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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넘는 수학선행 학습.. 학원 숙제 시터(sitter) 두기도

인서비1 2016. 3. 7. 07:20

도 넘는 수학선행 학습.. 학원 숙제 시터(sitter) 두기도

강남 엄마들의 수학교육 백태 초등생, 수학학원 평균 3곳 등록 기본 3년 선행, 고교 공부하기도 "과잉 학습은 독" 우려 목소리조선일보 | 오선영 조선에듀 기자 | 입력 2016.03.07. 03:01

"아이가 이번에 초등 5학년에 올라갔어요. 최근 오랜만에 서울 강남에 사는 아이 유치원 동기 엄마를 만났는데, 수학을 중 3 과정까지 선행했다고 해서 깜짝 놀랐어요. 제 아이도 6학년 과정까지는 선행한 상태인데, 격차가 너무 벌어졌다는 걱정에 가슴이 덜컹하더라고요."(김진영·서울 강서구)

요즘 사교육 시장의 '핵'은 수학이다. 고교 입시는 내신 중심으로 바뀌고, 수능 영어가 절대평가로 전환하면서 "대입 성패는 수학에 달렸다"는 인식이 학부모 사이에 퍼져서다. 특히 '사교육 1번지'라는 서울 강남권 학부모들은 수학 교육에 점점 올인(all-in)하는 모양새다. 송파구에 거주하는 학부모 A(초 6 자녀)씨는 "5학년 때 수학의 정석(실력편)에 들어가지 못하면, 학원에서 '늦었다'는 말을 듣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학부모 B(서울 강남구·중 1 자녀)씨도 "강남이라고 해서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최상위권 초등생 사이에서 선행학습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건 사실"이라며 "초등 3학년이 중 3 과정을 선행하는 건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렇게 과도한 선행학습의 효과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다 수포자(수학포기자의 줄임말)만 만든다"는 등 학부모 사이에서도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학원 고시' 합격 위해 3년 선행은 기본… 초등 고학년이 고등 수학 배우기도

"강남 ○○학원에서 작년 말에 초등 2학년생을 대상으로 '3학년 반' 선발시험을 봤어요. 학부모 사이에서는 '○○고시'라고 불리는데, 그 시험이 끝난 후 학원장이 '애들이 공부를 너무 많이 해 왔다'고 놀랄 정도였다고 해요. 그 반은 4학년 1학기 진도를 나가며 심화수업을 하는 반인데, 시험을 치른 2학년 아이들이 기본적으로 6학년 과정을 다 마치고 왔다는 거예요. 거기 붙으려면 최소한 그 정도는 해야 한다는 거죠."(학부모 C씨·서울 서초구)

(강남 최상위권 초등생 중에는) 수학학원을 1곳만 다니는 경우도 드물다. 보통 3곳을 다니는데, 수업시간만 주당 15~16시간에 달한다. 주5일로 계산하면 하루 3시간은 수학학원에서 보내는 셈이다. 수업 후 주어지는 미션 퀴즈를 전부 풀 때까지 아예 집에 보내지 않는 학원도 있다. 주말에도 수학 수업이나 과외를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B씨는 "올해 중학교에 진학한 첫째는 작년에 일요일마다 그룹(4명) 과외를 받았다"며 "진도로 따지자면 고등학교 1학년 수준까지는 공부했다"고 설명했다. 초등 3학년 자녀를 둔 C씨 역시 "올해 하반기쯤에는 '수학의 정석(실력편)'에 들어갈 예정"이라며 "(진도를 빨리 빼는 게 아니라) 계통수학 형태로 심화학습하다 보니 학습 내용이 고교 수준까지 올라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남 엄마들은 요즘 영어는 초등 저학년까지만 집중적으로 가르치고, 그 후에는 수학에 매진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본격적으로 수학을 시작하는 나이도 어려지고, 점점 더 많이 공부하는 추세죠."

