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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아들의 수용소로 전락… 일부선 '대안' 없이 검정고시 수업만

인서비1 2015. 6. 20. 09:24

문제아들의 수용소로 전락… 일부선 '대안' 없이 검정고시 수업만

[H Cover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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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탁 대안학교의 현주소, 학생 상담 기록부 아예 없는 곳도

대전 '두런두런' 학교 가 보니, 적자 年 3000만원 운영 '허덕'

H 커버스토리

1년 전만해도 자퇴를 결심했던 류모(18)군은 어느덧 고교 졸업을 앞두고 있다. 지난해 6월부터 대전시 건신대학원대학교가 운영하는 위탁형 대안학교 ‘신나는 배움터 두런두런’(이하 두런두런)을 다니면서다. 류군 스스로 “살아있는 것 같다”고 할 정도다. 지역 명문고인 원 소속 학교에서 류군은 문제아이고, 학교부적응자였다. 그 학교는 반(半) 삭발 수준(18㎜)으로 두발 제한을 할 정도로 교칙이 엄격하고 공부를 많이 시킨다. 2학년이 되면서 야간자율학습 참여를 놓고 담임교사와의 갈등이 커져 학교를 그만둘 결심을 했다. 자퇴를 만류하며 위탁형 대안학교라도 가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부모 권유에 못 이겨 찾은 게 이 대안학교다. 류군은 “다녀보니 괜찮아 계속 다니고 있다”고 했다.

 

기자가 수업을 참관했던 지난 17일 아이들은 시종일관 생기발랄했다. 일반 학교에서는 문제아로 찍힌 아이들의 얼굴에서 짜증이나 지겨움은 볼 수 없었다. 류군을 포함해 저마다 다른 학교에 적을 두고 있는 7명의 학생들이 냉장고 속 재료로 요리하는데 열중했다. 일반 학교에서처럼 국어나 수학, 영어가 아닌 학생들이 기획한 ‘기대만족’ 시간이다. 치즈김치해물닭가슴살찜을 만드는 류군의 얼굴에 진지함이 가득 묻어났다. 두런두런 교사 김경보씨는 “처음 한 두 달은 엎드려 자기 일쑤였는데 2학기부터 이런 수업을 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10개나 할 정도로 적극적”이라고 말했다. 하고 싶지 않은 공부를 하는 게 시간 낭비라는 생각에 자퇴하려다 2년 전 위탁교육을 받고 있는 박모(17)양은 “뭘 억지로 시키지 않아서 좋다”며 “작년에 처음으로 국가공인이 된 네일아트 자격증도 땄는데 내가 아마 최연소일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에 200여개가 있는 위탁형 대안학교는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학생들을 학적은 원래 학교에 둔 채 위탁을 받아 교육한다. 학교 졸업장을 타기 위한 마지막 보루인 셈이다. 대부분이 류군처럼 학교가 맞지 않아 그만둘 결심을 하거나 학교가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손을 든 친구들이다. 1990년대 입시ㆍ성적 압박에 못 이긴 자살, 학교 중도탈락 등이 기폭제가 되면서 문화운동 차원에서 대안교육운동이 시작된 지 20년. 2001년부터 시작된 위탁형 대안학교도 그 연장선상이다. 그간 공교육 바깥에서 대안교육 실험이 있었다면, 공교육 내에서 대안적인 교육을 해보자는 시도다.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중도 탈락 위기의 학생 등 다양한 교육 수요를 끌어안자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그러나 두런두런처럼 학생 만족도가 높은 위탁형 대안학교가 많지 않다는 게 문제다. 3년 전 두런두런이 문을 열기 전 있었던 이 지역의 한 위탁형 대안학교는 교육 프로그램을 제대로 운영하지 않으면서 학생 수를 늘리며 지원금을 받아온 게 문제가 돼 지정 취소됐다. 교육당국의 관심과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일종의 문제아 수용소처럼 돼 가고 있는 것도 위탁형 대안학교가 처한 딜레마다. 25일 개봉하는 영화 ‘학교반란’은 이러한 현실을 들춰내고 있다. 2013년 한 위탁형 대안학교에서 교장을 맡았던 송동윤 감독은 “대부분 아이들이 엎어져 자고, 심지어 교사를 위협까지 하는, 통제가 안 되는 절망스러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학생 대부분이 기존 학교에서 상처를 받은 아이들로 일반 학생보다 더 좋은 시설에서 더 훌륭한 교사의 관심과 지원을 받아야 하는데 실상은 그 반대였다”며 “문제아들을 한 곳에 모아 방치하는 곳에서 아이들이 뭘 얻을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학교는 어쩌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탁형 대안학교에 떠넘긴 뒤 뒷짐을 지고, 교육당국 역시 지원은 하지 않은 채 학업 중단자 수 줄이는 데만 몰두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하태욱 건신대학원대학교 대안교육학과 교수는 “위탁 과정이 교육이라는 데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현재 학생 30명을 위탁 중인 두런두런은 7명의 상근 교사가 열정페이(월 70만원)를 받으면서 아이들과 만나고 있다. 건신대학원대학교 대안교육학 과정 석ㆍ박사나 대안학교 출신들이다. 그런데도 1년에 3,000만원 적자가 나 하 교수가 외부 프로젝트 등 가욋일을 해서 받은 돈으로 메우고 있는 실정이다. 대전시의 경우 위탁 학생 한 명당 하루 1만원 지원비가 나오지만 이 돈은 프로그램 운영비로만 쓸 수 있어 상근교사 인건비로는 지출할 수가 없다. 두런두런에서는 수업마다 교사 1명과 보조 교사 1, 2명이 함께 들어가 수지를 맞출 수 없는 구조다. 지역에서 입소문 날 정도로 궤도에 올랐지만 이런 방식으로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게 두런두런의 고민이다.

하 교수는 “교육청에서 위탁형 대안학교 지정 시 전문성, 특수성을 고려하기보다는 청소년 대상 프로그램을 운영해본 적이 있는 상담기관이나 수련관 등을 마구잡이로 섭외한다”며 “이런 기관들은 애들을 모아놓고도 뭘 해야 될지 몰라 공부가 싫어 나온 아이들을 데리고 검정고시 준비만 시킨다”고 지적했다. 위탁형 대안학교 감사를 나갔더니 상담이나 관찰 기록 등이 담긴 학생 파일이 아예 없는 곳도 있었다고 한다.

권영은기자you@hankookilbo.com

대안학교가 한국사회에 진입한지 20년이 지난 가운데, 교육 다양성 확보는 뜻깊지만 '문제아 학교' 아니면 '귀족 학교'로 전락했다는 우려도 있다. 게티이미지뱅크