 있는 것은 현역에서 은퇴한 물건들이라, 그것들의 운명에는 누구도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작, 발명, 궁리의 공간 다락방
그뿐인가? 장비도 막강했다. 톱과 망치와 펜치, 송곳과 크고 작은 못, 심지어 쓰고 남은 판자에 아교까지 있었다. 웬만한 예술가 아틀리에 못지않았다. 창가에는 작은 앉은뱅이책상이 놓여 있어, 거기에 앉아서 온갖 재료들을 썰고 자르고 붙이며 몇 시간이고 창작에 몰두할 수 있었다. 몰입을 하면 완전히 다른 시간을 체험할 수 있다.
공작을 하지 않을 때에는 책상에 종이를 펴놓고 ‘발명’에 전념하곤 했다. 하지만 내가 발명하고 싶은 것은 이미 남들이 다 발명해 놓은 터라, 들인 시간에 비해 별 성과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또 하나는 비행기 디자인이었다. 소풍날 김밥 싸는 데에 쓰던 얇은 나무도시락은 (옆으로 잘 갈라지는 점만 빼면) 모형제작에 최적의 재료였다.
가끔은 그곳에서 두꺼운 종이로 2D 전투기 모형을 만들어 동네아이들에게 나눠 주기도 했다. 아이들은 그걸로 공중전 놀이를 하곤 했는데, 어느 날 고등학교 형들이 지나다가 우리 비행기를 빼앗더니 라이터로 비행기 꼬리에 불을 붙이고는 날려 버렸다. “추락을 하려면 실감나게 해야지.” 내가 덩치만 컸다면 한 대 때려주고 싶었다.
코일을 감아 만든 전자석으로 전보를 치기도 했다. 물론 코일이 비싸 송신 범위라야 1m 남짓에 불과했다. 코일을 10m로 늘려 옆집 사는 친구와 통신할 생각을 하기도 했다. 선이 길어지면 저항도 늘어나 전압을 높여야겠지? 1.5V 건전지를 직렬 연결하거나 납작하게 생긴 4V짜리를 쓰면 되겠지? 주로 이런 궁리를 하며 보냈다.
납땜을 해서 차임벨이나 광석라디오를 만들기도 했다. 다이오드는 열을 받으면 망가지니 땜을 할 때 펜치를 대어 열을 분산시켜줘야 한다. 한 달 동안 용돈을 모아 산 환등기 키트는 포장을 열어보니 널빤지 6장과 초점을 조절하는 렌즈, 가정용 전구 소켓이 전부였다. 그래도 스위치를 올리자 희미하나마 영상이 나타나는 것이 매우 신기했다.
다락방에는 싸구려 현미경도 있었고, 30배율 망원경도 있었다. 아버지는 반에서 1등 하면 3만원짜리 천체망원경을 사준다고 약속했지만, 정작 1등을 하니 약속을 5,000원어치만 지키셨다. 그 돈으로 살 수 있는 건 그 망원경뿐이었다. 그걸로 볼 수 있는 천체라야 고작 달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달 표면의 크레이터를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지금의 글짓기, 결국 다락방의 공작
다락방이 있는 집은 내가 고등학교 때 다른 사람에게 팔렸다. 언젠가 돈을 벌어 그 집을 다시 사겠다는 생각으로 생각날 때마다 그곳에 가 다락방에 난 조그만 창문을 보고 오곤 했었다. 그런데 20년 전 그 곳을 다시 찾았더니 집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커다란 연립주택이 들어서 있었다. 결국 다락이 있었던 자리가 어딘지 눈으로 가늠만 하다 돌아와야 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오늘의 나는 거의 그때 만들어진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지금 하는 일도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저 재료와 도구가 달라졌을 뿐이다. 지금 하는 일이란 게 결국 이 책, 저 책에서 가져온 문장을 썰고 자르고 붙여서 텍스트를 만들어내는 일이 아닌가. 내게도 상상력과 창의력이란 게 있다면, 그것의 원형은 다락방에 널린 재료들을 이리저리 뜯어고쳐 뭔가를 만들어내던 그 다락방에서 형성되었을 것이다.
공부를 하는 사람들은 자기의 다락방에 사는 사람들이다. 물론 모두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공부를 업으로 택한 이들 중에는 사회로 나가기 싫어 이론으로 도피한 이들이 많다. 이론으로는 저만의 이상을 추구하고 무모한 실험을 할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그게 허락되지 않기 때문이다. 집안이 시끄러울 때마다 다락방으로 사라져 버린 아이처럼, 공부를 하는 이들은 현실의 번거로움을 피해 이론의 세계로 사라져 버린 아이들이다.
“친구여, 모든 이론은 잿빛이나 삶의 황금빛 나무는 푸르다오.” 메피스토펠레스는 망설이는 파우스트를 이렇게 설득한다. 파우스트는 이 말에 설득되어 서재라는 기호의 세계, 그 텍스트의 다락방에서 나온다. 하지만 나는 그의 말에 넘어가 이 다락방을 떠날 생각이 없다. 어둠에 익숙해진 눈에 현실의 총천연색이 너무 눈이 부셔서 저만의 다락방에, 하얀 종이와 검은 글씨가 어우러진 그 잿빛의 세계에 계속 머물고 싶은 사람도 있는 법이다.
다락방에서 만들어진 것 다름 아닌 나
내가 다락방에서 만든 것들은 모두 아무 짝에도 쓸 데 없는 것들이었다. 지금 내가 이론의 다락방에서 만들어내고 있는 것들도 대부분 아무 쓸모도 없는 것들이다. 하지만 그 쓸모 없는 것들이 전혀 쓸모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들이 현실에서 사느라 순수한 이상과 천진한 상상을 접어야 했던 많은 이들에게 잠시 쉬었다가 갈 피난처를 제공해 줄 수는 있기 때문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나의 다락방 안에서 완전히 편안하다. 거기서 나는 아직도 나를 만들어 가고 있다.
진중권 미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