◇학원 과제 버거워 '숙제 시터' 쓰기도

초등생들이 이렇게까지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뭘까? C씨는 "이런 아이들은 보통 KMO(The Korean Mathematical Olympiad·한국수학올림피아드) 같은 경시대회를 준비하고, 영재고나 과학고 진학을 꿈꾼다"고 했다. 그래서 강남 일대에서는 영재고·과학고 입시를 준비하는 초등생을 대상으로 '고등학교 수학 Ⅰ·Ⅱ 과정'을 가르치는 학원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C씨는 "강남권 중학교는 학교 수학 시험도 무척 어렵다. 내신 평균이 40점대라는 얘기도 초등 학부모 사이에 퍼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영재고·과학고 입시를 위해) 좋은 성적을 받으려면 초등학교 때부터 선행할 수밖에 없다는 게 엄마들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학부모 A씨는 "설령 특목고 입시에서 떨어지더라도 (이렇게 선행학습한 아이들이) 일반고에서 전교 최상위권을 차지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고난도 수업을 아이들이 따라가기란 쉽지 않다. C씨는 지난해부터 아이 학원 수업에 함께 들어가 노트 필기를 대신 해준다. "아이가 필기까지 하며 수업을 듣기엔 내용이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학원 수업을 위해 과외를 받는 경우도 있다. 초등 5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 E씨는 '학원 숙제를 봐 주는' 과외 강사를 따로 구했다. 일명 '숙제 시터(sitter)' '새끼 선생님' 등으로 불리는 사람들이다. E씨는 "아이가 보통 밤 10시에 집에 오는데, 학원 숙제가 분량이 많은 데다 너무 어려워서 새벽까지 해야 하는 경우가 많더라"며 "숙제를 못 해 가면 수강이 취소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숙제 시터를 구했다"고 설명했다.

◇초등생이 고교 수학 이해하는 건 무리… 선행 효과 없다

선행학습에 뛰어든 엄마들은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B씨는 "새벽까지 수학 숙제를 하는 아이를 보면 안쓰럽다"면서도 "아이가 힘들어하면서도 수업을 잘 따라가니 시키는 것" 이라고 했다. 지난해 자녀 대입을 치른 학부모 F씨도 "(아이가 수학을 잘한다는 전제 아래) 강남권 고교나 특목고, 전국 단위 자사고 진학 후 상위권을 노린다면, 선행학습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것은 일부 학생에게나 해당하는 얘기다.

수학 강사 D씨는 "이렇게 선행학습하는 최상위권 아이 가운데서도 하위 20% 정도는 자기 한계를 넘어 무리하게 공부하는 게 사실이다. '아이가 ○○학원 ○○반에 다닌다'는 사실만으로 자기 위안하는 게 아닌지 생각해 보라"고 충고했다. 학부모 B씨와 F씨도 "숙제 시터를 써야 할 정도라면, 학원을 그만두는 게 옳다"고 지적했다. '(선행학습하면) 일반고에서라도 최상위권을 유지할 것'이라는 얘기도 헛된 믿음이다. A씨는 "친척 아이 가운데 초등학교 때 '영재' 소리 듣다가 지금(고 2)은 반에서 중간 정도 성적을 겨우 유지하는 사례가 있다"며 "솔직히 우리 아이도 그럴까 봐 걱정될 때가 있다"고 털어놨다.

교육전문가들은 "과도한 선행학습은 아이를 무기력하게 만들기 쉽다"고 충고한다. 특히 6개월이 넘는 선행학습은 학습에 해(害)가 될 때가 더 많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다. 서울 대치동의 한 자사고 교사는 "매년 전교 1등 학생들과 선행학습에 대해 깊이 대화한다"며 "지금의 성적을 유지하는 데 선행학습은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게 학생들의 이야기"라고 했다. "그 아이들 대부분이 초등 때부터 중·고등 수준의 선행학습을 한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학생들의 솔직한 이야기는 '진짜 천재가 아니고서는 초등생이 고교 수학을 이해할 수 없다'는 거예요. 초등생의 사고 수준이 거기까지 자라지도 않고요. '그때 배운 건 기억도 안 난다'고 얘기해요. 수십 년간 대치동 아이들을 봐왔지만, 과도한 선행은 전혀 득(得)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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